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소네가 8세 어린 JP에 고개숙인 사연은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나선 젊은 도전자들
실력과 진지함 보여주고 중진은 비전으로 응전해야
10년 전, 와병 중인 김종필(JP) 전 총리 자택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전 일본 총리가 문병차 찾았다. 나카소네는 JP보다 여덟 살 위였다. 그런데도 나카소네는 JP를 윗사람 대하듯 했다. 자리가 끝날 때까지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정중한 태도였다. 현장에 있던 기자가 까닭을 물었더니 JP는 “한·일 청구권 협상 상대였던 오히라 마사요시 전 총리가 나카소네의 정치 선배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이가 어려도 오야붕의 파트너는 오야붕으로 대하는 게 정치”라고 했다.
‘오야붕(親分)’-‘꼬붕(子分)’은 과거 정치권에서 계파 보스와 계보원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그런 두 단어가 최근 당대표 선거전이 시작된 국민의힘에서 화제에 올랐다. 70년대생 초선 의원이 당대표 출마를 알리려 한 정계 원로를 찾았다가 “누구 꼬붕이란 소리 듣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 얼마 후 이 의원은 한 중진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대통령 후보를 지낸 이 중진이 “일찍 핀 꽃은 일찍 시든다”고 하자 초선은 “그럼 조화(造花)로 사시라”고 되받았다.
JP-나카소네 시대를 기억하는 중진들에게 70년대생의 이런 도전은 거북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한 중진에게 감상을 물었더니 “요즘 후배들은 발랄해”라고 했다. ‘꼰대당 탈피’가 당대표 공약으로 나온 마당에 감정을 삭이는 듯했다. 더구나 당대표에 출마한 김웅·이준석 같은 70·80년대생들이 초반부터 여론조사에서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했거나 고민 중인 김은혜·윤희숙 같은 여성 초선도 70년대생이다.
4년 전 보수 정당의 지리멸렬을 돌이켜 보면 소장파의 도전은 중진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지난 대선 때 한 언론사가 후보들의 교육 공약을 다룬 기사에서 자유한국당만 빈칸으로 나간 일이 있었다. 공약이 준비 안 된 탓이었다. 탄핵 국면에서 ‘새 보수’를 내걸고 한국당과 갈라선 바른정당도 군소 정당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도 두 당 중진들은 “배신자” “썩은 물”이라며 서로 삿대질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국민의힘은 그 두 당의 중진들이 작년 총선 때 다시 손잡고 만든 당이다. 일부 중진의 자기희생이 있었지만 총선에서 참패했다. 이후 1년 만에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모처럼 유권자 선택을 받았다. 물론 국민의힘이 잘해서 거둔 승리가 아니란 평가가 많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의 취약층으로 꼽혔던 2030세대가 눈길을 줬다는 점에서 ‘쇄신’을 외친 소장파가 당의 체질 변화를 가져온 게 효과를 봤다는 평가에 인색할 필요는 없다.
JP가 오히라와 협상할 때 나이가 30대 중반이었다. 지금의 사회적 나이로 40대 중후반쯤일 것이다. 국민의힘에서 당대표 출마를 선언했거나 준비 중인 12명 가운데 중진들의 평균 나이는 61세, 소장파는 47세다. 그런데 중진 중에는 30대 때 의원이 됐거나 40대 때 장관을 한 사람이 여럿 있다. 반면 그들이 중진이 된 이후 보수 정당에선 당대표가 바뀌면 전임 대표 때 영입한 청년들이 소리 없이 무대에서 사라졌다. 새 인물로 키우지 않고 액세서리 취급한 탓이 크다.
그런 점에서 40대들의 도전이 지금보다 더 발랄해져도 중진들은 너그럽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소장파가 “아저씨”라 부른다고 “저 친구는 누구 계보”라고 따지기보다 희생과 헌신의 자세, 어떤 비전을 준비했는지 후배에게 보여주는 게 중진답다. 소장파들도 조롱보단 실력으로 선배들을 넘어서겠다는 진지함을 보여줘야 한다. 나카소네가 연하의 JP를 보스로 대우한 의미를 양쪽 모두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누가 승리하든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보수 정당이 바닥을 쳤음을 확인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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