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월드컵 예선 불참에 벤투호 웃고, 축구협회 울고
(시사저널=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지난 3월25일 한국 축구는 10년 만에 열린 한·일전에서 0대3 완패를 당했다. 결과와 내용 면에서 역대 최악의 경기였다는 게 중론이었다. '요코하마 참사'라는 표현이 쏟아졌다. A대표팀을 맡은 지 3년째가 된 파울루 벤투 감독에 대한 불신과 불만도 거셌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례적으로 A매치 패배에 대한 정몽규 회장 명의의 대국민 사과문까지 게재해야 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월드컵 본선에 나선 한국 축구의 도전을 바라보는 시선도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내년 11월 열리는 카타르월드컵까지 출전하면 한국은 10회 연속 본선 진출이란 화려한 금자탑을 쌓게 된다.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스페인에 이은 세계 6번째 대기록이다. 하지만 최근 A대표팀의 경기력이 들쭉날쭉해 불안하다. 올 하반기로 예정된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을 앞두고는 6월 열리는 2차 예선부터 돌파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두 차례 연기된 월드컵 2차 예선은 결국 6월 국제축구연맹(FIFA) A매치 기간을 이용해 특정 지역에 모여 잔여 일정을 모두 치르기로 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아시아축구연맹(AFC)을 통해 한국이 속한 H조의 2차 예선전 유치에 성공했다. 벤투호는 당초 투르크메니스탄·북한·스리랑카·레바논과 각각 1경기씩을 남겨둔 상태였다. 다른 국가에 비해 1경기를 덜 치른 상황에서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에 뒤진 H조 2위에 올라 있다.
2차 예선전 유치한 축구협회, 北 불참 통보에 허탈
하지만 변수가 등장했다. 북한이 한국에서 열리는 2차 예선에 불참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5월30일 북한의 조선축구협회는 AFC에 공문을 보내 불참 의사를 일방적으로 전달했다. AFC는 참가를 권유하겠다며 설득 의지를 내비쳤지만, 북한의 불참은 이대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국제 스포츠 교류를 차단한 북한은 지난 4월에는 도쿄올림픽 불참도 선언했다.
이에 대한 벤투호와 대한축구협회의 반응은 엇갈린다. 일단 벤투호엔 북한의 불참 통보가 반가운 부분이 있다. H조 상대 중 북한은 가장 까다로운 팀이다. 2019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2차 예선 원정경기에서는 북한의 터프한 축구에 활로를 찾지 못하고 무득점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대로 북한이 불참하면 규정상 기존에 치른 경기와 잔여 경기의 결과 모두 몰수패(0대3)로 처리될 예정이다. 그럴 경우 현재 투르크메니스탄(3승2패)-한국(2승2무)-레바논(2승2무1패)-북한(2승2무1패)-스리랑카(5패) 순이던 H조의 순위 경쟁 구도가 바뀐다. 북한 원정에서 패한 레바논은 오히려 승점 3점이 추가되는 최고의 혜택을 받는다. 한국은 승점 2점이 추가된다. 북한의 불참 시 H조는 레바논(3승2무)-한국(3승1무)-투르크메니스탄(3승2패)-스리랑카(1승4패) 순위로 잔여 일정을 치른다.
1경기를 덜 치른 벤투호는 득실차에서는 크게 앞서 있기 때문에 레바논에 패하지 않고 투르크메니스탄과 스리랑카를 무난히 꺾으면 H조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2위가 되더라도 8개 조 2위팀 중 상위 4개 팀에 속할 가능성이 높아 2차 예선 통과는 유력하다. 현재 상태라면 6월3일 투르크메니스탄, 11일 스리랑카, 15일 레바논과 잔여 일정을 치른다.
반면 대한축구협회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다. 월드컵 2차 예선을 국내에 유치한 데는 TV중계권료와 광고 수입을 통해 코로나19로 급감한 수익을 만회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이번 2차 예선의 경우 국내에 머무르는 각국 선수단의 숙식·이동 등의 비용은 대한축구협회가 내야 하는 만큼, 그에 비례하는 흥행 실적이 필요했다. 이번 2차 예선 국내 유치의 최대 흥행카드가 남북전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불참으로 대한축구협회의 계획은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됐다.
2차 예선 국내 유치의 명분에도 타격이 갔다. 방역 당국의 협조를 통해 각국 선수단 입국 시 2주 자가격리를 면제하는 '버블' 방식으로의 운영이 승인됐다. 이 배경에는 북한 선수단의 방한이라는 정치적 호재가 있었는데, 정작 북한이 불참하며 알맹이가 빠진 것이다. 바이든 미 정부의 대북정책 검토 결과에 따른 기조 변화 속에 북한과의 스포츠 교류를 통한 경색 완화를 바란 문재인 정부의 기대감도 꺾였다.
올림픽 앞둔 김학범호와의 차출 협의가 최대 숙제
2차 예선 통과를 위한 호재가 나타났지만 벤투호에도 고민은 있다. 오는 7월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는 올림픽대표팀과의 선수 차출을 위한 교통정리가 남았다. 올림픽대표팀의 김학범 감독은 5월31일부터 시작되는 FIFA A매치 주간에 맞춰 소집훈련과 평가전을 준비 중이다. 6월말 발표할 최종 엔트리(18명) 구성을 위한 마지막 단계다. 25명 내외의 선수를 선발할 예정인데 3명의 와일드카드(연령 초과 선수)도 합류하길 원하는 게 김 감독의 바람이다.
문제는 이 시기에 벤투호도 월드컵 2차 예선을 진행해야 해 23명의 선수를 차출해야 한다. 벤투 감독은 부임 후 세대교체를 진행하며 젊은 선수들을 선발해 왔다. 전 연령에 걸쳐 감독이 원하는 우수 선수를 뽑는 A대표팀과 23세 이하(도쿄올림픽은 1년 연기로 24세 이하)의 특정 연령대 선수만 뽑을 수 있는 올림픽대표팀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교집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A대표팀의 우선 권한이 보장됐다. 김학범 감독도 이를 인정했다. 지난 3월 열린 한·일전 때도 벤투 감독은 이동준·이동경·원두재·이강인·조영욱·윤종규·정우영·이진현까지 8명의 올림픽대표팀 후보군을 데려갔다. 당시 경주에서 소집훈련과 연습경기를 진행한 김 감독은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A매치와 한·일전이 갖는 중요성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김 감독도 더는 양보만 할 수 없다. 이번 소집은 올림픽 메달 획득을 위한 최종 리허설이다. 올림픽 본선 조추첨에서 뉴질랜드·온두라스·루마니아와 함께 B조에 속한 김학범호는 6월 소집 기간만 잘 활용한다면 2012년 런던올림픽에 이어 다시 한번 메달 도전이 가능한 상황이다.
4월28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학범 감독도 정제된 표현으로 목소리를 냈다. 그는 "당연히 벤투 감독과 협의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손흥민처럼 대체 불가한 선수가 아니라면 이번에는 우리가 우선권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벤투호에 대거 차출된 올림픽대표팀 멤버 중 실제 선발 출전한 선수는 3명에 불과했던 점을 지적한 대목이다. 벤투 감독도 김학범 감독의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차출 협의 요청을 외면할 명분이 부족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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