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아닌 이십 대가 있을 자리는 어디인가?

전혜원 기자 2021. 5. 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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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공정에 민감하다고들 한다.

취업준비생과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반대하고, 의대생들이 공공의대에 분노해 거리로 나서며, 대기업의 젊은 직원들이 성과급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노동조합을 만든다.

일하는 곳의 구체적인 조건보다는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캔맥주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을 환대해주는 거리에서 느낀 외로움, 산재 사망 기사나 영화 〈설국열차〉를 보며 든 생각 같은 것들이 무척이나 솔직하고 내밀하게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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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허태준 지음
호밀밭 펴냄

20대가 공정에 민감하다고들 한다. 취업준비생과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반대하고, 의대생들이 공공의대에 분노해 거리로 나서며, 대기업의 젊은 직원들이 성과급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노동조합을 만든다. 세상은 ‘청년’들의 이런 목소리를 집중 조명한다.

이 체제에서 거의 죽음으로만 세간의 주목을 받는 존재들이 있다. 2017년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던 이민호 군은 생수 만드는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기계에 몸이 끼어 숨졌다. 제주도교육청은 사고 20일 만에 사과했다. 이석문 제주도 교육감은 공식 입장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 당시 이렇게 말했다.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면서 수능에 모든 행정력이 집중되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나 졸업생의 이야기는 주로 언론 보도나 작가의 기록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 “삶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데,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들려왔다(〈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중에서).” 이 책은 죽음으로만 호명되는 그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 당사자가 직접 써내려 간 기록이다. 저자는 부산기계공고를 졸업하고 현장실습생을 거쳐 산업기능요원으로 지역 중소기업에서 3년7개월 근무했다.

르포보다 수필에 가깝다. 일하는 곳의 구체적인 조건보다는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캔맥주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을 환대해주는 거리에서 느낀 외로움, 산재 사망 기사나 영화 〈설국열차〉를 보며 든 생각 같은 것들이 무척이나 솔직하고 내밀하게 적혀 있다. “누군가가 안정감을 느끼는 울타리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 있음을 느낄 때마다, 나는 대학생이 아닌 이십 대가 있을 자리에 대해 생각했다.” 좁은 바늘구멍을 통과한 이들이 저마다 높은 울타리를 쌓아두고 ‘넘어오지 말라’며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이 땅에서, 저자의 낮은 목소리가 숙제처럼 마음에 남는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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