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하지 않은 여성이 그린 고독한 초상화

조성준 2021. 5. 1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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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예술가의 사회-76] 그웬 존 (화가, 1876~1939)

◆ 우울과 예술

사전에서 멜랑콜리(melancholy)를 검색하면 이렇게 나온다. '우울 또는 비관주의에 해당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

멜랑콜리는 사전 정의처럼 '기본 감정' 중 하나다. 쾌활한 사람도 우울과 외로움에 사로잡히는 날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이따금 자신만의 동굴에 들어가 몸을 움츠린다.

멜랑콜리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유래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이 네 개의 체액으로 구성됐다고 봤다. 인간은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으로 이뤄져 있고, 체액이 균형을 이뤄야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고 여겼다. 히포크라테스는 각각의 체액이 기질을 좌우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황담즙이 많은 인간은 용감하고 열정이 넘친다. 반대로 흑담즙이 많은 사람은 우울하고 사색적이다. 멜랑콜리라는 단어는 여기에서 나왔다. 그리스어로 'melan'은 검은색, 'chole'는 담즙을 의미한다. 멜랑콜리라는 단어 자체가 흑담즙이라는 뜻이다. 서양에서는 알 수 없는 우울과 침울함에 자주 빠지는 사람을 흑담즙병 환자로 여겼다.

위대한 예술가 중 흑담즙형 인간이 많다. 독일인 화가 뒤러가 그린 '멜랑콜리아Ⅰ'은 우울과 예술의 관계를 잘 드러낸 그림이다. 이 작품에는 천사의 날개를 단 여성이 손을 턱에 괴고 있다. 여성의 눈동자는 무언가를 골똘하게 상상하는 사람의 눈이다. 주위에는 온갖 도구가 늘어져 있다. 망치, 펜치, 바늘, 톱. 모두 무언가를 창조할 때 사용하는 물건이다. 뒤러는 우울이 예술가의 벗이라고 믿었다. 우울이 예술가의 천재성을 자극한다고 생각했다. 우울한 사람들은 뒤러의 그림 속 여성처럼 세상을 혹은 자신을 조용히 관조한다. 이 고요함 속에서 종종 예술이 탄생한다.

영국인 화가 그웬 존은 뒤러가 그린 여성과 비슷한 예술가다. 그는 전형적인 흑담즙형 인간이었다. 가만히 턱을 괴고 자신의 내면을 탐험했던 화가다. 자기 자신 안으로 파고드는 사람답게 고독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이 고독이 그에게는 재료였다.

nude girl(1910)
◆ 로댕의 여자들

천재 조각가 로댕은 피카소 못지않게 여성 편력으로 유명하다. 로댕과 그의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 일화는 영화로도 만들어질 만큼 잘 알려져 있다. 클로델 역시 로댕처럼 조각가였다. 그는 로댕의 제자이자 모델이었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 로댕은 마흔셋, 클로델은 열아홉이었다. 둘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로댕은 클로델에게서 빛나는 재능을 봤다. 이 재능을 끌어내기 위해 로댕은 진심으로 클로델을 도왔다. 로댕은 클로델이 제자 중에서 가장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다며 치켜세웠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다. 로댕은 결혼은 안 했지만 사실상 부인이나 다름없는 연인 로즈 뵈레가 있었다. 그는 숱한 여자를 만났지만, 결국엔 로즈 뵈레에게 돌아갔다. 클로델은 결국 버림받았다. 로댕의 후광이 사라지자 세상은 클로델을 무시했다. 여성 예술가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했던 시대였다. 클로델은 사랑을 되찾기 위해 격렬하게 투쟁했지만, 로댕은 외면했다. 클로델은 예술가로 입지를 단단히 다지기 위해 조각에 매달렸지만, 그의 작품은 부당하게 평가절하당했다. 클로델은 무너졌다. 가족에게도 버림받았고, 강제로 정신병원에 갇혔다. 거기에서 30년을 살다가 쓸쓸히 떠났다.

클로델은 사후에 명성을 얻긴 했지만, 살아있을 땐 철저하게 로댕의 후광에 가려졌다. 그런데 로댕과 클로델의 치명적인 러브스토리 때문에 묻힌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로댕 곁에는 클로델 외에도 많은 여성 예술가가 있었다. 이들은 로댕에게도 가려졌고, 클로델에게도 묻혔다. 그웬 존은 그중 한 명이다.

young woman holding a black cat (1920)
◆ 고독한 여성들

그웬 존은 초상화를 많이 남긴 화가다. 그가 그린 인물 대다수는 여성이다. 이 여성들은 고요함에 둘러싸여 있다.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몽롱한 기운이 감돈다. 늦가을에 바스락거리는 낙엽처럼 쓸쓸함도 느껴진다. 그림 속 여성들의 눈동자는 무언가를 체념한 사람들의 눈동자와 닮았다.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사람처럼도 보인다.

그웬 존은 1876년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났다. 아마추어 화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그림에 관심을 가졌다. 자녀들에게 예술을 알려준 어머니는 그웬 존이 여덟 살 때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가족은 웨일스에서도 바닷마을인 텐비로 이사를 했다. 그웬 존은 항구 풍경을 오래 바라봤고, 그 풍경을 그렸다.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나 해변에 널브러져 있는 조개를 그렸다. 그웬 존은 남동생 오거스트 존과 함께 런던에 있는 미술학교에 들어가 3년간 정식으로 그림을 배웠다. 그 이후 남매는 예술의 수도 파리에 건너가서 미술 교육을 받았다. 런던과 파리를 오가던 남매는 파리에 정착했다.

두 사람 중 두각을 드러낸 건 남동생이었다. 오거스트 존은 집시처럼 수염을 기르고, 그들처럼 옷을 입었다. 술을 자주 마셨고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했다. 집시 생활을 동경한 사람답게 전 세계를 방랑했고,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남자였다. 훗날 오거스트 존은 당대 가장 유명한 초상화 화가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누나의 성격은 동생과 정반대였다. 동생이 불나방처럼 세상 이곳 저곳에 뛰어들 때 그웬 존은 주로 자신의 방에 머물며 그림만 그렸다. 동생은 담즙형, 누나는 흑담즙형 인간이었다. 그웬 존은 자신을 드러내길 좋아하지 않는 조용한 화가였다.

girl reading at the window (1911)
◆ 로댕의 연인이 됐다

그웬 존은 파리에서 위대한 예술가들을 만났다. 그는 마티스, 피카소, 브랑쿠시와 교류했고 그들 작품 앞에서 경탄했다. 하지만 이 쟁쟁한 예술가들로부터 받은 영향은 거의 없다. 그웬 존은 조용했지만, 자신의 그림에 자부심을 가진 예술가였다. 천재들이 우글거리는 파리에서도 묵묵히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마음 편히 그림만 그릴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종종 다른 예술가의 모델이 돼야 했다. 그렇게 로댕을 만났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그웬 존은 아직 이십 대였고, 로댕은 예순을 넘긴 나이였다. 로댕이 클로델과의 전쟁 같은 사랑을 끝낸 지도 한참 지난 후였다. 로댕은 그웬 존을 모델로 조각 작품을 만들었다. 그웬 존은 이 천재에게 완벽하게 빠져들었다. 둘은 연인이 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사랑이었다. 로댕에게는 여전히 많은 여자가 있었고,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로댕에게 여자들이란 자신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였을 뿐이다. 그웬 존 역시 로댕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여자 중 하나였다.

그웬 존 역시 로댕의 마음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로댕이 우주였다. 한번 우주에서 내던져진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우주 안이다. 그웬 존은 로댕이 어떤 인간인지 알면서도 그에 대한 열정을 철회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클로델처럼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싸운 것도 아니다. 로댕에게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는 게 고작이었다. 로댕은 답장하기는커녕 편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girl with bare shoulders (1909)
◆ 고독 속에서 피어난 그림

1913년은 클로델은 강제로 정신병원에 갇혔다. 같은 해 그웬 존은 파리 근교 뫼동이라는 곳으로 거처를 옮겼고, 은둔자의 삶을 시작했다. 클로델과 그웬 존 모두 로댕에게 배신당했다. 한 사람은 투쟁을 선택했고 결국 바스스 무너졌다. 다른 사람은 투쟁 대신 체념을 선택하고 고독 속으로 들어갔다.

그웬 존은 가급적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에겐 고양이 한 마리가 전부였다. 세상은 그웬 존에게 '천재 화가 동생을 둔 누나' '천재 조각가에게 버려진 여자'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그를 독립적인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웬 존은 세상이 자신을 어떤 식으로 평가하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묵묵히 그림만 그렸다. 고집스럽게 여성 초상화를 제작했다. 주로 의자에 앉아 있는 여성을 묘사했다. 모델은 시골 성당 수녀, 동네의 여자들, 자기 자신이었다. 그림 속 여성들은 고양이를 쓰다듬거나, 책을 읽고 있다. 가만히 무언가를 응시하는 여성도 있다. 이 그림들은 차분하고, 온화하고, 은은하다. 그리고 마지막엔 처연함이 남는다.

비극적인 장면을 묘사한 것도 아닌데도, 애잔함이 감돈다. 멜랑콜리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이라고 했던가. 그웬 존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그늘을 포착했고, 그것을 그렸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막연히 고독하다. 그웬 존의 후반부 삶에 대해서 알려진 건 별로 없다. 1939년 홀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명상하듯 지내며 그림을 그렸다.

세상은 투쟁했던 인물을 더 생생하게 기억한다. 로댕의 많은 연인 중 클로델만이 로댕만큼 명성을 얻은 이유도 그가 처절한 전쟁을 치른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싸우는 사람보다 뒤로 물러나는 사람이 더 많다.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증명하며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사람은 소수다. 대다수는 조용히 살다가 조용히 떠난다. 쟁취하는 삶이 있다면 체념하는 삶도 있는 법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늘 속에서도 누군가는 계속 살아간다. 햇빛이 닿지 않는 음지에서도 이끼는 자란다. 골방 속에 갇혀 있는 그웬 존이라는 이름이 결국 이렇게 살아남았듯이 말이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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