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면 슬픈 대로, 슬픔도 삶의 일부라네

한겨레 2021. 5. 1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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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양선아의 암&앎][토요판] 양선아의 암&앎
⑪ 환우들의 부고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6층 할머니 소식 들었어? 대장암 완치 판정 받았는데, 2년 만에 암이 전이가 됐다고 그러더라고. 어휴… 안됐지 뭐야.”

 지난해 이맘때였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가 6층 할머니 소식을 전했다. 마음에서 ‘철커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래층 할머니가 대장암이셨다고? 완치했는데 전이가 됐다고?’ 믿을 수 없었다. 누구보다도 건강해 보이던 분이셨다. ‘암’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분이었다.

 맛있는 음식이 고향에서 올라오면 아래층 할머니께 종종 갖다드렸다. 두 아이가 시끄럽게 떠들고 뛰는 경우가 많은데 항상 너그럽게 양해해주셨다.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5년째인데, 한번도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 간에 얼굴을 붉혀본 적이 없다. 아래층 할머니, 할아버지는 엘리베이터에서 우리 집 두 아이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아파트에 살면서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데, 나는 옆집과 아래층에서 좋은 어른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며 살았다. 그랬기에 아래층 할머니의 암 전이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친정어머니와 나는 다시 항암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는 6층 할머니께 전복이나 낙지, 김 등을 나누며 꼭 암을 극복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나 역시도 항암 치료를 받고 있어 함께 잘 극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그런데 전이 소식을 들은 지 몇달도 안 돼 아래층 할머니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오늘 할 말이 있어요…. 우리 마누라가 꼭 전해달래서…. 우리 마누라 호스피스 병동에 있다가 자식들, 손자들 얼굴 다 보고 안아도 보고 편안하게 갔어요…. 그 사람이 그러더라고… 7층 애기 엄마한테 내가 나쁜 것 다 안고 갈 테니 7층 애기 엄마는 꼭 암 이겨내고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고 전해달래… 애들 시집·장가가고 손자 볼 때까지 살 거라고…. 그러니까 꼭 이겨내야 해요. 아니 이겨낼 거야. 우리 마누라가 다 안고 간다고 했어…. 우리 마누라가 병원에서 나오면 7층 애기 엄마 밥 한끼 꼭 사주고 싶어 했어…. 만날 맛있는 음식도 가져다주고 그랬는데 우린 그만큼 못 했다고… 그런데 밥 한끼도 못 사주고 이렇게 갔네…. 우리 마누라는 유언 남길 것 다 남기고 편안하게 갔어…. 항암 잘 이겨내고 있는 것 맞죠? 잘 이겨낼 거야. 암, 그렇고말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던 할아버지는 아파트 앞에서 나를 만나 내 손을 붙잡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도 울고, 나도 울었다. 할머니를 떠나보낸 할아버지는 수척해 보였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어떻게 만났고, 두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이야기해주셨다. 할머니와 이별한 슬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누군가에게 어떤 이야기라도 쏟아내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눈동자가 크고 서글서글하게 보였던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문득 전해 들은 아래층 할머니 부고
나쁜 것 다 안고 가니 암 이겨내라 
‘응원의 유언’ 전하던 할아버지 눈물

죽음이란 말 고개 돌리고 싶었지만
며칠 전 또다시 지인 ㅊ교수님 부고
강인한 의지로 환우의 희망이던 분 

죽음은 동떨어진 남의 일이었는데

 처음 부고 소식을 듣고 ‘죽음’이라는 말에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었다. 아래층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하기도 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먼저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는 만큼, 항암 치료를 받고 있던 나는 나를 보호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뒤 이상하게도 내 가슴은 몽글몽글해지며 뭔가 따뜻함으로 채워졌다. 죽음을 앞에 둔 순간에도 내게 그런 따뜻한 말을 남겨준 할머니의 선한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죽음은 슬펐지만, 그날 내겐 죽음이 차갑고 어둡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슬프지만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그런 신비로운 감정을 느꼈던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암 진단 전엔 죽음은 내게 나와는 동떨어진 무엇이었다. 남의 일이었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했지만, 금방 또 죽음을 잊어버리고 생활했다. 암 진단 직후엔 죽음은 공포로 다가왔다. ‘암=죽음’이라는 고정관념으로 ‘곧 죽으면 어떡하지? 두 아이는 어떡하지? 우리 엄마는?’ 하는 두려움에 벌벌 떠는 순간도 있었다. 항암 치료를 받고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끝내고 건강을 회복하면서 그런 공포는 상당 부분 사라졌다. 암을 극복하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며 공포보다는 새로운 희망을 품었다. 맛있게 밥을 먹고 내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일상을 회복하면서, 죽음보다는 삶 쪽으로 시선이 돌려졌다.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해’라는 마음이 컸다.

 그러던 내게 며칠 전 또 지인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마음의 파도가 심하게 출렁거렸다. 한방병원에서 알고 지내던 ㅊ교수님은 환우들에게 영웅이자 멘토였다. 코에 작은 암세포가 발견됐던 ㅊ교수는 뼈와 폐에 암이 전이가 됐다. 암이 전이되면 흔들리기 마련인데, 그는 뛰어난 학습력과 연구력, 강한 의지력으로 항암 치료를 받으며 암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암에 관련된 책을 다 읽고 웬만한 암 관련 유튜브를 모두 섭렵했다. 암 관련 외국책 번역 작업에도 참여했다. 식단 관리도 철저하게 했고,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기능의학자들을 만나 상담한 뒤 대사 치료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병원에서 진행했던 요가 프로그램이 끝나면 항상 다른 환우들의 매트까지 정리해주었다. 또 새로운 환자들이 들어오면 병원 생활 안내도 도맡았다. 암에 대한 지식을 환우들과 항상 함께 나눴다. 그런데 그분의 뼈와 폐에 전이된 암이 정기검사에서 안 보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환우들은 너무 기뻐했고, 많은 환우는 ㅊ교수에게 더 의지하게 됐다. ㅊ교수는 환우들에게 희망의 상징이었다. 심지어 ㅊ교수의 암 극복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ㅊ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환우들이 요구해 병원에서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나도 그 자리에 참석했고, 병원을 퇴원하기 전에 ㅊ교수 병실에 들러 조언도 구하고 서로의 건강을 빌기도 했다.

 한달 전 ㅊ교수의 몸에서 다시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ㅊ교수처럼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또다시 재발이라니…. 가슴이 쿵쾅거리고 전화해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ㅊ교수에게 연락조차 하지 못했다. 다만 ㅊ교수라면 이 고비도 잘 넘기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암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ㅊ교수의 부고가 카카오톡 채팅방에 뜬 것이다. 

 부고를 보는 순간 머리가 멍하고 시간이 정지되는 것만 같았다. 노력하고 투지를 불태우고 무엇을 어떻게 해도 끝내 그에게 찾아온 ‘죽음’이라는 녀석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가슴이 먹먹하고, 우울감도 들고, 그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식단 관리를 철저히 하고 운동 등에 매진했던 내 생활에 대한 확신도 조금 흔들거렸다. 또 삶이 너무 허망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치유는 슬픔을 표현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날 마침 후배 수기(별칭)와의 약속이 있었다. 암 진단 뒤로 처음 보는 자리였다. 후배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따뜻하게 안아줬다. 후배의 온기가 느껴졌다. 집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후배에게 ㅊ교수 이야기도 하고, 후배가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도 듣고, 또 나의 이야기도 했다.

 “선배 글 읽으면서 선배가 뭘 말하는지 나는 다 알 것 같아서 진짜 공감했어요.” 후배가 울먹거리며 얘기했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후배와 얘기를 나누며 ㅊ교수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슬퍼할 수 있었다. 암이 재발하거나 전이될까 두려웠던 내 마음도 털어놓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돌아가신 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면 상대방에게 슬픔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 슬픔치유는 그 슬픔을 표현하는 데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죽음교육 전문가이자 슬픔치유 상담가인 윤득형 목사는 <슬픔학 개론>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환우 카카오톡 방은 어쩐지 그날 모두 조용했다. 다들 먹먹하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였을 것이다. 낮에 후배를 만나 마음을 표현했던 나는 용기를 내 다음날 카카오톡 방에 말을 남겼다. “다들 ㅊ교수님 소식에 마음이 출렁출렁하셨을 듯요…. (중략) ㅊ교수님의 강한 의지와 친절함, 유쾌함을 기억해요…. 그리고 또 우리는 건강을 지키기 위한 각자의 노력 계속해서 열심히 해요…. 다들 무탈하길 항상 기도합니다.” 글을 남기자 환우 한명 한명 자신의 감정을 꺼내어 말하기 시작했다. 고인의 명복도 함께 빌고, 재발과 전이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나눴다. 암이 전이돼 현재 항암 중인 환우는 “이기적이게도 떠난 이의 슬픔보단 내 삶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던 하루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환우들끼리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나누니 묵직했던 고통과 슬픔, 두려움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환우 단톡방 침묵 뚫고 애도글 쓰니 
슬픔보다 두려움 컸던 시간도 인정
토로하니 고통·두려움 가벼워진 듯

슬픔·분노·외로움 일부러 피했지만 
그것 역시 내 삶의 일부임을 깨달아
치유는 슬픔 표현하는 데서 시작하고
죽음은 한번 스치고 가는 경험 아냐
내게 주어진 삶 충만하게 보내리라

 항상 긍정적이고 행복하지 않아도 돼

 암 진단 뒤 나는 ‘슬픔’ ‘분노’ ‘외로움’ 등과 같은 단어들은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긍정적인 마음이 암 치료나 예후에도 좋다는 연구 결과 때문이기도 하고, 부정적 감정들로 내게 주어진 소중한 하루하루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에서는 수시로 ‘뭣이 중헌디?’라는 질문이 튀어나왔고, 가급적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으며 슬픔이나 우울감, 두려움, 고독감 같은 부정적 감정 역시 내 삶의 일부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중이다.

 갑작스럽게 암 통고를 받고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서점이었다면, 지인의 부고 소식을 접한 뒤 헛헛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찾아간 곳은 도서관이었다. 죽음, 슬픔과 관련된 키워드로 관련 책들을 찾아 읽었다. 암 투병기나 암 관련 책들이 암 치료에 도움이 됐다면, 죽음이나 슬픔에 관련된 책들은 내가 슬픔과 두려움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게 해주었다. 죽음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게 해줬고, 또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으며 죽음 또한 삶의 일부라는 사실도 깨닫게 해줬다. 다양한 책을 읽으며 내가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항상 긍정적이고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도 인지하게 됐다. 부정적 감정을 모른 척하거나 표현하지 않으려 했고, 기분 좋은 척, 괜찮은 척 하려 했다는 것도. 그러나 슬픔 또한 나에게 허용돼야 하는 감정이며, 마음껏 슬퍼하고 슬픔을 표현해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도 책은 알려줬다. 또 모든 감정은 감정 그대로 옳으며, 내 감정을 이해해야 나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9세대에 걸쳐 펜실베이니아 파크스버그에서 장의사를 해 온 칼렙 와일드는 그의 저서 <길들여지지 않는 슬픔에 대하여>에서 “죽음은 한번 스치고 지나가는 경험이 아니다. 인생 전체에 걸쳐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며 “사람은 죽음을 경험할 때마다 마음을 열고, 공감·이타심·축복·이해가 마음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죽음은 단순히 질척거리고 혼란스럽기만 한 게 아니다”라며 “죽음에서 나의 가장 진솔한 면을 찾고, 더 강한 유대를 찾아내기도 하며, 누군가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며 삶을 충만하게 사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고 전했다.

 ㅊ교수의 명복을 다시 빈다. 그리고 ㅊ교수에게 약속한다. 지금 내게 주어진 몫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겠다고. 그리고 당신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살았던 모습도 잊지 않겠다고. 사회정책팀 기자  

▶ 2020년 연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8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암 치료를 받고 있거나 완치 판정을 받은 ‘암 유병자’가 2018년 기준 20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 다수가 자신 또는 가족이 암 환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2019년 말 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한겨레> 사회정책팀 양선아 기자(anmadang96@kakao.com)의 체험기를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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