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1. 5. 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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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 플레이 프로젝트 이브 로드스키 지음, 김정희 옮김, 메이븐 펴냄

“언제 치약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걸 신경 쓴 적은 있는가?”

화장실 청소를 한다던 남편은 변기만 청소했다. 세면대와 바닥에 낀 물때나 수챗구멍 속 머리카락은 그대로였다. 화장실 휴지는 비어 있었다. 책의 저자는 ‘보이는 일=가치’라고 주장한다. 남편에게 가사노동 일부를 책임지게 하려면 요정처럼 몰래 화장실 휴지를 채워 넣거나 세면대와 바닥에 낀 물때를 청소해서는 안 된다. 그는 대신 게임을 개발했다. 일명 ‘페어 플레이 프로젝트’다. 가사노동을 적은 카드 100장을 만들어 부부가 함께 나눠 가진 다음, 실행에 옮기는 방식이다. ‘청소’ ‘설거지’ ‘빨래’ ‘식사 준비(평일 아침)’ 등 기본적인 사항부터 ‘자녀 과제’ ‘반려동물 돌봄’ ‘이사’ ‘아픈 부모님 돌봄’ ‘집수리’ 등 구체적인 내용까지 분류했다. 이 게임의 효과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 피에로 말베치·조반니 피렐리 엮음, 임희연 옮김, 혜다 펴냄

“갈기갈기 찢겨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나마 진심 어린 사랑을 남깁니다.”

책 표지를 넘기면 바로 첫 장에 이렇게 쓰여 있다. ‘이 편지들을 쓴 이들은 주조공, 회사원, 판매 대리인, 정비공, 재단사, 지방관청 직원, 대학생, 가구공, 창고지기, 견습생, 육군 소장, 토지측량 기사, 운전사, 건축가, 의사 등의 직업을 가진 201명의 레지스탕스이다.’ 짧게는 한두 줄, 길게는 여러 장에 걸쳐 쓰인 201명의 편지가 500쪽 넘게 이어진다.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이들은 진솔하고도 간결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쓴 편지에는 레지스탕스 동료들 사이에서 불렸던 활동명이 적혀 있다.

 

 

 

 

 

 

 

 

손바닥 소설 1·2 가와바타 야스나리 엮음, 유숙자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바늘 하나만 떨어뜨려도 뭔가 무너져 내릴 듯한 7월의 한낮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어본 적은 없어도, 이 소설을 여는 첫 문장은 어디선가 한 번쯤 읽어봤을 것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일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감각적인 문체는 그가 평생 틈틈이 써온 짤막한 ‘손바닥 소설’ 120여 편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이 소설을 옮긴 번역가 유숙자씨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한 편의 소설이 시적 감흥으로 넘친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무한대로 팽창시킨다. 소설은 끝났는데 이야기의 여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돈다”라고 적었다. 실제로 이 책에 실린 손바닥 소설 몇 편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대부분 200자 원고지 10장 남짓한 짧은 분량이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 마들렌 치게 지음, 배명자 옮김, 흐름출판 펴냄

“숲이 고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 제대로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시골 토끼는 대가족을 이루고 산다. 해 질 무렵이 아니면 굴 밖으로 잘 외출하지 않는다. 반면 도시 토끼는 소수가 모여 살고 수시로 굴을 드나든다. 심지어 혼자 사는 토끼도 있다. 토끼에게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 전염된 걸까? 책에 따르면, 이는 사는 환경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은 인간만의 발명품이 아니다. 생명이 시작된 이래 짚신벌레 같은 단세포 생물에서 곤충·새·물고기·포유류, 심지어 식물뿌리까지도 서로 정보를 전달하며 의사소통을 해왔다. 그것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행동생물학자인 저자가 풀어놓는 ‘바이오 커뮤니케이션’의 신세계에 매혹되는 책. 유머러스해서 더 잘 읽힌다.

 

 

 

 

 

 

 

 

나는 무늬 김해원 지음, 낮은산 펴냄

“큰나무는 큰 나무가 아니라 커가는 나무인 것이다.”

응급실에 실려온 열일곱 살 이진형이 결국 죽었다. 심지어 ‘오토바이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고. 진형은 족발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는 애’여서가 아니라 ‘알 수도 있었던 아이’여서,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내가 죽었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한 아이들이 진형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나선다. “죽은 사람은 자신을 지킬 수 없어. 죽으면 세상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으로 남게 되니까. 오토바이 도둑, 너무 아프잖아.” 소설 〈나는 무늬〉는 청소년 노동, 가정폭력, 아동학대가 남긴 상처를 두루 보듬고 껴안는다. 함께 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울고 난 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주인공들을 통해 보여준다.

 

 

 

 

 

 

 

 

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고종석 옮김, 삼인 펴냄

“종교가 민중의 아편이고, 마르크스주의가 지식인들의 아편이라면, 어린왕자는 어른들의 아편이다.”

〈어린 왕자〉 한국어판 리스트에 하나 더 추가됐다고 해서 큰 이슈가 될 리 없다. 하지만 번역가가 고종석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 시대에 언어를 다루는 데 가장 탁월한 감각을 가졌다고 일컬어지는 그가 한국어 다음으로 잘 다루는 언어가 프랑스어다. 그는 역자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 “이 텍스트는 한국어라는 옷을 입은 프랑스어다. 프랑스어에 완전히 밀착한 한국어! 그러나 그것이 한국어에 대한, 그리고 프랑스어에 대한 내 자부심이다.” 기존 번역판에서는 한국어식으로 고쳐놓은 대화와 거기 딸린 지문을 프랑스어 원문식으로 되돌려놓았다. 이런 식이다. “-다들 너무 잊고 있는 거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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