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싸이월드의 추억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
30대 후반 직장인 박선희씨가 싸이월드에서 쌓은 우정과 연대의 경험을 회고한 ‘아무튼, 싸이월드’(제철소)의 부제입니다. 김춘수 시 ‘꽃’의 명구를 패러디한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잊고 있었던 추억이 밀려왔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을 풍미하며 ‘1인 1 미니홈피 시대’를 열었던 한국형 소셜미디어의 시조새 싸이월드의 차별점은 바로 ‘일촌’이었지요. 무색무취하고 무감정한 페이스북의 ‘친구’나 트위터의 ‘팔로어’와는 달리, 이름을 지어주어야만 ‘일촌 공개’의 내밀한 게시물을 읽을 수 있는 긴밀한 사이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다정한 번거로움을 감내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관계의 척도이기도 했습니다. ‘일촌’들에게는 거리낌 없이 속을 내보이다가도 막상 자녀의 근황이 궁금한 ‘진짜 일촌’이 나타나 일촌 신청을 하면 미니홈피를 잠정 폐쇄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는 것이 그 세계의 역설이기도 했고요.
미니홈피에도 이름을 지어주고 게시물에 제목을 다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한 알에 100원짜리 도토리 다섯 알이면 미니홈피 배경음악을 살 수 있었죠. 친구의 미니홈피 배경음악이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라든가 하림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로 바뀌면 ‘이 자식, 또 헤어졌구나’ 미루어 짐작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애써 찾아가지 않아도 ‘친구’의 게시물을 몽땅 보여주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이 간편하지만 부박하다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여러 일촌 중 한 이름을 굳이 클릭해 그가 공들여 구축한 세계에 정중히 입장하던 싸이월드 시대의 섬세한 관계 맺음, 관심과 성의가 그립습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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