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 故이춘연 영결식서 눈물 "하늘에서 지켜봐달라"

박세연 2021. 5. 1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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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계의 큰 별 고(故)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이준익 감독은 "춘연이형, 형님이 제게 장선우 감독님의 영화 포스터를 만들어달라고 제 사무실 찾아왔을 때가 기억 난다. 그게 1988년 영화였으니 벌써 35년이 다 되어간다. 세월이 화살인지라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영화계가, 강산이 10년에 한번씩 바뀌듯 세 번 바뀌었다. 저도 오랫동안 힘들었고, 잠깐 좋았다가 다시 힘들었다가 그랬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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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 사진|고 이춘연 영결식 유튜브 생중계 영상 캡처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한국영화계의 큰 별 고(故)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생전 30년 넘게 인연을 맺은 이준익 감독은 끝내 눈물을 흘렸다.

15일 오전 10시 서울 반포동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이춘연 이사장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영결식은 배우 권해효의 사회로 진행됐다. 고인에 대한 묵념을 시작으로 평소 고인을 따르던 영화계 후배 감독 및 배우들의 추도사와 추도 영상 상영 순으로 진행됐다.

이준익 감독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추도사를 읽었다. 이준익 감독은 "사람은 홀연히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만큼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가시면 안 되는 거였다. 뒤에 남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그저 막막할 따름"이라며 황망해했다.

이준익 감독은 "춘연이형, 형님이 제게 장선우 감독님의 영화 포스터를 만들어달라고 제 사무실 찾아왔을 때가 기억 난다. 그게 1988년 영화였으니 벌써 35년이 다 되어간다. 세월이 화살인지라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영화계가, 강산이 10년에 한번씩 바뀌듯 세 번 바뀌었다. 저도 오랫동안 힘들었고, 잠깐 좋았다가 다시 힘들었다가 그랬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변했다"고 말했다.

이준익 감독은 "형님이 '대호'에 선뜻 출연해주신 게 기억난다. 앞으로도 늘 생각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으며 "저는 영화감독이기 전에 기획자이자 프로듀서로 들어왔다. 한편의 이익보단 10편의 이익, 개인의 이익보다 전체의 이익이 좋다는 게 늘 형에게 들은 이야기다. 구현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정신을 안고 사느냐 버리고 사느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준익 감독은 "우리가 잘 하겠다. 형님 가신 빈자리, 잘 채우고 가겠다. 하늘에서 꼭 지켜봐달라. 하늘에선 제발 심장 멈추지 말고, 다시 만날 때 다시 그 모습 그대로 모습으로 도와주시길 기원한다. 안녕히 가십시오, 이춘연 형님, 좋아했고 참 존경했고 사랑합니다"고 말하며 눈물읗 훔쳤다.

고인은 지난 11일 오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회의에 참석한 뒤 귀가했으나, 심장마비로 쓰러져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영화인으로서 열정을 놓지 않은 고인의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위원장은 김동호, 장례 고문은 신영균, 정진우, 임권택, 황기성, 손숙이 맡았으며 강우석, 강재규, 고영재, 권영락, 김규리, 김두호, 김병인, 김서형, 김세진, 김영진, 김유진, 김인수, 명계남, 문성근, 민규동, 민병록, 방은진, 배창호, 봉준호, 손예진, 신철, 안정숙, 이병헌, 이용관, 이은, 이장호, 이준동, 이준익, 이창동, 유인택, 정상진, 정윤수, 정지영, 주진숙, 지상학, 차승재, 채윤희, 최재원, 최정화, 하정우 등 영화계 선후배들이 함께했다.

고 이춘연 이사장은 전라남도 신안 출생이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영화학과 졸업 후 1970년대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가 1983년부터 영화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84년 ‘과부춤’을 시작으로 ‘접시꽃 당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영웅연가’, ‘더 테러 라이브’ 등을 기획 제작했다. 씨네 2000 대표로서 ‘여고괴담’ 시리즈를 제작, 한국 공포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고인은 영화계 선후배들을 아우르며 한국영화의 중흥을 이끌었다.

psy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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