[김금숙의 강화일기] 목단의 추억

한겨레 2021. 5. 1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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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숙의 강화일기]

[김금숙의 강화일기]  김금숙 ㅣ 그래픽노블 작가

선생님이 새로 왔다. 총각 선생님이다. 5학년 2반 담임이 되었다. 세상에, 우리 반이다. 첫날, 교실 문이 열리고 단정하게 빗어 넘긴 까만 머리에 하얀 와이셔츠가 교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마치 햇살이 걸어 들어오는 듯 눈이 부셨다. 광주에서 왔다고 했다. 낮은 톤의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그의 예리하지만 선량한 눈동자가 내게 머물렀을 때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순간 심장이 심하게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왜 이러지? 바람이 심했던 지난 일요일, 쑥 캔다고 뒷동산에 올라가 하루 종일 쭈그리고 앉아 있었던 게 무리였나 보다. 틀림없이 그때 감기에 걸린 게다. 나는 나의 감기가 창피했다. 들킬까 봐 선생님의 눈빛을 피해 빠르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내 짝꿍 애경이가 보였다. 애경이 얼굴이 벌겠다. 내 앞에 앉은 미자도 그 앞에 앉은 순심이도 모두 고개가 떨구어져 있었다.

그날부터 학교 가는 것이 제일 즐거웠다. 밤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때로 아부지와 엄니가 산에 나무를 하러 가면 동생을 돌봐야 했다. 그런 날은 학교에 갈 수가 없다. 짜증이 나고 속이 상했다. 동생이 똥을 쌌는지 울어댔다. 포대기를 풀고 방에 눕혔다. “이 가시나야, 니 땜시 나가 핵교도 못 가고이, 니는 똥까지 퍼 싸놓고 뭐 잘했다고 울고 지랄이냐, 지랄이?” 똥오줌으로 범벅이 된 천 기저귀를 빼내는데 동생이 발길질을 해댄다. 동생 발에 묻은 누런 똥이 내 손을 스친다. 엄마 젖만 먹고 사는 애가 웬 똥 냄새가 이리 진한지. 똥을 닦아내고 새 기저귀를 채워 다시 엎는다.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며 동생을 재운다. 해 질 무렵, 나무를 등에 가득 실은 아부지 엄니의 긴 그림자가 마당에 들어선다.

선생님이 자취하는 집 마당에는 목단밭이 있었다. 두 줄씩 40그루 정도 심어진 목단 사이로 사람이 지나갈 수 있게 통로를 만들어놓았다. 5월, 자주색 목단이 봉오리를 열고 활짝 피기 시작할 무렵 선생님이 뜬금없이 나를 불렀다. “야야.” 나는 놀라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지, 지요?” 아이들이 선생님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도둑질하다 걸린 거 맹기로 뭘 고로코롬 놀란다냐? 니, 내일부터 우리 자취집 목단꽃 잔(좀) 끊어다가 선생님 책상에 꽂아둔나.”

나는 그날 이후 학교 가는 아침 길에 선생님 자취집에 들렀다. 초록색 잎들 위로 피어난 목단 밭은 꿈같았다. 자줏빛 비단결의 목단꽃을 잘라 학교로 가는 길에 애경이를 만났다. 미자와 순심이도 만났다. 그 아이들은 나를 째려보고 목단을 째려보기를 반복했다. 지들이 아닌 내게 그런 심부름을 시켰다고 시샘하는 게 분명했다. 유리병에 물을 채워 선생님의 책상 위에 꽂았다. 눈을 감고 코를 가까이 대고 흡입하듯 냄새를 맡았다. 목단꽃의 색처럼 진한 그 향기에 머리가 핑 돌고 정신이 아찔했다.

“언니, 그래서 그 선생님하고는 어떻게 됐어?” 내가 물었다. “그게 끝이야. 선생님은 다른 반 담임이 되었고 나는 중학교에 갔지.” “그게 다라고?” 괜히 내가 더 아쉽다.

마당에 핀 목단꽃 사진을 찍어 언니에게 메시지로 보냈다. 언니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 위로 겸 꽃 보라고 사진을 보냈더니 당장 전화가 왔다. “야, 너무 이쁘다. 내가 목단만 보면 초등학교 때 우리 담임 선생님 생각이 나야. 니, 목단꽃에 얽힌 내 추억 한번 들어볼래?” 전화 끝으로 들려오는 언니의 목소리에 흥분과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그렇게 목단에 얽힌 언니의 추억을 듣게 되었다. 선생님에게 주려고 목단밭에 서 있던 나의 애틋한 어린 언니를 그려본다. 무슨 드라마나 어느 옛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언니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풉” 하고 웃음이 난다. 너무나 착한 우리 언니. 동생들을 업고 키운 우리 언니다. 강화에 한번 놀러 오라고 해도 몸이 아프니 집 밖에 나가는 것도 일이다.

며칠 전, 언니의 모교에서 내게 강연 요청이 왔다. 언니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언니는 뛸 듯이 좋아했다. 언니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럼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엄마도 가시고 싶단다. 아픈 두 사람을 모시고 거의 땅끝까지 차를 몰고 가게 생겼다. 그래도 좋다. 아버지가 손수 지었던 고향 집에도 가보고 마을 길도 걸어보고 우리 집 뒷동산도 가보자고 서로 약속했다. 우리 셋이 이렇게 여행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어느새 자줏빛 목단 꽃잎이 떨어져 풀 위에 누웠다. 7월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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