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열락과 쇠락.. 봄은 이제 지나갔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지음|창비|324쪽|1만4000원
나이 서른에 데뷔한 소설가 김금희는 마흔이 넘었다. 네 번째 소설집을 펴낸 그는 “가을에 가까운 마음”이라며 “적어도 어떤 봄과 여름에 대해서는 말할 준비가 충분히 된 것 같다”고 했다. 일곱 단편은 봄과 여름으로 상징되는 청춘기의 열락과 쇠잔을 담고 있다.
표제작 속 화자는 한 다큐 PD로부터 정치 분야에서 과거에 유명했던 팟캐스트 진행자 기오성에 대한 인터뷰 요청을 받고선, 대학 선배인 그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노교수의 족보 정리를 하게 되면서 함께 고택에서 숙식한 것. 해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다 한국에 온 교수의 중학생 손녀도 잠시 기거한다. 손녀는 자신을 소시지 피자 “페퍼로니에서 왔다”고 소개한다. 화자는 기오성과 사랑의 감정을 키웠지만, 손녀에게서 “밤새 기오성과 아주아주 딥한(깊은) 얘기들을 했다”는 말을 듣는다. ‘내 안의 무언가가 기우뚱하는 것을 느낀’ 화자는 사소한 것일 수도, 결정적일 수도 있는 사실을 캐묻지 않고 관계를 정리한다. 당시 좌파의 이상을 좇던 선배는 훗날 우파로 전향한다. 그도 분명하지 않은 어떤 것에 의해 ‘기우뚱’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 밝히는 족보 정리를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젊음. “페퍼로니에서 왔다”는 말은 곧 나도 나를 알지 못하겠다는 고백일지도 모른다. 김금희가 그리는 청춘은 여름날 선명한 뙤약볕이 아니라 봄날 가물거리게 피는 아지랑이에 가깝다. 재일 교포 출신 일본인 전 여친과 연락(마지막 이기성), 바람났던 전 대학 남친과의 재회(크리스마스에는) 등 서툰 연애와 이별, 시간이 흐른 뒤 멋쩍은 만남을 톡톡 튀는 필치로 그리는데, 이야기의 전모를 드러내지 않기에 여운이 짙다. 그 흐릿한 여백 속에서 독자들은 미숙했던 지난날과 여전한 지금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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