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첫 홀 불안과 설렘의 이중주

정현권 2021. 5. 1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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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골프]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시인 황지우는 설렘과 불안이 공존하는 기다림을 이렇게 노래했다. 간절하게 기다리지만 오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과 첫눈처럼 나에게로 달려올지 모른다는 설렘이 교차한다.

나는 골프장 첫 홀 티잉 구역에서 올라서면 시인이 전하는 그 감정에 직면한다. 설렘과 그것을 방해하는 불안에 휩싸인다. 하나에서 파생되는 양가(兩價) 감정이다.

첫 홀에다 첫 티샷 순서는 더욱 공포다. 지난날 첫 홀에서의 뼈아픈 실패와 잘 맞은 타구 장면이 얽혀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친다.

작고한 김종필 총리는 "티 위의 흰 공을 보면 백 가지 생각이 든다"며 백구백상(白球百想)이라고 했다. 정작 공을 치는 순간 아무 생각이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 기말고사를 보는 느낌이죠. 나름 열심히 공부했거나 설렁설렁 하고선 첫 문제에 다가서면 불안하면서도 원하고 또 원하죠."

지난 주 동반자가 카트로 이동하면서 한 말이다. 이래서 나온 게 첫 홀 티샷 순서 뽑기다. 나는 요즘 뽑기나 티를 떨어뜨려 순서를 정하지 않는다.

카트에 실려 나온 캐디백 순으로 결정한다. 가장 바깥에 실린 백의 주인부터 시작한다. 시간도 절약되고 간단하다.

골프에서 티잉 구역의 중요성은 생각보다 크다. 프로선수들도 무심한 듯 보이지만 티잉 구역 활용엔 매우 신중하다.

티잉 구역(Teeing Area)은 티잉 그라운드(Teeing ground)로 표현되다가 2019년부터 바뀌었다. 티 박스로도 말하는데 정식 용어가 아니다.

간혹 고수들이 블루 티에서 치자고 하면 나는 평범하게 화이트 티를 고수하는 편이다. 약하다고 놀리는 동반자에겐 "그럼 화이트 티에서 버디를 얼마나 많이 잡는지 지켜보겠다"고 응수한다.

배꼽티에서 치면 2벌타

티잉 구역을 표시하는 티 마커(Marker)는 빨간색, 흰색, 파란색으로 보통 나뉜다. 빨간색은 코스 전장이 가장 짧아 여성들이 사용하며 흰색은 레귤러 티로 대다수 아마추어 남성 골퍼용이다.

여자 장타자들도 간혹 흰색 티에서 남자들과 함께 치곤 한다. 얼마 전 한 여성 동반자가 자청해서 흰색 티를 함께 사용했다. 몇 홀 지나 내기가 붙자 그 때부터 자신은 레이디 티로 가겠다고 말해 동반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장 긴 전장을 표시하는 파란색 티는 고수들이 사용하는 백티로 검정색도 있다. 백티에서는 코스를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져 정타를 내기 어렵고 장타자여야 8번 이하 아이언으로 투온 그린을 할 수 있다. 웬만한 고수가 아니면 힘들다.

요즘엔 티잉 구역에 흰색 티가 10~20m 간격으로 두 개씩 있는 것을 종종 본다. 골드로 표시된 시니어 티 마커를 없애고 그냥 흰색 티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레귤러1, 레귤러2로 부른다.

나이가 아무리 많은 골퍼라도 시니어라는 표현을 꺼리는 심리를 감안한 것이다. 캐디가 둘 중 편한 데로 선택하라고 말한다.

티잉 구역은 두 개의 티 마커를 연결한 직선에서 두 클럽 뒤로 확장한 직사각형 구역을 말하며 이 안에 반드시 티를 꽂아야 한다. 이 구역을 벗어난 곳에 두 발로 스탠스를 취하는 것은 무방하다.

티 마커 선상 앞으로 티가 나오면 "배꼽이 나왔다"고 말하는데 그대로 진행하면 두 벌 타를 받고 다시 쳐야 한다. OB를 낸 것 같은 아픔이 따른다.

공을 치려는 의도 없이 연습스윙 도중 공이 클럽에 맞거나 진동으로 티에서 떨어지면 벌 타가 없다. 하지만 치려고 클럽을 휘둘렀다면 설령 공이 맞지 않더라도 한 타를 적용한다.

티샷한 공이 티잉 구역에 떨어지면 벌타 없이 티잉 구역내 다른 곳이나 티에 다시 올려놓고 치면 된다. 물론 첫 번째 스윙은 한 타로 계산된다. 최근 부산경남오픈에서 '낚시꾼 스윙' 최호성이 이런 장면을 연출했다.

예전에 애주가인 직장동료가 전날 얼마나 술을 마셨든지 아침 첫 홀 에서 세 번이나 드라이버를 휘둘렀으나 공을 맞히지 못했다. 지켜보던 뒤 팀에게 너무 창피해 동반자들이 공을 집어들고 도망치듯 카트를 타고 달아났다.

티잉 구역에도 명당 있다

간혹 공을 똑바로 날아가게 하려고 다른 클럽이나 물건을 정렬표시 도구로 바닥에 놓으면 위반이다. 발로 티잉 구역 전방에 있는 잔디를 누르거나 풀과 식물을 꺾어도 모두 2벌타다. 티잉 구역에선 클럽이나 발로 잔디나 지면을 누르는 것은 무방하다.

전문가들은 티잉 구역에도 명당이 있다고 한다. 프로 선수들이 그냥 티를 꽂는 것 같지만 올라오며 평평한 곳을 눈여겨 찾는다.

사람들이 많이 밟다 보니 티잉 구역 곳곳에 경사진 데가 생긴다. 자칫 스탠스를 취한 발보다 낮은 곳에 티를 꽂으면 슬라이스, 높은 곳에선 훅이 나기 십상이다.

슬라이스 구질은 티잉 구역 오른 쪽, 훅 구질은 왼쪽에 티를 꽂는 것도 방법이다. 공의 회전 반경에 따라 더 넓게 페어웨이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이 OB구역으로 애매하게 날아갔다면 잠정구를 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고 다시 치면 된다. 명확한 표현 없이 다시 쳤는데 살아 있는 원구로 진행하면 오구(誤球)플레이로 규칙위반이다.

작년 9월 LPGA투어 ANA인스퍼레이션에서 이런 일어났다. 김세영의 공이 OB구역 방향으로 날아가 별도 의사표현 없이 잠정구를 쳤다. 살아 있는 원구로 파를 잡았지만 오구 플레이 2벌타를 포함해 4벌타를 받았다. 9언더파 선두였다가 갑자기 5언더파로 내려앉아 이 날 공동 14위로 경기를 마쳤다.

나는 요즘 티잉 구역에서 스탠스를 취한 후엔 연습스윙을 하지 않는다. 티를 꽂고 후방에서 목표를 겨냥해 가볍게 스윙한 다음 스탠스를 잡고 바로 티샷을 한다.

처음엔 불안했지만 모양도 깔끔하고 시간 지체도 없어 만족한다. 쉽게 말해 가라스윙을 없앴다.

쉼 호흡을 크게 한 다음 페어웨이만 지킨다는 맘으로 부드럽게 첫 티샷을 날린다. 처음부터 OB구역으로 공을 날려 2벌타를 먹고 시작할 수 없지 않은가.

불안은 알 수 없는 결과에 대한 간절함과 절실함 때문에 나온다고 한다. 이는 기대와 설렘이라는 감정에 연리지로 맞닿아 있다.

파도 같은 불안과 긴장을 잠재우고 첫 홀에서 파를 잡으면 기분이 그토록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카타르시스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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