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짜 원조 '남산돈까스'일까

정용인 기자 입력 2021. 5. 1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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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유튜버 빅페이스 유튜브 화면 캡처

[언더그라운드.넷] “그 사람이 유튜버인지도 몰랐어요. 뒤에서 영상 찍고 있는지도 몰랐고. 와서 저쪽에서 원조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바로 옆 가게에서도 ‘1976년부터 했으니 자신이 원조라고 주장하더라’ 그런 이야기를 하니 화가 나서 ‘그거 다 거짓말’이라고 한마디 한 거고.”

5월 11일 심야에 통화한 박제민씨의 말이다. 그는 서울 중구 소파로 23번지에 있는 ‘남산돈가스’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자신이 1992년 처음 ‘남산돈까스’라는 상호로 운영하기 시작했을 때가 서른다섯 살이었다고 했으니 현재 60대 중반이다. 30년 가까이 쌓인 원망이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남산돈까스’는 다 거짓말!’

유튜버 빅페이스의 영상 제목이다. 영상은 박씨의 주장에 근거한다. 5월 9일 등록한 이 영상은 5월 13일 현재 155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박씨의 주장에 따르면 1992년 ‘남산돈까스’라는 상호의 가게를 처음 연 것은 자신이었고, 오늘날 남산 주변 일대에 군락을 형성한 ‘남산돈까스’의 원조가 자신이 연 가게였다는 것이다.

1992년 열었던 가게 자리(103-1번지)가 팔리자 박씨 가게가 잘되는 걸 눈여겨보던 인근 101번지 건물주가 옮길 것을 제안했고, 그래서 임대차계약서를 쓰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게 화근이었다. 박씨의 주장에 따르면 애초의 건물주가 지분을 쪼개 상속하면서 분란이 벌어졌다. 미국에 살던 건물주의 막내아들 부부가 들어와 ‘남산돈까스’의 명성을 이용해 사업을 하면서 자신들이 쫓겨났다는 것. 그 후 이들은 프랜차이즈화한 ‘101번지 남산돈까스’로 사업적 성공을 거뒀고, 박씨는 애초의 자리에서 1㎞가 넘는 곳에 다시 가게를 열어 2015년부터 영업 중이다.

박씨가 낸 가게가 원조라는 주장은 맞을까. 1992년 박재환씨가 연 ‘남산돈까스’라는 상호가 최초라는 것이 통설이다.

“박재환이 아니라 박제환이에요. 제가 친동생 이름으로 했습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자신이 먼저 돈까스를 팔기 시작했다는 증언은 엇갈린다. 인근의 강모씨나 작고한 차모씨, 김모씨 등도 자신이 원조라고 주장했다. 1970년대부터 돈까스를 팔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처음부터 주 종목이 돈까스 였던 건 아니었다. 박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1992년부터 들어와서 엄청 고생했어요. 가게에 딸린 방에서 처와 신혼살림을 차렸죠. 점심때 돈까스를 하고 그때는 부대찌개도 잠깐 했고요, 또 저녁에는 불백도 팔았습니다. 그때 모범택시도 막 시작했고 자가용도 막 늘어나는 때였는데 차댈 데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습니다.”

박씨의 말을 뒤집어놓고 보면 처음부터 돈까스 전문점은 아니었다는 말이 되겠다. 인근의 남산돈까스 원조를 주장하는 다른 가게들의 사정들도 다 도긴개긴이다.

논란이 될 경우 원조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특허청 상표등록 검색이다.

‘남산돈까스’를 검색하면 현재 원조 논란을 벌이고 있는 101번지 돈까스도 등록되어 있고, 위의 박씨가 자신의 이름을 덧붙인 상표도 등록이 되어 있다. 모두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그런데 정작 지난 2002년 작고한 차모씨(그도 위 101번지 자리에서 가게를 운영한 적이 있다)가 1999년 낸 ‘남산돈까스’라는 상표는 등록거절 조치를 받았다. 왜일까.

얼마 전 덮죽 상표권 등록 논란 때 특허청이 낸 보도자료를 보면 등록할 수 없는 상표의 예시로 ‘남산돈까스’를 거론하고 있다. ‘보통명칭과 현저한 지리적 명칭으로 구성된 상표의 경우 식별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차씨가 낸 ‘남산돈까스’ 상표에 대한 특허청의 의견통지서를 보면 등록을 거절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본원서비스표는 ‘서울의 남산 또는 경주의 남산과 서비스품목을 결합한 표장’으로서 이를 사용시 누구의 업무에 관련된 서비스을 표시하는 것인가를 식별할 수 없으므로 상표법 제6조 제1항 제7호에 해당하여 서비스표등록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남산돈까스만이 아니다. 의정부부대찌게, 양평해장국, 해운대암소갈비 같이 지역+보통명사로 만들어진 상표는 등록될 수 없다. 등록될 수 없다고 그 이름으로 가게를 못 연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일 뿐.

과거 언론보도를 찾아보면 남산돈까스가 뉴스키워드로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그런데 당시 뉴스를 보면 남산돈까스를 택시기사들 사이에 알려진 기사식당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보통 대중교통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가성비가 좋다고 소문난 곳에 택시기사들이 몰린다. 여기에 자가용 보급이 늘어남에 따라 외식문화 붐이 결합해 남산돈까스라는 명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아무튼 박씨의 주장이 유튜브를 통해 알려지면서 ‘101번지 남산돈까스’라는 이름으로 상표등록을 한 프랜차이즈 대표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2차에 걸쳐 해명 글을 올렸지만, 박씨가 내걸었던 ‘since1992’ 등의 표시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운영한 점, 박씨 측과 맺은 계약이 영업위탁계약이 아니라는 점 등에 대한 의혹이 쏟아져 나오면서 ‘장사가 잘되니 건물주가 영업장을 뺏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더해지고 있다.

‘101번지 남산돈까스’ 측은 “세입자가 갑자기 나가게 돼서 어쩔 수 없이 가게를 맡아 현재까지 운영하게 됐을 뿐”이라며 “박씨가 너무 억지를 부리고 있어 자신들이 사실이 다르다고 주장한들 논란만 커질 것 같아 고소장 접수 후 최종적인 입장을 다시 정리해 밝히겠다”고 답했다.

101번지 남산돈까스 측은 기사 마감 후인 5월14일 오후 5시에 보도자료를 내고 위 의혹에 대해 답변을 보내왔다. 자료에서 이들은 “‘since1992’ 표시는 위탁운영자 박씨가 위탁운영을 맡은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임의로 사용하던 것인데, 주의 부족으로 인한 실수와 잘못으로 그대로 남기게 된 것”이라며 “추후 since와 관련한 모든 것을 삭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계약서를 보면 박씨와 계약이 위탁운영이 아니라 임대차계약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창업주인 시어머니가 위탁운영계약 체결 경험이 없고, 마땅한 계약서 양식을 구하지 못해 본인을 사업자로 하는 조건으로 박씨와 상호 구두합의를 통해 임대차계약으로 위탁운영계약을 대신한 것”이라고 밝혔다. 가게가 쓰던 전화번호(1976번)를 박씨에게 넘겨준 것 역시 “시어머니가 미처 생각지도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고객들이 알고 있던 매장 전화번호를 슬그머니 자기명의로 해놓고 가져가 버렸다”고 주장했다.

글쎄. 의혹이 말끔하게 해소되는 답변은 아니다.

외식산업과 관련 원조, 그러니까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 기원이 명확히 밝혀진 사례는 의외로 그리 많지 않다. 한 지역에서 어떤 가게가 장사가 잘되면 근처에서도 너도나도 모방해 비슷한 레시피와 영업 시스템을 도입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안 망하고 업력이 쌓이면 너도나도 원조를 주장하는 법이고.

5월 14일 101번지남산돈까스 측이 낸 해명자료를 보면 “1997년 6월 시어머니가 돈까스를 단일메뉴로 낸 남산식당이 처음”이었으며 “일본에서 돈까스 조리법을 배워온 친척으로부터 조리법을 전수받아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수제 돈까스 메뉴로 개발, 판매 개시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친척으로부터 일본에서 배워온 조리법을 전수받았다는 것이 증빙가능하냐는 질문에 조윤희 101번지남산돈까스 대표는 “당시 지금과 같은 분쟁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에 사진을 남기거나 레시피를 따로 정리하는 등의 증빙을 남기진 못했다”라며 “최근 논란이 빚어지며 회사차원에서 창업주에게 증언을 들은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이 시초 주장은 맞는 걸까.

기자는 식도락을 좋아한다. 기자가 남산 일대의 왕돈까스 가게에 처음 방문했을 때가 1995년, 1996년 무렵이다. 그 당시도 서로 원조라고 주장하는 가게가 3~4곳이었다. 게다가 해명보도자료에 따르면 “창업주이자 사업주인 이 모씨가 건강악화를 이유로 단골고객이었던 차씨에게 운영을 위탁한 시점이 1999년 7월”이었다. 사업주 이 모씨는 그 뒤 돈까스 메뉴의 맛과 품질 유지 관리일에만 집중했다고 하는데, 실제 이씨가 주방에 선 업력(業歷)은 101번지 돈까스 측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3년에 불과하다. 부대찌개의 원조로 알려진 의정부 오뎅식당 허기숙 할머니나 신당동 떡볶이의 마복림 할머니처럼 보통 자신의 이름을 걸고 수십년 업력을 가진 경우와도 다르다.

특허청 관계자는 “남산돈까스 상표 자체는 식별력 없는 표지이기 때문에 상표권을 주장을 못하지만 박씨의 주장처럼 자신이 임대하던 사업장의 표지판과 내부 레이아웃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면 이어 받은 쪽이 부정경쟁방지법을 어긴 사례로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리하자. 지금도 남산 일대에는 자신이 남산돈까스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가게들이 여럿 있다.

그러나 어디가 원조인지 확정하기란 쉽지 않다. 남산돈까스의 출발은 기사식당이었다. 30여년전 남산 일대를 찾은 식객들의 선택의 기준은 맛이 아니라 가성비였다. 돈까스만 판 것도 아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진 돈까스 뿐 아니라 꽤 입소문을 탄 순두부전문집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음식 유튜버가 표지로 삼은 ‘남산돈까스 원조 주장은 다 거짓말’이라는 주장은 박씨 주장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일정부분 진실을 반영하고 있다. 1997년부터 시작한 업력을 두고 자신만이 배타적인 원조라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다. 전후 맥락을 보면 갈등을 빚기 전까지 양측은 동업관계였을 가능성이 높다.

상호 고소·고발까지 치달은 감정싸움은 그만두고 차라리 ‘남산돈까스’라는 브랜드가치를 높이기 위한 선의의 경쟁, 공동의 노력을 주문한다면 순진한 요청일까. 씁쓸한 뒷맛만 남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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