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주문했는데 녹차가.. 그래도 "감사합니다"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김동환 2021. 5. 1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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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 '기억다방'을 가다
치매 어르신들 위해 치매센터서 운영
일 통한 지속적 사회 참여 기회 마련
'다른 메뉴 나와도 이해를' 안내 문구
알바 어르신 "다른 사람 볼 용기 생겨"
서울 금천구 소재 ‘기억다방’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강오차(80·사진 가운데)씨와 이정례(69·오른쪽)씨. 서울 금천구 치매안심센터 제공
“음료 나왔습니다. 참, 코로나 탓에 안에서는 드실 수 없어요.”

매실차가 든 플라스틱병을 기자에게 건넨 강오차(80)씨는 밝은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함께 음료를 만든 이정례(69)씨는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난 11일 오전 카페에서 이들 노년의 바리스타를 만났다. 두 사람은 알려주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만큼 씩씩하게 경도인지장애를 이겨나가는 어르신 바리스타고, 기자가 찾은 이곳은 국비와 시비, 구비가 투입돼 서울 금천구 치매안심센터와 연계돼 운영 중인 ‘기억다방’(시흥대로123길 11)이다. 경도인지장애란 일반적인 치매로 진단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지만, 객관적으로 인지기능 저하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상태를 이른다.

‘기억을 지키는 다양한 방법’의 줄임말인 기억다방은 앞서 2018~2019년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시내 대학가와 공원 등에서 푸드트럭을 활용한 이동형 카페로 운영됐으며, 어르신의 지속적인 인지능력 향상을 위해 지난 3월 시범운영을 거쳐 이달부터는 서울 서대문구 치매안심센터(연희로 290)와 함께 두 곳에서 본격적으로 손님을 맞고 있다.

치매안심센터를 방문한 어르신과 보호자에게 커피와 매실차, 자몽차 등을 만들어 무료 제공하며, 센터에 등록된 60세 이상 경도인지장애 또는 경증치매 어르신 중에서 보건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등의 요건을 고려해 바리스타를 선정한다. 뽑힌 이에게는 1시간당 1만원의 활동비를 지급한다는 게 서울광역치매센터의 설명이다.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경도인지장애·치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지난해 9월 ‘치매극복의 날’을 맞아 발표한 ‘치매와 경도인지장애 진료현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두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이는 2009년 이후 10년간 대폭 늘어났다.

먼저 경도인지장애는 2009년 1만4506명에서 2019년 27만6045명으로 19배 넘게, 치매도 같은 기간 18만8287명에서 79만9266명으로 4배 넘게 각각 증가했다. 2019년만 놓고 보면 경도인지장애 진료자 중 65세 이상은 23만625명으로 83%가량 차지했고, 치매에서도 71만9775명으로 90% 수준으로 조사됐다.

당시 심평원 측은 “인구 고령화에 따라 사회의 중요 문제로 대두된 치매는 예방이 중요한 만큼 경도인지장애부터 적절한 진료를 받아야 한다”며 적극 대응을 주문한 바 있다.

조기 검진을 통한 치매를 예방하고 더불어 인지강화 교육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치매안심센터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배경에서 연계 운영되는 기억다방은 치매에 맞서고자 하는 어르신에게 사회 참여의 창구를 제공하고 있다는 평이다. 기억다방을 찾으면 ‘주문한 것과 다른 메뉴가 나오더라도 이해하고 배려해주세요’라는 안내문구도 특히 눈에 띄는데, 경도인지장애와 치매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이들 질환을 앓는 어르신의 사회 참여를 포용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정례씨가 서울 금천구 소재 ‘기억다방’에서 제공하는 커피병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 금천구 치매안심센터 제공
◆자존감 높여준 기억다방… 그들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기억다방에서 만난 강씨와 이씨는 매주 화·목요일 하루 3시간씩 하는 바리스타 활동이 삶에 큰 활력소가 된다고 입을 모았다.

강씨는 “기억다방에서 활동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이제는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산다”며 “다른 이들을 대하는 데도 용기가 생겼다”고 즐겁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시범운영이 시작된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수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족에게 어려움을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자청해서 신청했다”며 처음 치매안심센터를 찾았을 때도 선뜻 용기를 냈다고 덧붙였다.

기억다방 활동으로 일상을 즐거워하기는 이씨도 마찬가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교육 프로그램 축소로 외출 기회가 줄어 무기력했는데, 기억다방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활동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다며 “(출근) 전날부터 설렌다”고 웃어보였다.

이씨는 인터뷰 중 강씨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고 있다는 얘기일 터. 이씨는 “형님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코로나가 종식돼 카페 운영 횟수도 늘어나고,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날 카페까지 동행한 강씨의 손자 김원빈(19)군은 “할머니께서 새로운 일을 하신다는 자체가 좋은 것 같다”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기쁘다”고 방문 소감을 밝혔다.

박지영 금천구 치매안심센터 총괄팀장은 “다른 구나 지역에서 오셔도 교육 등 서비스를 최대한 해드리지만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이유에서 이후에는 관할구의 안심센터로 안내해드린다”며 “지금은 (기억다방을) 1주일 2회 운영하지만, 향후 확대된다면 그만큼 바리스타 자리도 더 많이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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