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탈도장운동'의 부진과 韓 '타다·우버'의 좌절[성상훈의 정치학개론]

성상훈 2021. 5. 1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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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신산업 vs 구산업'
갈등양상 보여준 '탈도장운동'
정치권, 신산업 vs 구산업 갈등에서
늘 구산업 이해관계자의 손을 들어줘
기사 내용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일본의 '탈도장·탈팩스 운동'을 들어보셨나요? 말그대로 도장과 팩스를 더이상 쓰지 말자는 운동입니다. 대부분의 서류를 전자문서화해 사용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해가 잘 안가지만 일본은 놀랍게도 여전히 서류에 직접 도장을 찍고, 팩스를 보내는 방식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일본내 정부·민간을 가릴거 없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재택근무를 실시하면서도, 도장을 찍기 위해 일주일에 서너 번씩 출근하는 이른바 '도장출근'이 이어지자, "이젠 바꿔야한다"는 인식이 확산됐습니다. 이렇게 지난해 '탈도장·탈팩스' 운동은 시작됐습니다. 

‘산토리 홀딩스’와 같은 주류 및 음료 회사와 ‘야후재팬’과 ‘라인’ 등의 IT기업 등은 더이상 도장을 쓰지 않고 문서를 전자화하기로 했습니다. 일본 정부 역시 정부기관들의 전자화 추진을 공언했습니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 성과는 어떨까요. 기대와 달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게 중론입니다. 도장 대신 효율적인 전자문서를 사용하자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가 왜 먹혀들지 않았을까요 

 신산업vs구산업 갈등과 정치인의 '습성'

상사에게 결재받는 서류에는 인사를 하듯 비스듬히 도장을 찍어야 한다.


가장 큰 원인은 관련 업계의 반발 때문입니다. 일본의 도장의 역사는 깊습니다. 에도시대 직후인 1873년 공식 서류에 도장을 찍기 시작한 이후 도장 문화는 150여 년간 일본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뿌리깊은 도장 문화에서 나온 '악습'도 있었습니다. 이른바 직장 '도장 예절' 입니다. 일부 기업에선 결재란에 도장을 찍을 때 부하 직원들은 고개 숙여 인사하듯 왼쪽으로 비스듬히 찍고 사장만 바로 찍는 우스꽝스러운 관행이 이어져왔습니다.

150년간 이어오며 형성된 도장 산업 규모와 이해관계자들의 수는 이제는 취미용으로만 도장을 이용하는 우리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바꿔말하면 일본 도장산업의 '끝'은 이들 모두의 '실직'과 직결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탈도장운동에서는 정치인들의 '습성'도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은 전자문서화의 길을 갈 것이고 그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도장 산업 이해관계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일본 의회내에는 '도장 문화를 지키는 의원 연맹(도장의련)'까지 있습니다. 또 정보기술(IT)을 담당하는 부처 장관이 '도장 문화를 지키는 의원 연맹(도장의련)' 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도장의련 소속 의원들은 “졸속으로 진행되는 탈도장 정책 때문에 날인 행위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흔들리고 있다”며 “도장은 여전히 본인 확인이나 의사 확인용으로 매우 유효한 수단”이라고 항변했습니다.  전국에서 도장 제조업체가 가장 많은 야마나시현의 나가사키 고타로 지사 역시 기자회견까지 열며 “도장에 대해 부당하게 평가하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지금 시대에 사람이 직접 도장을 찍는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수용하면서도 도장산업을 지키기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에 우스꽝스럽게도 '사람 대신 도장을 찍는 로봇'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타다, 우버, 대형마트 규제까지...한국판 '탈도장운동'의 실패

  

탈도장 운동을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설마 도장이 전자문서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겁니다. 정치인들의 이율배반적인 행보를 해석하긴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의 '표'와 '당선'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그래서 관련 이해관계자의 숫자도 적은 신산업 보다는 이미 산업을 형성하고 있어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있는 구산업의 손을 들어주는 선택을 하는게 어찌보면 개인적 입장에서는 당연합니다. 

'시끄럽지 않은' 결정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구산업 이해관계자들의 격한 반발은 정치인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신산업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던 정치인이 받았던 비난 세례와 공격은 객관적 판단을 하기 쉽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로서도 "아직도 도장을 쓰네"라며 조소하고 넘길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역시 신산업과 구산업 갈등에서 이같은 '손쉬운 선택'을 하는 정치권의 행태를 그대로 관찰해왔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탈도장 운동의 부진을 조소하는 우리처럼 ,주변 국가 어디선가는 우리를 조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너무나도 유명해진 타다와 우버의 사례는 탈도장운동의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많은 택시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을 들어준 정치권의 의해 결국 불법화된 타다와 우버는 국내에서 사라지게 됐습니다.

지난해 드론과 이륜 자동차 등을 이용한 택배를 법제화하고 본격적인 정부지원을 늘리려는 움직임도 “다른 운송수단을 법적으로 인정하면 화물차 택배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화물노조의 반발을 정부여당이 수용하면서 무산됐습니다.

앞으로 유망 신산업이 될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드론 택배 산업의 법적 근거는 끝내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미 3~4년 내 드론택배를 본격 상용화하겠다고 밝힌 미국과는 정 반대의 움직임 입니다. 

택시업계, 화물업계 모두 '권리금'이 붙은 영업용 번호판이 문제가 됐습니다. 택시와 화물차 모두 영업을 위한 번호판에 수천만원의 프리미엄이 붙는데, 이들은 새로운 운송수단의 등장으로 이 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습니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을 위해 정치권은 신산업의 발전을 막는 규제를 내놓은것입니다.

비슷한 사례는 너무나 많습니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전통시장과 온라인 쇼핑 플랫폼'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여줬습니다.

정치인들이 신산업과 구산업의 갈등에서 쉽고 이득이 되는 길만을 선택해 왔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보입니다. 구산업 이해관계자들을 위해 신산업 발전을 막는 규제책을 내놓는건 가장 쉬운 방법이면서도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이라는 건 너무도 많은 역사적 사례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신산업은 장려하돼, 구산업 이해관계자들의 피해는 최소화하고 연착륙시키는 '매우 어렵지만 반드시 해내야 하는길'은 외면했습니다. 
 

 '붉은 깃발법'은 언제나 그때는 옳고 지금은 틀렸었다

사진=연합뉴스


신산업과 구산업의 갈등은 흔히 생각하는 '사회적 약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는 모바일 앱을 통해 법률 서비스를 받을수 있는 이른바 '리걸테크' 업계에 대한 견제를 시작했습니다. 플랫폼 앱을 통해 형량등을 예측해 주는 '로톡'은 물론 네이버 블로그나 지식인에 전문가 답변을 다는 것까지 막을 태세입니다. 

의료계 역시 원격 의료 스타트업을 허용하려는 정부 움직임을 전면반대하고 있습니다. 

두 업계 모두 다양한 반대의 이유를 제시하고 있지만, 본질은 결국 업계 이익의 침해를 막기 위한 움직임입니다.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언제가는 비대면으로 법률서비스를 받고, 원격으로 의료 서비스를 받을거란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흐름입니다. 일본이 시간이 지나면 도장대신 전자문서를 쓸거라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어렵지 않은 전망입니다.

택시업계, 변호사업계, 의료업계 어떤 관련 이해관계자들이라도, 이러한 행보를 비판하기는 어렵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건 너무도 당연한 행보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건 중간 중재자 역할을 해야할 정치권의 판단입니다.

정치권이 이들과 마찬가지로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인다면 우리 사회 지도자인 정치인은 그 존재의의가 사라집니다. 표만을 위해 움직여서는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마차업계 이해관계자들을 만든, 운행하는 자동차 앞에 늘 붉은 깃발은 든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붉은 깃발법'의 파장은 적지 않았습니다. 영국 자동차 산업은 경쟁국가인 독일에 완전히 뒤쳐졌고, 거기서 시작된 격차는 경로의존성을 타고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영국 정치인들은 후세대 영국인들에게 엄청난 빚을 지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문제를 취재할때마다 만나는 전문가들은 구산업 이해관계자들을 품을 안전망과 신산업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는건 어려워도 가야할길이라고 입을 모아 강조합니다.

정치인이라는 위치는 쉬운 결정만을 해서는 안되는 자리입니다. 누군가는 당장의 이익보다는 미래를 봐야합니다. 당장의 이익이 되지도 않으면서, 어렵기도한 과제를 해결해달라고 뽑힌게 '사회의 리더'인 정치인이 아닐까요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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