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人이즈백] 역대 저그 TOP5, 최초로 테란을 꺾고 우승한 그의 이야기

김종민 입력 2021. 5. 15. 07:00 수정 2021. 5. 15. 16: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저그로 최초 테란을 제치고 우승한 박태민

[MHN스포츠 김종민 기자] 결승전에서 테란을 최초로 이겼던 저그,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7전 4선승제 개인 리그 우승, 판짜기와 전략의 대가로 불렸지만, 그만큼 긴 준비(세팅)시간으로 팬들의 기억에 남은 사나이.

'운영의 마술사' 박태민이다. 스타크래프트1 브루드워 역대 저그 게이머 순위를 매길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자신 있게 밝힌 그를 MHN스포츠가 만났다. 박태민과 함께, 2000년대의 스타크래프트 판으로 돌아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박태민ⓒMHN스포츠 정혜민PD

-스타크래프트와 e스포츠 팬들에게 밝히는 자기소개 및 근황

안녕하세요, 스타크래프트1 전직 프로게이머이자,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게임을 전문으로 해설했던 박태민입니다. 스타크래프트, 하스스톤 등을 맡았으며 현재는 개인 방송을 통해 다양한 게임 분야로 해설의 발을 넓히고 있습니다.

-데뷔가 21년 전인 2000년으로, WCGC 우승인데, 당시 대회에 출전하게 된 계기는

스타크래프트를 99년 말에 갑작스레 시작해서, 제대로 한 것이 00년도였어요. 제대로 게임을 시작하니까 꼭 해보고 싶던 것이 세계 대회 우승이더라고요. 그렇게 6개월 정도 연습해서 우승했던 대회가 WCGC(World Cyber Games Challenge)입니다. (이 대회는 현재 WCG(World Cyber Games)의 전신, 편집자 주) 당시 우승으로 스포츠 일간지 1면에 실렸고, 많은 팬의 주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대회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당시 감독님이 우승 못 하면 팀에서 내보내겠다고 엄포를 놓으셔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감독님과 상의 없이 고등학교 자퇴를 한 상황이라 막막했거든요. 그래도 그때는 재밌어서 밤새 연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프로 생활을 관두고, 이후 2003년에 복귀하게 됐는데

프로게이머를 하며 학교생활이 그리웠어요. 프로게이머들이 학업이나 학교생활에 차질을 겪는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친구들과도 잘 지냈고...'인싸'였던 셈이죠. 

그런데 학교생활 때문에 연습을 못 했는데도 대회 예선만 나가면 (예선을) 뚫더라고요. 연습이 부족해서 본선에서는 지긴 했지만, '팀에 합류해서 연습하면, 좋은 성적 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서지훈, 강민, 이주영 등 잘하는 선수들이 있던 GO팀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당시 GO팀이었던 서지훈, 사진=OGN 영상 캡처

-'당신은 골프왕 MSL'에서 우승하며 정점을 찍었는데, 자신이 다른 선수들과 차별점이 있었다면

저는 전략적이고, 분석적인 플레이가 강점이에요. 당대의 저그들과는 다른 전략을 준비했고, 그것을 실전에서 잘 살려서 이윤열 선수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어요. 당시 맵 중에 '애리조나'가 반(半)섬맵이라서, 그런 강점을 더 드러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외에 '루나'와 '레이드 어썰트'가 저그에게 괜찮은 맵이기도 했고요.

비슷한 시기에 활약했던 박성준 선수는 저와 다른 성향입니다. 박성준 선수는 자원 많이 먹고, 물량 뽑고, 피지컬 살리고...저는 이런 쪽보다는 전략에 특화됐어요. APM이 200대 중반이라 손이 느리다는 단점을 전략이라는 장점으로 잘 메운 것 같아요.

-'운영의 마술사'로 대표되는 전략적인 플레이스타일을 정립하게 된 계기는

사실 타고났어요(웃음). 제가 분석을 잘하고 관찰력이 좋아서, 길가다 한 번 본 얼굴도 잊어버리지 않고 잘 기억해요. 그래서 형사나 프로파일러를 했으면 잘했을 거라는 얘기를 듣기도 해요. 당시 대회를 준비하면서도 선수를 분석하고, VOD를 시청해 상대의 사소한 습관까지 파악하고 준비했어요. 이게 잘 맞아떨어지면 마치 상대 화면을 보는 것처럼 완벽하고, 그렇지 못하면 기복이 있는 거죠.

또, 같은 팀에 정석 테란에 가까운 서지훈 선수가 있던 것이 (플레이스타일 정립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2년 만에 복귀해서 제가 테란전을 힘들어하는 상황이었거든요. 무난히 가서는 이기기 힘들었던 서지훈 선수를 상대로 전략적인 준비를 많이 하다보니 그게 강점이 된 것 같아요.

반대로 '빌드 오더'에 집중한 최연성 선수나, 전략을 예측하기 어려운 임요환 선수 상대로는 고전했던 기억이 나네요.

-기억에 남는 자신의 명경기는

많은 분들이 제 명경기로 이병민 선수와의 매치를 꼽고, 거기서 '운영의 마술사'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제가 생각하는 잘한 경기는 아니에요.

제가 생각하는 명경기는 당신은 골프왕 MSL 승자 4강, 서지훈 선수와의 매치입니다. 당시 맵이 인투 더 다크니스였는데, 제가 엘리전(엘리미네이션, 서로 기지 파괴를 노리는 전략)을 유도해 승리를 따냈거든요.

서지훈과 박태민, 사진=OGN 영상 캡처

또 다른 명경기로는 06-07 SKY 프로리그 결승에서 문준희 선수를 상대로 승리한 경기가 있어요. 이 경기에서는 문준희 선수가 실수하긴 했지만, 제가 판짜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몰래 럴커를 준비했다가 막히고, 프로토스의 리버를 동반한 '한 방 러시'가 들이닥친 상황이었는데요. 역으로 뮤탈리스크를 선택하고, 멀티를 내주며 시간을 벌었어요. 그리고 뮤탈리스크로 상대 본진에 큰 피해를 줘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리그 결승전이었던 만큼 굉장히 짜릿했어요.

프로토스의 본진을 노린 뮤탈리스크, 사진=OGN 영상 캡처

이외에도 07년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오영종 선수를 상대로 승리했던 경기가 기억나요. 당시 맵이 '블루 스톰'이었는데, 원 해처리 레어에 빠른 스파이어로 상대의 테크를 강제하고, 이후 3해처리 운영을 전개했어요. 이에 오영종 선수도 멋진 운영으로 대처해 후반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했습니다.

-박태민이 뽑는, 최고의 저그는?

실력으로는 이제동 선수가 정말 잘한다고 느꼈어요. 그렇지만, 제가 주로 활약했던 당시인 2004년으로 한정하면 홍진호 선수가 저의 롤모델이었습니다. 실제로 몇몇 맵에서는 홍진호 선수의 플레이를 따라하기도 했어요.

홍진호 선수는 당시 일반적인 저그와는 플레이 자체가 달랐어요. 공격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전략에도 매우 능했습니다. 드래프트 세대부터는 섬맵과 같은 전략적인 맵이 인기를 잃고, 리플레이의 공급으로 선수들이 상향 평준화됐지만, 만약 전략적인 맵이 유지됐고 리플레이가 없었다면 홍진호 선수는 지금까지도 잘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만약이지만요(웃음).

-선수 시절 긴 세팅 시간으로 유명하고, 실제로 개인 방송 채널명도 '세팅박'인데, 이와 관련한 자신의 철학이 있다면?

당시 저의 긴 세팅 시간을 기억하시는 팬들이 많은데요. 다시 돌아가도 저는 세팅을 할 겁니다. 프로 선수로서 꼭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스포츠를 찾아봐도, 교체나 투입 상황에서 운동선수들이 몸을 푸는 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잖아요. 마찬가지로 e스포츠도 뇌와 손 등의 기관을 쓰는데, 몸을 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e스포츠 초창기 대회에서는 그런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선수들이 손을 풀지 못하다 보니까 그날 첫 경기에서는 준비된 경기력이 나오지 못 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세팅에 대한 그의 철학을 밝히는 박태민ⓒMHN스포츠 정혜민 PD

스타크래프트 경기는 완벽을 요구하는 '피아노 연주'와 비슷해요. 초 단위로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실수가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손이 안 풀리면 실수가 나오게 되고 선수로서는 치명적인 상황이 되는 거죠. 제가 세팅으로 이슈가 됐던 에이스 결정전 경기가 그랬어요. 상대 이윤열 선수는 이미 두 번째 경기라, 손이 풀린 상황이었고 저는 그날의 첫 경기였거든요. 

실제로 제가 세팅으로 이슈가 되고 난 이후에 정식으로 경기 전 준비 절차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제가 기여한 바가 있습니다. 다른 e스포츠 경기에서도 세팅과 준비가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고요.

다만, 다시 돌아간다면 방송국과 시청자의 입장을 생각해서 옛날처럼 세팅을 길게 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웃음). 물론, 그때 에이스 결정전 패배 시 삭발을 해야 했던 상황이라 확신은 못 하겠어요.

-박태민과 스타크래프트1을 기억하는 e스포츠 팬들에게 전하는 인사, 그리고 앞으로의 행보

스타크래프트1 프로게이머 출신 중에 e스포츠 업계에 남은 사람들이 전체로 보면 소수예요. 특히, 제 현재 나이(84년생)에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더 적고요. 

스타크래프트1 리그가 큰 사건사고를 겪어 축소되다 보니, 커리어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저도 최근까지 2년간 개인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한 결과, 끝까지 e스포츠와 게임 방송으로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경쟁은 치열해요. 스타크래프트1에서든, 다른 게임 장르에서든 젊고 새로운 방송인들이 유입되고 있거든요. 그렇지만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1호 게이머이자 e스포츠 태동기의 참여자로서 자부심이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좋은 방송으로 찾아뵙는 박태민이 되겠습니다.

Copyright © MHN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