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170명 집합..초유의 軍배식작전 실패 비밀, 그들은 안다

박용한 입력 2021. 5. 16. 06:01 수정 2021. 5. 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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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배틀그라운드]
'배식 작전' 실패 조리병 잘못?
현장 지휘관이 성공·실패 결정
미군처럼 복무 환경 개선 필요

병사들이 쏜 SNS 폭탄에 170여명의 장군이 집합했다. 최근 병영 내 부실 급식과 생활여건에 대한 불만이 외부로 쏟아지면서다. 지난 7일 서욱 국방부 장관은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를 소집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11일 서 장관은 전방 부대를 방문해 현장을 점검했다. 13일 박재민 국방부 차관은 동부전선 부대를 찾아 급식 여건을 살폈다. 각 군 참모총장도 연일 현장 부대로 내려가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2019년 6월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는 조리병과 꼬꼬떡국에 들어갈 살코기를 손질해 봤다. 부대 전투력의 원천은 부대 급식이며 조리병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중앙포토]


부실 급식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다음의 보기 중 모두 골라보세요. 1번 ‘조리병’, 2번 ‘부대 지휘관’, 3번 ‘늦게 배식 받은 병사’, 4번 ‘국방부’. 정답은 기사 마지막에 있다.

최근 드러난 부실 급식 사례는 육군 비중이 높다. 육군에선 통상 부대 병력 50명에 조리병 1명을 배정한다. 병력 교체 및 휴가자 공석을 반영해 300명 규모 부대라면 6~7명을 배치한다.

초유의 군대 ‘배식 작전’ 실패의 비밀은 군 급식 최전선에 배치된 조리병이 알고 있다.

지난 11일 서욱 국방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이 GOP부대를 방문해 부대 여건과 대비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국방부.


맛이 없다는 불만에 조리병은 할 말은 있다. 주특기 번호 ‘231.107’ 병참 임무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조리병은 사실 조리 전문가는 아니다. 관련 경험도 전혀 없다. 대학에서 법학이나 국문학 등 조리와 관련 없는 전공을 공부하다 입대했다.

대다수 조리병은 입대 후 육군종합군수학교에서 3주 동안 조리병 후반기 교육을 받았을 뿐이다. 간혹 조리 관련 전공자가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전공을 살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물론 아직 졸업하지 못한 채 1~2학기만 다니고 들어와 아쉬움도 있다.


군 급식 여건은 부대마다 크게 달라

조리병 대부분은 조리 관련 경험이 없지만 입대 후 조리법을 배우며 맡은 임무를 한다. 사진 박용한.


‘월화수목금금금’ 조리병은 주말도 휴일도 없다. 대부분 부대에선 조리병이 급식을 전담한다. 하루 세끼를 항상 만들어야 하는 끊임없는 작전이다. 외출이나 외박도 남들처럼 나갈 수 없다. 당연히 조리병은 누구라도 피하려는 보직이다. 사기도 떨어진다.

익명을 요구한 부대 지휘관은 “조리병을 그만두고 싶다며 다른 보직으로 바꿔 달라는 상담을 많이 듣지만, 조리병과 자리를 바꿔줄 다른 병사가 없다”며 “짧아진 복무 기간을 생각하면 돌아가며 조리병을 맡길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볶음 요리는 대형 솥에 올린 식자재가 타지 않도록 빠르게 섞어줘야 한다. 삽을 쓸 정도로 양이 많고 꽤 무거워 체력과 기술이 필요했다. 가까이 다가서면 뜨거운 열기에 부상 위험도 있다. [중앙포토]


레이더 및 방공 고지와 같은 고립된 장소에 마련된 부대 중 규모가 작은 경우 전담 조리병이 1명뿐이다. 일반 병사 1명이 조리 업무와 전투 임무도 병행한다. 다른 부대보다 ‘선수층’이 얇다 보니 배식 여건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고층 건물에 마련된 방공포 진지에는 조리 공간도 없다. 모든 식사를 외부에서 만든 음식을 배달받아 해결한다. 현장에서 조리한 음식보다 맛이 떨어지고 배식 중 음식이 부족해도 추가로 만들기 어렵다. 라면으로 부족함을 때워야 한다.

해군 장병 식단(소고기 미역국ㆍ닭갈비ㆍ해쉬브라운튀김ㆍ두부조림ㆍ깻잎ㆍ고추ㆍ쌈장ㆍ도토리묵무침ㆍ배추김치ㆍ키위)은 맛 좋은 음식으로 가득하다. [중앙포토]


해군 급식 맛 비결은 ‘돈’ 아닌 ‘사람’ 때문에

육군과 달리 해군 급식은 맛 좋기로 유명하다. 함정 근무 특수성 때문에 타군보다 식자재 비용을 높게 책정한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고단한 임무 탓도 있지만, 파도에 흔들리는 함정에 타고 있으면 자연스러운 위장 운동으로 금방 배고픔을 느끼게 된다. 그만큼 체력 소모가 크다는 뜻이다.

하지만 진짜 맛의 비결은 조리병에 있다. 육군과 달리 해군은 조리 전공 부사관을 배치했다. 한식ㆍ중식ㆍ일식ㆍ양식 등 여러 개의 조리 자격증을 갖춘 부사관이 통솔하는 가운데 조리병이 작전을 펼친다. 밤낮 운항하는 함정이라 야식도 나오기 때문에 하루에 끼니를 네 번이나 챙겨도 불만이 나오지 않는 배경이다.

해군 함정에서는 24시간 근무하기 때문에 야식도 제공한다. 야식을 준비하는 조리병. [중앙포토]


육군에선 ‘이모’가 도와준다. 부대는 조리를 지원하기 위해 민간인 조리원을 채용했다.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를 함께하면서 비법도 전수해 준다. 군 당국은 부대별 1명 정도 채용한 민간 조리원을 앞으로 더 늘려갈 방침이다.

하지만 민간 조리원이 전반적인 급양 문제를 모두 총괄하는 건 아니다. 평소와 달리 식사량이 늘거나 조리 과정에 예측하지 못한 결과로 반찬이 부족해도 그때그때 적절한 조치를 충분히 하기 어렵다. 급양 담당관이나 부대 지휘관의 관심과 역할이 필요하다.

식자재를 나르는 조리병 [중앙포토]


300명 복무하는 부대는 일주일에 3번이나 부식 공급을 받는다. 한 번에 우유 1400개와 삼겹살 130㎏ 등 1.5t 분량이다. 2만 명이 상주하는 육군훈련소는 하루 평균 닭고기 827마리와 쌀 200가마를 소비한다. 규모가 꽤 크다. 그만큼 오차도 크게 만들어진다. 어쩌다 보면 마지막에 식사하는 병사는 반찬 한두 개 빠진 식사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부대장이 급식에 신경만 쓰면 이런 일은 없다” 현장의 목소리다. 병사는 언제나 부대에서만 식사한다. 하지만 부사관과 장교 등 간부는 빈번하게 외부로 나가 식사를 선택할 수 있다. 이때문에 병사 고충을 잘 모른다는 지적이다.

지난 7일 국방부는 대책을 발표하면서 배식량이 부족할 경우 참치캔ㆍ곰탕ㆍ짜장/카레 소스와 같은 ‘비상부식’과 컵라면으로 공백을 메우겠다고 했다. 부실 배식이 발생하지 않도록 간부가 직접 챙겨보겠다고 강조했다.


‘배식 작전’ 현장 지휘관 역할 중요

지난달 18일 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에 자신을 51사단 예하 여단 소속이라고 밝힌 게시자가 일회용 도시락 용기에 제공된 급식 사진을 올렸다. 게시자는 휴가 복귀 후 격리 중 부실한 급식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페이스북 계정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캡처


이는 사실 새로운 지침은 아니다. 현장 지휘관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뒤늦게 강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지침이 없더라도 부대 지휘관이 급식 상황을 감독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조치를 하면 배식 실패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는 부대 전투력을 유지해야 할 지휘관의 당연한 책무다.

“잔반 측정 그만하면 좋겠다” 이 또한 현장의 불만이다. 군에선 잔반 줄이기 운동을 강조했다. 매끼니 식사가 끝나면 잔반을 모아 무게를 확인한다. 부대별 자료를 비교해 많이 나온 부대는 질책을 받는다. 잔반을 줄여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넉넉한 식사 준비를 못 한다는 부작용이 있다.

이 때문에 ‘남기지 않고 먹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자칫 ‘반찬이 부족하다’는 불만으로 이어진다. 날씨와 훈련 일정 등 여러 요소를 판단해도 식사량 예측은 현실의 결과를 벗어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배식하던 중간에 부족함을 깨 닫아도 식사 시간 안에 빠르게 조리해 보충하는 건 사실 어렵다.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이 13일 공군 경북지역 방공관제부대를 찾아 격리 장병들의 식사 준비를 지원하는 병사를 격려하고 있다. 사진 공군.


장병 식습관을 고려한 융통성 있는 조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급식 선호가 낮은 주말 아침은 빵과 같은 대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크다. 국방부도 지난 7일 대책에서 신세대 장병 취향을 고려해 브런치는 주 1회, 배달음식은 월 1회 제공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군 급식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시범 운용 중인 외부 업체 식당 운용을 확대하자는 분석이다.

미군 병사 식당에서 밥ㆍ감자ㆍ빵ㆍ스테이크를 맛봤다. 5달러 40센트(약 6500원) 현금을 내고 쿠폰을 구매했다. [중앙포토]


미군을 보면 답이 나온다. 미군은 부대 내부에 외식 매장도 설치했다. 평택 험프리스 미군기지에는 치킨ㆍ타코ㆍ피자 등 미군이 선호하는 외식 매장이 줄지어 있다. 미군은 각자 원하는 매장에서 구매한 음식을 들고 둘러앉아 자유롭게 식사한다.

미군은 병사 식당도 뷔페 형식으로 운용해 만족도가 높다. 5달러 40센트(약 6500원)를 내고 쿠폰을 구매한 뒤 밥ㆍ감자ㆍ빵ㆍ스테이크 등 마음껏 골라 먹을 수 있다.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함께 방문해 식사하기도 했다.


미군처럼 복무 환경 개선 신경 써야

미군 장병은 부대에 입점한 치킨ㆍ타코ㆍ피자 등 외식 매장에서 각자 원하는 음식을 구매한 뒤 둘러 않아 자유롭게 식사했다. [중앙포토]


한국군도 규모가 큰 부대는 당장 도입도 가능하다. 규모가 작은 부대는 조리병 대부분을 민간 조리원으로 대체하면 전문성 부족에 따른 급식 질 저하를 막고 병력 부족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 부대 지휘관의 관심과 지원은 필수다.

이번 기회에 소규모 부대로 흩뿌려진 병영을 중간 규모 이상으로 모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군 장성은 “군사 위협 환경과 작전 조건이 바뀐 만큼 길목을 지키는 현재의 부대 배치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군처럼 부대 규모를 키우면 병영 생활 여건이 높아질 수 있어서다.

모든 부대에 적용할 수 없더라도 보다 많은 장병의 복무 환경이 개선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십년 뒤에나 효과를 볼 수 있다. 초등학생이 입대하는 미래가 생각보다 가깝다. 서둘러 나서야 한다.

부실 급식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이제 정답은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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