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00] 기념일 단상
기념일을 잘 챙기지 못한다. 생일과 결혼기념일은 물론 출판기념 행사도 거의 해본 기억이 없다. 내 생일도 동생이나 친구의 축하 메시지를 받고 알 정도니 말을 말자. 덕분에 “200회니까 떡 해야겠네”라는 엄마의 말이 무슨 소리인가 했다. 얘기인즉 내가 이 칼럼을 연재한 회차가 200회란 소리였다. 그걸 일일이 다 세고 있었느냐고 되물었다가 통박을 들은 건, 칼럼 제목 앞에 붙은 숫자를 최근에야 알아봤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숫자에 무관심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얼마 전 남편에게 “김치 껍데기 좀 줘!”라고 말했다가 실소했다. 김치통 뚜껑 달라는 말을 잘못 한 것도 웃긴데, 그걸 찰떡같이 알아듣고 건네준 남편이 신통해서였다. 신부의 부케를 담당한 후배가 ‘웨딩의 전당’을 ‘예술의 전당’이라고 잘못 말하는 바람에 펄럭대는 오페라 포스터 앞에서 결혼식을 망칠까 봐 등골이 오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떠올랐다.
단어를 잘못 말하거나, 단어 자체가 기억나지 않는 순간들이 나이 듦의 한 측면이란 걸 이젠 안다. 하지만 노화에 따른 기억 감퇴에 기적 같은 측면도 있다. 나도 기억 못 하는 걸 누군가는 기억해 내고야 만다. 마흔이 넘어서야 나는 그것이 친구나 가족의 존재 이유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이 쓰러지고, 무릎이 꺾여 휘청거릴 때, 그들의 가장 빛나던 한때를 증언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그렇게 우리는 혼자가 아닌 함께 기대어 살아야 한다.
얼마 전, ‘백작님’으로 시작하는 이 칼럼의 댓글을 보았다. 백작은 한동안 진행했던 라디오 청취자들이 부르던 내 애칭이었다. 그렇게 누군가의 기억에 기대 한때의 추억이 호출된다. 200번의 주말을 보내며 나는 조금은 낡아갔을 것이고, 얼마간 성숙해졌을 것이다. 돌이켜 보니 ‘늦어서 죄송합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을 쓰지 않기 위한 혹독한 마감 엄수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고백건대, 내가 했던 여러 일 중 가장 좋아하고 의미 있는 일은 매주 책상에 앉아 머리를 긁적이며 수없이 이 원고들을 고쳐 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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