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는 침수, 딜러는 잠수..2만대 발생 침수차, 또 속지 않으려면
침수 없다더니 밝혀지면 모르쇠
속아산 뒤에는 피해배상 험난해
얼마 뒤 운행 중 엔진에 이상을 느낀 박씨는 렉서스 공식 서비스센터를 찾아 점검을 받다가 침수차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딜러에게 항의했다. 딜러는 자신도 해당 차를 매입할 때 침수차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보상을 거부했다. 연락도 받지 않았다.
#이상신 씨(가명·30대)는 부천에 있는 중고차 매매업체를 찾았다. 이씨는 자신이 사려던 기아 쏘렌토 상태를 딜러에게 물었다. 딜러는 중고차 성능·상태점검 기록부를 보여주며 침수되지 않은 차니 안심하라고 말했다. 이씨는 엔진이나 실내도 말끔해보여 2300만원을 주고 차를 가져왔다. 그러나 해당 차를 운전할수록 차가 불안정하고 기능 오류가 많아 기아차 서비스센터에 점검을 맡겼다. 센터 직원은 운전석 스티어링휠(핸들)까지 침수돼 보증수리 대상이 아니라면서 침수 확인서를 발급해줬다. 화가 난 이씨는 딜러에게 환급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침수차 피해 사례다. 침수차는 '물 먹은 차'면서 '(사면) 물 먹는 차'로 여겨진다. 자동차 생산 차질을 일으킨 반도체 물량 부족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자동차는 전자전기 장치와 금속으로 구성됐다.
물과는 상극이다. '물 먹은' 뒤에는 속 썩이는 일이 많다. 갑작스러운 고장으로 탑승자 생명이나 보행자 생명을 위협한다. 침수 피해를 당한 차주는 폐차하거나 싼값에 중고차로 넘기는 게 일반적이다. 침수차는 사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말도 있다.
태풍이나 집중호우로 침수차가 대량으로 발생하자마자 '침수차 주의보'가 발령된다. 문제는 망각이다. 침수차는 발생 즉시 중고차 시장으로 흘러 들어오지 않는다.
한두 달은 지나야 중고차 시장에 유입되기 시작한다. 침수차는 수리가 까다로워 흔적을 없애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범퍼·도어 파손 같은 일반적인 수리와 달리 '속'을 뒤집어야 한다. 악취도 제거해야 하기에 시간도 오래 걸린다.
침수차를 몰래 유통시키려는 악덕 호객꾼들은 중고차 수요가 많은 성수기를 노리기도 한다. 성수기에는 중고차 가격이 비싸고 인기 매물은 상대적으로 매입 경쟁이 치열해 침수차를 몰래 팔기 좋아서다. 매년 3월부터 10월까지가 계절적 성수기에 해당한다.
소비자들이 침수차 발생 사실을 '망각'하는 시점을 노리기도 한다. 보통 3개월 정도 지나거나 해가 바뀌면 침수차 발생 사실을 잊어버린다. 사실상 이때부터 '침수차 경보'가 발령돼야 한다.
지난해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침수된 차량이 2만대 이상이라는 사실은 해가 바뀌면서 소비자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다.
14일 손해보험협회와 자동차보험을 취급하는 손보사 12개사에 따르면 지난해 7월 9일~8월 28일 장마와 태풍 '바비'로 발생한 침수·낙하물 피해 차량 접수 건수는 9484건이다. 추정 손해액은 848억원이다.
같은 해 9월 2~10일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 침수·낙하물 피해 차량은 1만1710건이 접수됐다. 손해액은 309억원으로 추산됐다.
7~9월 장마와 태풍으로 접수된 피해 건수만 2만1194건, 추정 손해액은 1157억원에 달한다. 이는 '역대급 피해'로 접수 1건당 1대가 피해를 입었다고 가정하면 2003년 9월 태풍 매미(4만1042대), 2012년 태풍 볼라벤·덴빈·산바와 집중호우(2만3051대)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손해액은 역대 '최악'이다. 1157억원으로 피해 차량이 가장 많았던 태풍 매미(911억원) 때를 뛰어넘는다.
보험사에 접수되지 않은 침수 피해 차량도 많다. 자동차보험 자기차량손해담보(자차보험)에 가입해야 보험사에 피해를 보상해달라고 접수할 수 있다. 보험개발원이 집계한 지난해 1분기 자차 보험 가입률은 71.5%다.
단순 산정하면 침수차 10대 중 3대는 손보사 집계에 포함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 정도만으로도 침수차는 3만대가 넘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차 보험에 가입했지만 '침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보상받지 못한 차와 선루프나 창문을 열어뒀다가 발생한 침수 피해 등 가입자 과실로 보상 대상에서 제외돼 접수를 못한 차도 있다.
'침수 전과'를 남기지 않기 위해 자차 보험 가입자가 '자의든 타의든' 자비로 수리했을 가능성도 있다. 부분 침수됐다면 전문가도 알아채기 어려운 수준으로 침수 흔적을 없앨 수 있다.
중고차·정비업계와 자동차시민단체는 지난해 대거 발생한 침수차 중 폐차되지 않은 차량들이 중고차 시장에 몰래 흘러 들어와 판매됐거나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로 직접 차량을 매입해 판매하는 중고차 기업인 A사에는 침수차를 팔려는 소비자들이 종종 찾아온다. 품질보증 서비스를 펼치는 A사는 침수차를 샀다가 오히려 보상할 돈이 많아져 더 큰 낭패를 당할 수 있어 거절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입하기 전 차 상태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직영 중고차 기업에서 거절당하거나 전문가도 쉽게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침수 흔적을 감춘 침수차들은 중고차 시장에 몰래 들어온다.
일부 침수차는 암암리에 호객꾼이나 사기꾼에게 싼값에 넘어간다. 소비자를 유혹한 뒤 협박해 비싼 값에 판매하는 '미끼 매물'로 악용된다.
중고차업계에서는 침수차가 발견됐더라도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다. 괜히 소문이 퍼지면 판매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자동차시민단체와 정비업계 전문가들은 중고차 성수기를 맞아 침수차 대량 발생 사실을 망각한 소비자들을 겨냥해 침수차가 암약할 것으로 우려한다.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대표는 "침수차를 팔려는 악덕 호객꾼은 소비자 경계심이 느슨해지고 매물이 부족할 때를 노린다"며 "침수차는 정상적인 매물보다 저렴한 가격에 나오기 때문에 싼값에 혹했다가는 혹을 붙이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교통안전협회, 교통문화운동본부,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등 6개 시민단체 연합(이하 교통연대)이 참여했다.
교통연대는 중고차 시장을 현대차 기아 한국지엠 등 완성차업체와 대기업에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 허위·미끼 매물과 침수차, 사고차로 발생하는 소비자 피해를 앞세웠다. 교통연대에 따르면 지난 9일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서명 참여자가 10만명을 돌파했다.
속아서 침수차를 사지 않으려면 침수차 흔적을 찾아내야 한다. 침수차 흔적을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안전벨트다. 안전벨트를 끝까지 감아보면 끝부분에 흙이나 오염물질이 묻어 있을 수 있어서다.
그러나 안전벨트만으로는 침수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 침수차를 속여 파는 악덕 딜러나 정비업자 대부분은 안전벨트를 새 상품으로 교체한다.
또 침수차 흔적이 되는 실내 악취나 금속 부위 녹 등 눈에 보이는 침수 흔적을 없애 자동차 전문가가 시간을 들여 점검하지 않는 이상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무당 침수차 구별법'이다. 악덕 딜러도 안전벨트가 깨끗하다, 녹이 없다, 냄새가 나지 않는다, 오물 흔적이 없다는 등의 말로 침수차가 아닌 것처럼 소비자들을 속인다.
침수차를 가장 효과적으로 골라내려면 우선 보험개발원의 자동차이력정보서비스(카히스토리)를 이용해야 한다.
카히스토리에 접속하면 침수차 조회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차량번호나 차대번호를 입력하면 바로 즉시 침수차량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단 자동차보험으로 침수 피해를 보상받은 차량만 파악할 수 있다.
맹점은 있다. 자차 보험에 가입했지만 침수 피해를 자비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전과'를 남기지 않는 차들을 걸러낼 수 없다.
이럴 때는 침수차를 솎아낼 보조 수단을 찾아야 한다. 번호판이나 소유자를 바꿔 침수 흔적을 감추는 '침수차 세탁'은 차량번호로 파악할 수 있다.
번호판이 교체되고 소유자가 짧은 기간에 여러 번 바뀌었다면 침수 여부를 더욱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판매자가 침수차가 아니라고 주장하더라도 정비 이력을 파악해야 한다. '자동차365'에서는 정비 이력은 물론 검사 이력, 침수 여부, 사고 이력 등도 파악할 수 있다.
침수차가 대량으로 발생한 지난해 7~10월에 하체, 시트, 엔진오일 등이 집중적으로 교환됐다면 침수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특약사항에 "판매업체가 알려주지 않은 사고(침수 포함) 사실이 나중에라도 밝혀지면 배상한다"는 내용을 넣어두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정비 전문가와 함께 중고차를 구입하러 가는 '중고차 동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중고차 기업의 품질보증 서비스, 수입차 브랜드나 할부금융회사가 판매하는 '인증 중고차'를 구입하면 침수차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임기상 대표는 "자동차 365, 소비자원 피해구제 신청 등은 소비자 보호에 기여하고 있지만 피해 예방이나 배상 기능은 부족하다"며 "소비자가 조심하지 않아도 믿고 살 수 있도록 중고차 시장을 대기업에 개방하고 피해가 발생했을 때 판매자가 책임지도록 강제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번에는 '돈 되는 사고차 구입법'을 소개합니다. 자동차 정보 허브(Hub)와 허브(Herb)를 지향하는 허브車, 세상만車, 카슐랭, 왜몰랐을카 시리즈도 연재합니다. ☞기자구독☜(글자를 클릭하시면 링크로 연결됩니다) 하시면 시리즈 기사를 쉽고 빠르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gistar@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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