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교사, 연수서 '문자통역' 제공받고 칭찬글.. "20년 경력 중 처음"
"수어·문자 통역 같은 장애인 지원 의무화해야"
(서울=뉴스1) 정지형 기자 =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 '칭찬합니다' 게시판에 최근 서울교육연구정보원 소속 김모 주무관을 칭찬하는 글이 올라왔다. 김모 주무관 도움 덕에 '문자통역'을 지원받아 연수에 적극 참여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게시글 작성자는 청각장애가 있는 배성규 교사(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조 수석 부위원장)로 연수기관에서 문자통역을 직접 준비해준 것은 처음이었다. 배 교사의 교직 경력은 20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16일 교육계에 따르면, 청각장애 교사는 교육청 주관 연수가 있을 때마다 매번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만 있어야 했다. 수어통역이나 문자통역이 제공되지 않아 연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배 교사는 공립 특수학교인 서울정민학교에서 정보보안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매년 정보보안 담당자는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개인정보보호 연수에 참석해야 한다.
지난 4월 '개인정보보안 담당자 연수'를 신청할 때도 배 교사는 우려가 먼저였다. 매번 통역 제공을 놓고 교육청 담당자와 실랑이를 벌였던 일이 떠올랐다. 통역 요청 때마다 교육청에서는 예산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번에도 별다른 기대 없이 연수를 신청하면서 문자통역 제공을 요청했다. 하지만 김모 주무관은 교육청이 적극 챙겨야 하는 부분이었다며 '죄송하다는 답변'과 함께 문자통역을 준비했다.
배 교사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문자통역을 지원해준 주무관이 내년에 인사이동이 있으면 지금 업무를 못 하게 될 수 있다고 했다"면서 "다음 담당자에게 문자통역 내용은 꼭 전달하겠다고 해서 감동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 연수에서도 문자통역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교원 연수 예산에서 장애인교원 지원으로 배정된 몫이 따로 없는 탓이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연수가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남은 예산이 있었다.
실제로 장애인 교사 사이에서는 연수가 있을 때마다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면 형태로 이뤄지는 집합연수에서 청각장애인 교원을 위한 문자통역이나 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 교원도 대체자료 형태로 만들어진 연수자료가 없어서 강의 이해에 제약이 크다. 지체장애나 뇌병변이 있는 교사도 편의시설이나 대필 서비스가 필요하지만 지원은 꿈도 꾸기 힘들다.
온라인 사이트나 모바일로 연수를 들을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배 교사는 "연수를 들어야 할 때면 장애인 교사가 있는 카톡방에는 어떤 연수원 애플리케이션이 '접근성'이 좋은지 묻는 대화가 많이 올라온다"고 설명했다. 연수 내용보다는 장애인 교사가 들을 수 있는 연수인지가 더 급한 것이다. 수강이 가능한 연수를 찾다 보면 선택권이 대폭 제한될 수밖에 없고 권고 연수시간을 채우는 것 자체도 어려워진다.
김헌용 서울 구룡중 교사는 "보통 학교에서 연간 60시간 이상 연수를 받도록 권고한다"며 "억지로 구색을 갖추는 느낌이 들어 필수연수 말고는 지난 몇 년간 권고 시간을 채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가 있는 김 교사는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조에서 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 교사는 "필수연수마저 장애인 교사 지원이 안 된다면, 마치 의무교육이라고 해놓고 학교에 갈 수 없는 환경을 만든 것과 똑같다"고 지적했다.
지원이 없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지원을 문의하는 것조차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지난해 서울시교육감이 직접 유튜브 생방송으로 청렴 연수를 진행했는데 따로 자막이 제공되지 않았다. 배성규 교사는 "영상을 꼭 시청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을 때 담당 장학사에게 문자통역이 제공되는지 물으려다가 원격수업 준비로 이미 지친 상태여서 문의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배 교사는 들으나 마나 한 연수를 1분 보다가 껐다.
장애인 교사들은 교원연수 진행 시에 장애인 교사 지원을 의무화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는 교육부 '교원 연수 중점 추진방향'에서 "장애인 교원 연수기회 제고 및 편의 증진을 위해 장애유형과 장애정도 동을 고려해 연수접근성 개선"을 안내할 뿐이다.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장애인 교원 연수를 위한 편의제공을 의무화하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아직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잠자고 있는 상태다.
김헌용 교사는 "성인지나 안전 관련 등 필수로 들어야 하는 연수부터 장애인 교사 지원을 의무화해야 한다"면서 "교사들이 많이 듣는 연수를 우선으로 점점 다른 연수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연수를 신청하는 단계에서 장애인 교사가 필요한 지원을 요청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는 당사자가 일일이 직접 문의해야 한다. 온라인 연수도 하나씩 틀어봐야 지원 여부를 알 수 있어 '로또'라는 말이 나온다.
학교 내에서 연수를 진행하는 필수연수도 학교 측의 예산 부족을 이유로 장애인 교사가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서 예산을 마련해준다고 해도 장애인 교사가 전보로 학교를 이동하면 새로운 학교에서 또 장애인 교사 지원 관련 예산을 책정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배성규 교사는 "매년, 매일 전쟁일 수밖에 없다"며 "신규 장애인 교사는 더더욱 냉가슴일 것"이라고 말했다.
kingko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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