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윤 공소장 檢전산망→중앙일보 유출보다 중요한 건?
MBC "유출자 뻔해, 신속히 유출 고질적 수사관행" 박범계 "차곡차곡 쌓아둬" 형사사건 공개금지 감찰로?
김학의 성폭력→김학의 불법출금→공소장 언론유출로…유출보다 공소장 사실여부 더 중요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직권남용 사건 공소장이 하룻만에 중앙일보 등에 유출된 것으로 드러나 누가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 주목된다.
이에 김학의 성폭력 의혹→김학의 불법출금 외압 의혹→이성윤 공소장 언론에 불법유출 사건으로 중심이 여러 차례 옮겨가는 양상이다. 이 같은 중심사건의 변화는 검찰 스스로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불법적으로 어떻게 유출됐느냐 보다 공소장에 적시된 내용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언론이 당사자 입장도 충실히 반영했는지 등을 더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검찰청은 15일 미디어오늘에 보낸 SNS메신저를 통해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금일 오전, 언론에 보도된 공소장 유출 사안에 대해 대검찰청 감찰1과, 감찰 3과, 정보통신과가 협업하여 진상을 규명하도록 지시하였다”고 밝혔다.
법무부도 지난 14일 기자들에 보낸 공지사항에서 “법무부장관은 오늘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직권남용 등 사건의 공소장 범죄사실 전체가 당사자 측에 송달도 되기 전에 그대로 불법 유출 되었다는 의혹에 대하여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진상을 조사하도록 지시하였다”고 밝혔다.
조사의 법적 근거와 관련 법무부 관계자는 14일 미디어오늘에 보낸 SNS메신저 답변에서 “형사사건공개금지에 관한 규정 이 일단 그 근거가 될 수 있는데 정확한 것은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기소 하룻만에 공소장 보도, 채널A 기소 당일 일부확보
문제가 된 보도는 지난 13일 오후 중앙일보가 온라인판에 처음 게재한 '[단독]이성윤 공소장엔…조국 “이규원 유학 가니 수사 말라”'다. 중앙일보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16페이지짜리 공소장에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윤대진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전화로 이규원 검사의 해외 연수를 언급하며 수사 무마를 요구한 정황이 담긴 것으로 나타났다”며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2일 재판에 넘겨진 이성윤 지검장 공소장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수사 무마 요구에 관여한 정황이 담겨있다고 한다”고 썼다.
중앙일보는 “지난 2019년 6월 미국 연수를 앞두고 있던 이규원 검사는 안양지청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가짜 내사번호 등으로 공문서를 조작해 불법 출국 금지한 의혹으로 자신을 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사법연수원 36기 동기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당시 선임행정관)에 이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고 썼다.
이어 이 신문은 “이광철 비서관은 이를 상급자인 조국 당시 민정수석에 전하면서 '이규원 검사가 곧 유학 갈 예정인데 검찰에서 이규원 검사를 미워하는 것 같다. 이 검사가 수사를 받지 않고 출국할 수 있도록 검찰에 얘기해달라'고 말해 조국 수석은 이 내용 그대로 윤대진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전달했다”며 “이에 윤대진 검찰국장은 연수원 25기 동기로 개인적 친분이 있던 이현철 안양지청장에 전화해 '김학의 긴급 출금은 법무부와 대검찰청의 수뇌부 및 서울동부지검 검사장 승인 아래 이뤄진 일인데 이규원 검사를 문제 삼아 수사하느냐' '이규원 검사가 곧 유학을 가는데 출국에 문제없도록 해달라'며 조 수석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고 썼다.
이밖에도 중앙일보는 공소장에는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이 윤대진 당시 검찰국장을 불러 강하게 질책하고 경위파악을 지시했다는 내용도 들어있으며, 윤 전 국장이 이현철 당시 지청장에 전화해 항의한 내용도 들어있다고 썼다. 이성윤 당시 대검 반부패장도 안양지청에 법무부 출입국관리본부 A 서기관에 대한 조사경위서 제출을 지시하기도 했다는 공소장 내용을 중앙일보는 상세히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온라인 판 외에 14일자 지면에도 이 기사를 12면에 '“이규원 유학가니 수사 안받게 해달라…조국이 법무부 전달”'로 축약해서 보도했다.
채널A는 12일 저녁 '[단독]사상 초유 재판받는 중앙지검장…이성윤에 직권남용 혐의'라는 리포트에서 “채널에이가 이성윤 지검장의 공소 내용을 일부 확인했다”고 방송했다. 채널A는 “2019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었던 이 지검장이 고향 후배인 안양지청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하는 방식으로 수사를 방해했다는 게 수사팀 판단”이라며 “법무부 출입국심사과 직원이 안양지청의 소환조사를 받자 반부패부 참모들을 통해 경위서를 받은 정황도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채널A는 “수사팀은 이같은 내용이 담긴 공소장 16장을 법원에 제출했다”고 전했다.
이후 14일자에는 대부분의 신문이 이성윤 지검장 공소장 내용을 확인했다며 일제히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1면 '조국 “유학 가는 이규원, 수사 안받게”... 불법출금 무마 정황'과 5면 '조국 수석과 박상기 장관도 윤대진 시켜 수사 막았다' 기사에서 “공소장에는 조국 전 민정수석, 박상기 전 법무장관, 이광철 민정비서관 등 정권 핵심 인사들이 별도 '트랙'으로 안양지청에 가한 외압의 내용도 담겼다고 한다”고 썼다.
동아일보도 14일자 1면 '검찰 “조국과 박상기, 불법출금 수사 방해”'에서 “조국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2019년 6월 안양지청 검사들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불법 출국금지 의혹 수사 방해에 개입한 사실이 13일 밝혀졌다”고 썼다. 이 신문 역시 “전날 기소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공소장에 따르면”이라며 공소장 내용을 확인하고 그걸 근거로 보도한 것으로 나온다.
누가 검찰전산망 공소장을 중앙일보에 넘겼나, 유출 자체보다 공소내용 검증이 더 중요
그렇다면 어떻게 공소장이 법정에 넘어가자마자 실시간으로 이른바 중앙일보나 주류 매체에 넘어갔을까. MBC는 14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이 같은 관행을 정면 비판했다. 왕종명 MBC 앵커는 공소장 양식이 아닌 된 문건 안에 공소장 내용만 담은 것으로 보인다며 “누가 이걸 특정 언론에 유출 했는지, 뻔한 추정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왕 앵커는 “여기엔 이 지검장하고 관련도 없는 다른 이들의 혐의까지 나와 있다”고 지적했다.
MBC는 ''이성윤 공소장'이라는 괴문서…“유출 진상 조사”'에서 “실제 공소장 양식도 아닌 '출처 불명'의 문건 형태”라며 “법무부 훈령인 형사사건 공개 규정에 따르면 재판에 넘어간 사건은 형이 확정될 때까지 비공개가 원칙”이라고 보도했다. 공소장은 피고인의 방어권과 사건 관계인의 인권 등을 따지는 형사사건공개 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예외적으로만 보도자료나 기자회견 등을 통해 알려질 수 있다.
MBC는 어떻게 유출됐는지를 두고 '검찰의 고질병 '악의적 유출'…장단 맞춘 언론'에서 “검찰 관계자들만 접속이 가능한 내부전산망”이라며 “'수사정보검색' 시스템이 유출 경로로 지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현주 MBC 기자는 “공소장을 비롯해 각종 수사 자료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쉽게 내려받을 수 있다”며 “비슷한 유형의 사건을 수사하거나 공소장을 쓸 때 참고하라고 정보를 공유하는 건데, 여기 올라간 이 지검장 공소 내용 파일을 누군가 빼돌린 걸로 파악되고 있다”고 추정했다.
다만 공소장을 불법유출했다는 사실만을 문제삼는 것 보다 공소장에 기재된 범죄사실(혐의)가 사실에 부합하는지, 언론이 당사자들의 반론을 충실히 반영해 공정한 보도를 했는지를 더 따져봐야 한다. 일반인이 아닌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 고위간부들의 행위가 적혀있고, 검사장에 대한 공소장 내용은 알권리 차원에서 공개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임 기자는 유출자와 유출 경위가 밝혀질 경우 형사처벌도 가능하다며 “일단 수사팀 관계자인지, 아니면 제3자가 유출했는 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는데, 검찰 내부망에서 유출된 게 맞다면 로그 기록 확인 등을 통해 문건에 접근하거나 내려받은 사람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진상조사가 대검의 공식 감찰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 징계가 불가피하며 형법상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수사를 거쳐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MBC도 13일 방송에서 이 내용 일부를 보도한 점을 들어 왕종명 앵커는 “저희도 어제 뒤늦게 확인하고 일부 보도를 해서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이성윤 지검장 외에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데, 조국 전 수석은 관련 의혹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임현주 기자는 “당시 수사 무마를 위한 외압에 청와대 윗선까지 개입했다는 걸 부각시키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피고인 당사자와 무관한 정황까지 적힌 공소장 내용이, 신속하게 유출된 건데, 검찰의 고질적인 수사 관행과 폐단을 언제까지 국민들이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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