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환불 받았나요?"..하버드대도 주목 싸이월드 그때 그날

배윤경 2021. 5. 1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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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역 1번 출구-3 '그때 그날'] 보통은 폴로어를 못 늘려 안달인데 지인에게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있습니다. 나중엔 일주일에 한 번도 들어가보지 않았던 거 같은데, 그렇다고 없어지는 건 용서가 안 되고요. 유행어와 밈(Meme)의 성지였지만, 제가 쓴 글과 사진을 도저히 공개할 수가 없어요. 네, 싸이월드 얘깁니다.

싸이월드가 조만간 재개됩니다. 흑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단 점에서 열어선 안 될 '판도라의 상자'로까지 여겨지는 180억장의 데이터도 이제 곧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싸이월드는 1999년 시작돼 약 10년의 부흥기를 누린 뒤 출시 20년 만에 서비스가 종료되기까지 했었는데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때 그날을 짚어보겠습니다.


'싸이질'은 자의식 과잉이 제맛…페이스북 창업자도 배워가

과거, 싸이월드의 영광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SNS로 전 세계가 하나된 지금으로선 의아하지만, 당시엔 이용자 대부분이 한국인임에도 싸이월드는 세계 최대 규모의 SNS였습니다. 페이스북이 등장하기 전이었고, 국민의 절반 수준인 2000만명이 월간 접속자 수였거든요. 참고로 현재 인스타그램의 국내 월간 접속자 수가 1000만명 수준입니다.

지금 하루에도 몇 번씩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확인하는 것처럼 당시에는 매일 싸이월드에 접속하다 보니 '싸이질'이란 신조어도 생겼습니다. 싸이월드는 버즈의 '겁쟁이', 씨야의 '여인의 향기', SG워너비의 '죄와벌' 같은 극감성 발라드와 감성툰 '파페포포 메모리즈' 등이 인기를 끌던 '감성의 시대'에 자의식 과잉을 분출하고 공감하기 좋은 플랫폼이었습니다. 'ㄴr는 ㄱr끔 눈물을 흘린ㄷr'처럼요. 가입자가 3200만명을 넘었단 게 지금 보면 신기하기도 하네요. '쿨함'이 중요한 요새 저런 감성글을 올렸다간 '비공감'을 마구 받았을 테니까요.

[사진 : 싸이월드]
싸이월드의 성공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미국인 하버드생이 2000년대 초 오로지 싸이월드를 공부하기 위해 한국을 찾기도 합니다. 바로,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인데요, 그는 싸이월드 출시보다 5년 늦은 2004년이 돼서야 '친구찾기'를 내세운 페이스북을 창업해 그야말로 초대박을 냈습니다. 저커버그는 싸이월드의 UI(User Interface·사용자가 컴퓨터를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것)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웹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건 전문가 영역으로 여겨지는데, 싸이월드는 미니홈피를 꾸미고 관리하는 걸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도록 UI를 만들었기 때문이죠.

미니룸 성공신화, '가상화폐' 도토리도 한몫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는 일명 '닷컴 버블'이 일던 시기입니다. 인터넷 분야가 성장하면서 정보기술(IT) 업계가 엄청난 주목을 받았지만, 많은 경우 실패로 끝나면서 '거품(버블)'이란 표현이 붙었습니다. 싸이월드는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을 포함해 카이스트 출신 6명이 만들었습니다. 당시엔 아이러브스쿨, 프리챌 등 채팅 기반 커뮤니티가 이른바 잘나가던 시절이었는데, 싸이월드엔 이런 채팅 서비스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초창기엔 잘나가지 못했는데요. 하지만 휴대전화에 저화소이긴 하지만 카메라 기능이 더해지면서 언제든 저용량의 사진을 온라인에 올릴 수 있었던 게 싸이월드 성장의 기폭제가 됐습니다. 게다가 프리챌이 유료화에 나서면서 유료 서비스를 받아들일 수 없던 사용자들이 싸이월드로 향하게 됩니다.

[사진 : 싸이월드]
실제 우리가 기억하는 싸이월드의 모습은 2002년에서야 갖춰졌는데요. 당시 회사가 직원들의 월급을 절반 정도만 줬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회사는 수익 모델이 필요했고 20대 팀장을 비롯한 겨우 5명이 두 달여의 기획 끝에 만인의 '인형의 집', 미니룸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회사 자금력으로는 두 달 내 반드시 성과물을 내놔야 했거든요. 결과는? 대박을 냈죠.

미니룸의 성공에 싸이월드 내 가상화폐인 도토리가 주효했는데요. 서비스를 무료로 즐기기 위해 싸이월드로 향했던 사용자들이 정작 내 방과 같은 미니룸과 아바타인 미니미를 꾸미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기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미니홈피에 배경음악(BGM)을 넣으려면 개당 100원 하던 도토리 5개면 충분했는데, 당시 도토리가 벌어들인 수익은 일 기준 3억원, 연 수익 1000억원에 달했으니까요.


하지만 하버드는 사실 '경고'했었다

싸이월드는 2003년 SK텔레콤의 자회사 SK커뮤니케이션즈가 인수하면서 대기업 품에 안깁니다. 창업자들은 전부 회사를 떠나갔죠. 유력한 인수 후보는 사실 야후코리아였단 얘기도 있습니다. 누가 사진을 비롯한 자신의 개인정보를 인터넷상에 올리느냐며 본사인 미국 야후가 반대해 결국 무산됐다는 설이 유력했죠. 지금 보면 한참 잘못 짚은 얘기 같네요.

잘나가던 싸이월드는 블로그의 성장에 밀려 결국 쇠락을 맞습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가 다양해진 것도 한몫했고요. 싸이월드를 하는 건 더 이상 '쿨'해 보이지 않았어요. 왜일까요?

[사진 : 싸이월드]
2008년 싸이월드는 한국을 대표하는 서비스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재에도 실렸습니다. 그런데 이 교재를 보면 대부분 싸이월드의 업적을 담고 있긴 하지만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3가지 요소도 제시됩니다. 유료 아이템, 광고, 그리고 모바일 네트워킹입니다. 어디에서 싸이월드가 실패했는지는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싸이월드는 네이트온과 연동돼 채팅 기능을 더하는 등 변화를 이어갔지만 사진 보기 등 모바일 전환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대기업의 관료주의가 문제였다 등의 분석도 있지만요.

이제 싸이월드는 부활을 꿈꾸며 서비스 재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프리챌의 창업자였던 전제완 전 대표가 싸이월드를 인수했다가 임금 체불 문제 등을 겪었고, 이를 해결하는 조건으로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스카이이앤엠 등 5개 기업의 컨소시엄인 싸이월드Z가 서비스 양도를 받는 우여곡절이 있었죠.

취재를 하며 저는 싸이월드에 접속해 아이디 찾기와 도토리 환불 예약을 마쳤습니다. 서비스 재개일은 이달 25일입니다. 개발자가 무한 밤샘 중이라고 하니…늦어져도 우리…조금만 더…이해하기로…해요. 그립네요 싸이월드.

[배윤경 매경닷컴 기자 bykj@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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