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우면서도 쫄깃.. '건강 불끈' 보양음식 [김새봄의 먹킷리스트]

최현태 입력 2021. 5. 1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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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오리'의 오리흑약탕
8가지 한약재와 흑미 넣어 국물빛 묘해
사방 우거진 숲 하남의 '까치산장'
큰 항아리에 담긴 빅사이즈에 놀라
'십이율'의 흑후추오리 덮밥 인기
돔형으로 플레이팅한 '신정' 오리구이
기름기 쫙 빠져 담백
가정의 달인 5월은 역시 외식의 달이다.
평상시 외식은 보통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양껏 구워 먹고
후식으로 면이나 찌개로 마무리한다.
하지만 온가족이 단단히 채비를 하고 찾아가는 외식은 좀 다르다.
뜨끈한 탕이나 담백하면서도 푸짐한 음식으로 몸보신을 하는 그림이 떠오른다.
김새봄의 아홉 번째 먹킷리스트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오리고기 맛집’이다.
‘까치산장’ 옻나무 한방 오리백숙
#진한 국물에서 건강의 기운이 솟아오른다

경기도 하남시에서 광주시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큰 고개인 은고개. 많은 한식당들이 늘어선 이곳의 오리전문점 ‘애마오리’는 이름도 특이하지만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이름보다 더 특이한 비주얼의 ‘오리흑약탕’으로 유명하다. 온통 통나무로 이뤄져 건강한 기운이 공기까지 스며드는 듯한 가게. 식전 반찬부터 가족들의 칭찬이 쏟아진다. 많진 않지만 들깨에 고소하게 무친 고춧잎과 시래기 등의 나물 반찬은 수북이 쌓아줬는데도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비워진다.

여태껏 갖가지 한방 약재를 넣은 백숙 맛집들을 수없이 누볐지만 이렇게까지 검은 국물은 달기약수 백숙 이후 처음이다(달기약수는 철 성분이 있어 백숙을 끓이면 국물이 연둣빛이 된다). 탑처럼 쌓인 초록빛 부추와 하얀 팽이버섯더미 사이로 드러낸 오리흑약탕의 국물빛은 볼수록 묘하다. 황기, 맥문동, 백작약, 당귀, 엄나무 등 8가지 한약재와 더불어 흑미를 넣었는데, 이 흑미가 국물을 제대로 진하고 검게 만든다. 진한 흑약국물에 부드러워 쭉쭉 찢어지는 오리고기를 끓이다 보면 살코기는 국물을 머금어 더욱 진해진다. 강인한 빛깔의 국물을 그릇이 하얗게 바닥을 보일 때까지 흡입하면 호랑이 기운이 절로 솟아난다.
‘애마오리’ 오리흑약탕
#우거진 솔밭에서의 우아한 식사

들어서자마자 우거진 소나무숲에 입구부터 사진을 찍느라 한참을 서성이게 되는 하남 ‘까치산장’. 입장이 셀프로 길어지는 곳이다. 서울 근교 가까운 곳이지만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사방 가득 우거진 꽃과 나무들로 하남에 온 것이 비로소 실감난다. 가게 주변에는 작은 텃밭이, 그 앞에는 소담한 분수가 뿜어져 오른다. 평화로운 광경에 먹기 전부터 힐링을 다해버린 느낌. 옻나무 한방오리백숙을 주문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삼삼오오 모여 오후를 만끽하는 어머님들이 눈에 띈다. 따사롭게 소나무 사이를 파고드는 햇살 아래 핀 웃음꽃이 평화롭고 우아하다.

30여분이 지났을까, 세숫대야보다 더 큰 항아리에 각종 한약재와 함께 거대한 오리가 등장한다. 국물을 휘저으면 대추와 밤, 능이버섯이 사정없이 걸려 도무지 국자가 제 기능을 못한다. 압력솥에 푹 쪄내 촉촉한 오리고기의 큰 어깨를 덥석 문다. 입 속 한가득 부드럽게 고깃덩이를 음미하는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 탄력 있는 육질의 능이버섯이 건강함을 제대로 북돋아준다. 하루 안에 다 먹지 못할 것 같은 거대한 항아리는 금세 비워졌고, 남은 국물에 죽을 끓인다. 마성의 죽은 배가 부른 걸 알면서도 계속 먹고 싶어지는 중독적인 맛이다. 고소함이 치고 올라온다. 분명 땅콩이나 참기름을 넣지 않았는데 고소함이 끊임없이 강하게 차오른다. 밥 찰기 끝의 고소함 그 어디쯤, 찰밥과 입 속 아밀라아제의 중간을 오리 기름이 속속 침투하면서 환상적인 소용돌이를 일궈낸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삼킨 직후의 고소함은 다음 수저, 또 다음 수저를 재촉한다.
'십이율' 흑후추오리덮밥
#방짜유기에 담긴 한국의 멋과 이탈리안을 섭렵한 셰프의 터치
가족들과 다함께 즐기는 한상차림도 좋지만, 부모님과 단둘이 떠나는 데이트는 더욱 돈독한 시간이 된다. 이태원 몬드리안 호텔 지하의 한식다이닝 ‘십이율’은 열두 달 최상의 제철 식재료로 새로운 느낌의 한식을 선봬는 곳이다. 단아한 한식의 멋과 이탈리안을 두루 섭렵한 남성렬 셰프의 센스가 조합된 개성 있는 한식 메뉴를 낸다. 반상차림 시리즈 중 ‘흑후추오리 덮밥’은 남녀노소 인기 많은 건강식 스테디셀러다.
덮밥으로 서빙된 그릇 뚜껑을 열면 윤기가 좔좔 흐르는 쌀밥 위로 수비드(저온 요리) 오리, 우엉장아찌, 풋마늘장아찌가 통들깨와 어깨동무를 하고 고개를 내민다. 한국 품종 중에 쌀알이 가장 큰 신동진 지역의 쌀로 식감을 최대한 살리고, 산미를 입혀 탱글탱글함까지 단단히 입혔다. 이미 밥만으로도 반은 성공이다. 게다가 직접 만든 어간장, 흑후추 소스로 밥과 오리 사이에 감칠맛의 다리를 놓았다. 수비드한 후 숯불 향을 입힌 오리고기는 입안에서 씹힐수록 새로운 개성을 끊임없이 자랑한다. 오리와 함께 섞여 신선한 맛을 불어넣는 풋마늘은 지금이 제철로, 십이율의 취지에 맞게 철이 지나면 수박껍데기를 이용한 장아찌를 넣을 예정이라고 한다.
남 셰프는 최근 일본식 덮밥이 유행인 상황에서 한국식 덮밥을 선보이고 싶어 덮밥 시리즈에 특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 가격만큼 무거운, 단아하게 멋들어진 우리의 그릇 방짜유기를 선택한 것도 도자기 접시로는 표현 안 되는 고급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감행했다고.
#반세기 넘은 세월이 묻은 고급 칭기즈칸 요릿집

1965년 개업해 56년의 역사에 빛나는 역삼동 ‘신정’은 본래 ‘징기스칸’이라는 이름으로 샤브샤브를 처음 선보인 역사 깊은 식당이다. 역삼동 한복판의 큰 건물을 통째로 운영하는 노포의 아우라에 놀라기도 잠시, 실내에 있는 거대한 연못은 놀라움과 더불어 복잡한 강남역을 떠나 어디론가 소풍 온 기분을 선사한다.

샤브샤브가 메인인 식당이지만, 신정만의 특색 메뉴인 ‘오리고기 한 마리’는 오랜 단골들이 필수로 주문하는 단골 메뉴다. 7만8000원의 고가임에도 단골들은 으레 시키는 메뉴다. 오븐에 구워 기름이 쪽 빠진 오리구이는 껍데기의 빛깔이 마치 베이징덕의 그것 같지만 또 다른 개성이다. 오리 한 마리 전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일일이 잘라 돔형으로 플레이팅했다. 마치 오랜 시간 기름을 뺀 전기 통구이를 맛보는 듯, 담백함이 일품이다. 심플하지만 최고의 조화를 이뤄내는 겨자 푼 간장소스는 오리와 단짝이다. 씹을수록 담백한 맛에 매료된다.

김새봄 푸드칼럼니스트 spring58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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