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음악 선생님들의 책
[경향신문]
요즘은 새로운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다. 낯선 방식으로 근육을 사용하고, 그 악기만의 리듬과 호흡을 체화해보고 싶어서다. 그런데 당장 새로운 악기를 손에 쥐기 전에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과 달리, 내게 배움의 방식을 고를 자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떻게 배울지, 어떤 배움의 방식이 즐거울지, 배움을 통해 정확히 무얼 얻고 싶은지 등을 고민하며, 도대체 음악을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차분히 되돌아보고 있다.
음악을 가장 열심히 배웠던 시절은 피아노과 입시를 준비하던 10대 때였다. 분명 내 몸의 일부인데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을 야속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과묵한 선생님에게 혼날까 봐 무서워 레슨 가기를 두려워하기만 하던 시기였다. 실제 음악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 같았던 이론 공부도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음악적 배움으로 일상을 가득 채웠던 그 즈음에 나는 어떤 기쁨도 잘 누리지 못했다.
그저 멈출 수 없어서 계속했던 피아노가 흥미로워진 것은 몇몇 음악 선생님이 쓴 책 덕분이었다. 하루 대부분을 음악과 함께 보내면서 음악은 어떤 가치를 지닌 것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음악을 왜 하는지 자연스레 궁금해졌지만 당시로서는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하기 어려웠다. 긴장 가득했던 레슨 시간에 왜냐는 질문은 감히 꺼낼 수도 없었다. 그러다 읽게 된 <자기발견을 위한 피아노 연습>과 <피아노 이야기>는 음악 하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자기충족적인 시간으로 바꿔주었다. 이 책들은 연습을 ‘훈련을 통한 자기발견’의 시간으로 바라보게 하고, 음악과 삶을 서로를 비추는 거울로 삼았다. 거기엔 왜 음악을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힌트가 가득했다.
그리고 최근에 접한 두 신간은 그 오래전 변화의 순간을 다시 상기시켰다. 정경영이 쓴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생각합니다>라는 제목부터 다정한 이 책은 음악에 대한 사유를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지 친절히 안내한다. 재미난 강연록처럼 음악적 지식을 전달하는 이 책은 음악학의 드넓은 지형도를 보여주는 대신 그 세계로 향하는 구체적이고 탄탄한 진입로를 형성한다. 송은혜가 쓴 <음악의 언어>는 연주라는 섬세하고 입체적인 경험을 더욱 근사하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짧은 경험에서 보면 연주엔 강한 믿음과 선명한 상상이 필요했는데, 이 책엔 이를 지지해주는 고요하고 섬세한 언어가 흐르고 있었다. 어조는 사뭇 달랐지만 두 글 모두 독자보다는 청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아서 이 글이 ‘소리를 매개로 한 경험’에 기반한다는 사실이 생생히 다가왔다.
스스로를 ‘음악 선생’이라 칭한 이들은 오랫동안 갈고닦은 감각으로 음악적 지식을 언어화한다. 이들은 음악적 삶을 영위하고, 음악을 통해 삶의 문제를 바라본다. 일상 속 경험과 음악 사이의 친연성을 제시하고, 삶 속에서 경험한 음악을 언어로 세심히 그려낸다. 이 선생들의 책을 읽으며, 정말로 내가 바란 것은 음악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음악으로부터 배우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원활히 수행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한 발짝 떨어져서 그 음악을 사유하고, 음악 하길 희망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
배움을 앞둔 지금, 다시 한번 음악 선생들의 글을 읽으며 음악의 의미를 되돌아보면서 음악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수많은 것을 떠올려본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을 체화하는 것일 수도, 어떤 세계의 구조와 질서를 이해하는 것일 수도, 몸의 감각일 수도, 음악가의 삶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떤 배움의 가능성을 읽어내든, 그 시간이 꽤 뜻깊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다. 정경영의 표현처럼 음악의 문제는 삶의 문제와 같고, 그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삶 속에서 만나는 그 답들처럼, 틀리고 맞는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성숙한 답이 있는 문제이니 말이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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