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첫삽도 못뜬 야구 명예의 전당 건립..잘못한 게 없는 힘없는 기장군 최대 피해자
[스포츠경향]
오규석 기장군수가 지난 12일 서울 한국야구회관(KBO) 앞에서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 조속 건립을 위한 1인 시위를 벌였다. 1인 시위는 지난해 10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오 군수는 “명예의 전당 건립사업은 한국야구 100년, 프로야구 30년을 기념해 서울, 인천 등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유치한 기장군 역점사업”이라며 “2014년 KBO와 부산시, 기장군이 실시협약에 따라 기장군이 전당 주변 여건 조성을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한 만큼, KBO도 당초 협약에 따른 관련 절차를 신속히 이행해 하루빨리 전당이 건립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예의 전당 건립, 어떻게 시작됐나
건립 사업권은 2013년 기장군이 따냈다. ‘야구도시’이며 한국 제2도시인 부산의 지원, 야구장 옆 장소를 제공한다는 기장군 조건이 좋았다. 2014년에는 기장군, 부산시, KBO 등 3자는 구체적인 사업 내용이 담긴 실시협약을 체결했다. 구본능 KBO 총재, 허남식 부산시장, 오규석 기장군수가 서명했다. 협약서에 따르면, 부산시는 전당 건립비를 지원하고 소유권을 가지며 적자를 메운다. 기장군은 1850㎡ 부지를 제공하고 야구장, 실내연습장 등 부대시설을 지어 운영하고 소유한다. KBO는 전당 운영을 위한 지소 설치, 정보 제공 및 유품 확보, 전당 운영 등을 맡기로 했다. 이후 구체적인 실행안에서 변화가 생겼다. 부산은 약속한 건축비 115억원 중 7억원을 삭감했다. 운영 적자분을 매년 3억원씩 6년간 18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것도 없는 일이 됐다. 동시에 행정안전부가 전당을 독립채산제로 KBO가 운영하라고 결정했다. KBO는 재정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KBO는 “부산에 책임을 전가하는 게 아니다”면서도 조금씩 물러나는 분위기다. 그사이 KBO 운영진, 집행부가 교체되면서 전당 사업 동력도 약해졌다. 프로구단들도 코로나19로 인한 재정 악화 등을 이유로 전당 운영을 꺼리고 있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현재 핵심은 전당 연간 운영비 20억원을 누가 내느냐댜. 당초 KBO가 내야 하는 돈이다. 그런데 KBO 이사회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구단 수입이 급감하면서 20억원을 다 대기 힘든 데다, 독립채산제로 인해 향후 부담도 계속 KBO가 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20억원은 KBO가 10개 구단에 지급하는 배당금 중 구단당 2억원씩을 갹출해 마련해야 하는 돈이다. KBO는 이사회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부산시도 건립비를 내기 힘들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급해진 곳은 기장군이다. 기장군은 KBO·부산 간 협약을 믿고 부지를 확보했고 시설 건립사업을 진행했으며 굵직한 대회도 수 차례 유치했다. 기장군은 최선을 다했을 뿐, 크게 잘못한 게 없다. 기장군은 최근 KBO에 운영비 20억원 중 12억원을 내겠다는 뜻도 전달했다. 그런데 KBO는 기장군이 더 책임져 달라는 분위기다. 이경호 KBO 홍보팀장은 “전당뿐만 아니라 주변 시설 등을 모두 포함해 비용편익분석을 외부기관에 맡겨 진행하고 있다”며 “1차 분석 결과가 6월 나온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분석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다시 협상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오 군수는 최근 “KBO 요구를 기장군이 모두 들어줄 테니 전당 건립을 서둘러 달라”고 KBO에 요구했다. 사업권을 가져온 지 8년이 지났지만, 첫 삽조차 못 뜨고 있으니 답답할 만하다. 군수가 하겠다고 해도 절차상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 KBO가 당초 지원해야 하는 운영비 대부분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기장군으로서는 의회를 설득할 명분과 실익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최근 기장군은 훈련시설에 대한 인증과 운영 등을 KBO에 요구했다. 훈련시설을 운영해 벌어들인 수익으로 명예의 전당 적자분을 메우겠다는 뜻이다. KBO는 당초 협약에 없는 내용이고 또 다른 적자를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전당을 건립하겠다는 KBO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당초 협약내용이 많이 달라졌고 코로나19로 인해 상황이 악화한 만큼,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장군이 요구한 훈련시설 인증과 운영에 대해서는 “프로야구단이 대부분 해외 전지훈련을 가고 학생팀, 실업팀은 KBO가 관리하는 팀이 아니다”며 “KBO에는 훈련시설 운영 노하우도 없다”고 말했다. 훈련시설을 잘 만들어 국내팀을 기장으로 모으자는 기장군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셈이다.
전당 건립은 오래전 공개적으로 한 약속이다. KBO가 이를 거부한다면 소송이 불가피하다. 소송이 오래갈 수밖에 없고 KBO가 패소할 공산이 상대적으로 커 보인다. KBO도 “협약을 깰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당초 KBO가 약속한 전당 운영비 20억원 중 대부분을 기장군이 부담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기장군에 주는 게 합리적이다.
■야구 트레이닝 센터가 대안?
KBO는 축구트레이닝 센터와 같은 전문 훈련시설을 짓기를 원하고 있다. 이걸 기장군에 짓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 지난 겨울 KT가 기장에서 훈련했다. 숙소가 멀리 떨어진 것을 빼놓고는 대체로 만족했다는 후문이다. 훈련시설을 잘 짓는다면, 학생·실업·동호인팀이 기장군을 찾을 가능성도 크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전지훈련을 가지 못한다. 아마추어팀 해외전훈에 대해서 고비용 저효율, 지도자와 에이전트 간 뒷돈 거래, 학부모 부담 가중 등 잡음도 많다. 명예의 전당, 야구트레이닝센터가 한 곳에 모인다면 선수도 잡고, 팬들도 잡을 수 있다. 다른 곳에서 받을 수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트레이닝 센터라면 승산은 더욱 크다. 숙소 건립, 행정안전부 설득은 기장군 업무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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