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와인이 어려운 이유 [명욱의 술 인문학]

이복진 2021. 5. 15.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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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에 나온 술 만화가 있다.

일본과 한국에서 와인 붐의 기폭제 역할을 한 '신의 물방울'이다.

나한테 이 책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와인 이름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프랑스 등이 백년전쟁 직후까지도 완벽한 중앙집권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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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제1사도로 등장한 ‘도멘 조르주 루미에르 샹볼 뮈지니 프리미에 크뤼 레 자무뢰즈 2001’는 조르주 루미에르 와이너리가 샹볼 뮈지니 마을 1등급 포도 밭 중 특급 밭에서 2001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는 의미다.
17년 전에 나온 술 만화가 있다. 일본과 한국에서 와인 붐의 기폭제 역할을 한 ‘신의 물방울’이다. 나한테 이 책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와인 이름이다. 술 이름 하나가 이렇게 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제1사도로 등장한 ‘도멘 조르주 루미에르 샹볼 뮈지니 프리미에 크뤼 레 자무뢰즈 2001(Domaine G.Roumier Chambolle Musigny 1er Cru Les Amoureuses 2001)’. 제품 하나에 단어가 5~6개는 들어간다. 풀이해보자면 ‘도멘 조르주 루미에르’는 조르주 루미에르 와이너리라는 제조사이며, 여기에 ‘샹볼 뮈지니’는 마을의 이름, ‘프리미에 크뤼’는 1등급 밭, ‘레 자무뢰즈’는 이 1등급 밭 중에서 높은 퀄리티로 특급 밭에 필적하는 밭, 그리고 ‘2001’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는 의미다. 회사 이름 하나도 어려운데 동네 이름에 밭 이름까지 기억해야 한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어려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은 그리 어려워하지 않는다. 마치 우리 것에 비유하면 ‘제주도 고씨 할머니가 최고 밭에서 재배한 좁쌀로 빚은 2000년도 산 오메기술’이 되기 때문이다. 즉 로컬의 의미를 그대로 살렸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와인은 지역마다 와인 관련 용어가 조금씩 다르다. 예시로 부르고뉴의 와이너리는 ‘도멘’으로 불리지만, 보르도 지역은 성이란 의미의 ‘샤토’란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여기에 더 심한 것은 지역 및 마을마다 다른 등급체계다. 보르도 지방의 와인 등급은 와이너리에 붙지만, 부르고뉴는 포도밭에 주로 붙는다. 론 지방은 마을에 붙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같은 보르도라고 하더라도 그 안의 메도크, 그라브, 생테밀리옹 등 또 다른 체계의 등급 기준을 갖는다.

이렇게 된 이유는 프랑스 등이 백년전쟁 직후까지도 완벽한 중앙집권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와인 산지 부르고뉴를 지배한 부르고뉴 공국도 1790년도까지 명맥을 유지했었다. 그렇다 보니 오래된 전통을 가진 지역이면 지역일수록 그 동네의 이름을 끝까지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에 와인용 포도 품종까지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더불어 프랑스 전통 와인은 포도 품종 기재를 잘 하지 않는다. 동네 이름만 언급해도 “아 그 동네 와인”이라며 이미 느낌이 온다는 것이다. 마치 포천 막걸리 하면 “아~포천” 하는 느낌과 비슷할 수 있다.

미국, 칠레 등 신대륙 와인은 이러한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같이 동네 이름만 대면 아는 이름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1970년대 이후 포도 품종을 적극적으로 기재한다. 품종만 보더라도 어떤 맛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어려운 와인을 꼭 스트레스받아가며 공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취미로 접근한다면 이 역시 일상의 기쁨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와인도 저렴할 수 있고, 막걸리도 고급스러울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다양성을 알아준다면 과음과 폭음이 아닌 풍성하고 즐거운 ‘슬기로운 술 생활’이 될 것이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교수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객원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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