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냄새에 집중하라
사교적인 사람, 타인 체취 좋아해.. 친구 간에는 후각 유전자도 비슷"
냄새의 심리학
베티나 파우제 지음|이은미 옮김|북라이프|364쪽|1만7500원
냄새를 잘 맡는 건 동물의 특기로 여겨지지만 사실 인간의 후각은 거의 모든 동물보다 뛰어나다. 2017년 스웨덴 린셰핑 대학교 동물학 교수인 마티아스 라스카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다양한 포유류를 상대로 냄새 구분 능력을 실험한 결과, 인간은 원숭이, 쥐, 박쥐, 물개, 돼지, 고슴도치, 토끼보다도 더 확실하게 냄새를 맡아 낸다. 개와의 명확한 비교는 아직 불가능하다. 실험에 사용된 냄새 분자 다섯 가지 중 세 가지가 개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냄새이기 때문이다.
이성을 유혹할 수 있는 냄새를 뿜어내는 ‘섹스 스프레이’ 개발은 가능할까? 수많은 후각 연구자가 이를 만들어내고 싶어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동물이 성적 매력을 어필하거나 교미할 채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데 냄새를 활용한다. 이때 거의 모든 동물이 특정 농도와 조합을 갖춘 다수의 분자를 사용하는데, 이는 종(種)의 번식을 위한 ‘극비 코드’라 동종 간에도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게 유지된다. 인간의 유혹 물질은 한 번도 풀린 적 없는 비밀번호처럼 아주 잘 암호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섹스 스프레이나 러브 스프레이 같은 건 출시될 수 없다.
인간의 후각적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이자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교 교수인 저자가 30년간 후각 연구의 결과물을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인간은 ‘이성’을 내세우며 ‘냄새’는 동물의 것이라 선 그었지만 사실 인류는 알려진 것과 달리 시각적 동물이라기보다 후각적 동물에 가깝다”고 말한다.
외로움은 서구 사회에서 사망 원인 1위로 꼽힌다. 우울증, 불안장애 등을 유발하며 면역 체계에 영향을 미쳐 고혈압, 암 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 저자는 “사람들이 고독사에 이르는 건 삼차 미분 방정식을 정확하게 풀지 못해서가 아니다. 사흘이 넘도록 자신의 냄새가 밖으로 새어나갈 때까지 아픈 몸으로 홀로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은 외로움과 거리가 멀 가능성이 높다. 우울한 사람은 후각 기능이 떨어진다. 무력감을 느낄 때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후각 망울의 신경망이 엉망이 되면 ‘정서적 뇌’인 변연계를 제어하기 힘들어 뇌가 부정적 경험에 반응하는 걸 제어하기 힘들다”고 설명한다.
친구들은 서로의 냄새를 더 잘 맡는다. 친구는 친구가 아닌 사람들보다 유전학적으로 더 비슷한데, 후각 세포에 관한 유전자가 친구 간 유사성을 만들어낸다. 모든 사람은 저만의 후각을 가지고 있어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르게 냄새를 맡는데, 우리는 후각 세계가 유사한 사람들에게 친숙함을 느끼며 더 끌린다. 사교적인 사람은 타인의 아주 미약한 체취에도 반응하며, 다른 사람의 체취에 긍정적인 감정을 갖는다.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이처럼 코는 사회적 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행복과 스트레스 감소에는 소셜미디어상의 친구가 아니라 “현실에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오프라인 친구들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저자는 말한다. “‘사람 냄새'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셈이었다!”
코는 중요한 피임 도구이기도 하다. 유전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2세를 생산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편하지 않은 냄새를 풍긴다. 코가 알아서 걸러주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사람과의 사이에서 자손을 낳을 확률은 아주 낮다. 남성의 체취는 테스토스테론이 높을수록 더 강한데, 연구 결과 싱글남의 냄새가 연인이 있는 남성의 냄새보다 강하게 묘사됐다. 실제로 싱글남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더 높았다. 여성은 배란기 때 가장 쾌적한 냄새를 풍겼다.
저자가 설명하는 냄새를 환기하다 보면, 마들렌 냄새를 맡고 과거를 회상하는 프루스트처럼 후각에 대한 흥미진진한 지식의 세계로 빨려들게 된다. 태어난 지 몇 시간 안 된 신생아가 엄마 냄새를 알아채는 건 태아 때부터 모체의 냄새를 맡아 왔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 냄새를 잘 모르지만 집에서 기대했던 냄새가 나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낀다. 냄새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때가 실상 가장 편한 순간이다. 우리 기대에 꼭 들어맞는 냄새가 나면 의식적으로 지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심리학자 에곤 쾨스터는 말했다. “냄새는 우리가 세계 어느 곳에 있든 집에 있다고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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