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배운뒤 토마토-고추 직접 심어요" 생생 생태수업

이소정 기자 2021. 5. 1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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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코로나 이후 주목받는 환경교육
12일 서울 마포구 염리초등학교 운동장에서 4학년 학생들이 ‘텃밭 채소 기르기’ 수업을 듣고 있다. 염리초는 ‘식물 기르기를 통한 기후변화 대비’라는 주제 아래 학생들이 직접 방울토마토, 고추, 청경채 등을 심어 기르는 중이다.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교장선생님! 저흰 비닐봉투 필요 없어요. 화분은 그냥 손으로 들고 가면 돼요.”

서울 마포구 염리초등학교 정순자 교장은 최근 아이들에게 화분을 나눠 주다 깜짝 놀랐다. 생태교육용 화분을 아이들이 집까지 편하게 들고 갈 수 있도록 비닐봉지에 담아 줬는데 아이들이 비닐을 보고 놀라며 손으로 들고 가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12일 염리초에서 만난 김영희 교감은 “우리 학교가 실시해 온 생태교육 덕분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아이들의 몸에 이미 생태친화적 생활 습관이 배어 있었다”고 전했다.

최근 한 해가 다르게 변하는 계절별 날씨와 잦아지는 기상이변은 많은 이들에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체감시켰다. 2년째 계속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세계적인 전염병의 창궐 역시 기후위기로 인해 빈번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교육계에서는 이제라도 환경교육에 공을 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염리초가 실시하고 있는 생태교육도 이런 흐름의 일환이다.

○나와 이어진 자연, 학생 흥미도 쑥쑥

현재 염리초 3학년 학생들은 업사이클링(재활용품을 활용한 발명품 제작)을 배우고 있다. 아이들은 ‘생명 지키기’라는 주제 아래 ‘새활용(업사이클)과 재활용’을 배우며 실제 발명품 제작까지 도전한다.

업사이클링 수업은 총 16번의 수업으로 구성됐다. 사회, 과학, 미술, 음악, 국어 등 여러 과목을 융합해 16차시의 수업을 짰다. ‘업사이클링’이라는 공통의 주제 아래 모든 교과에서 환경을 배우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먼저 사회 교과과정의 일부로 ‘쓰레기는 어디로 가는가’를 배워요. 그 다음 창의적 체험활동 수업으로 ‘재활용품을 아끼는 법’을 논의하고요. 그 다음 과학과 미술 수업의 일환으로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드는 시간을 가져요. 예를 들면 택배를 주문했을 때 냉동 제품이 담겨 오는 은박지 보냉팩 있잖아요? 그걸 물병 가방에 붙여서 ‘보냉 물병가방’을 만드는 식이에요.”

음악 수업으로는 이렇게 만든 제품의 홍보송을 만들어 보고, 국어시간을 활용해 제품 설명서를 작성해 본다. 자원 재활용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전 교과를 아우르는 수업이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염리초는 ‘탐.험.대(탐구-체험-연대)’라는 슬로건 아래 학년별 교과에 맞춰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를 연계한 수업을 하고 있다. 김 교감은 “흔히들 초등학교 환경교육은 ‘식물 관찰하기’가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우린 텃밭 하나를 가꿀 때도 탐.험.대가 가능하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사회 교과에서 식물 기르기를 통한 기후변화 대비법을 탐구하죠. 그 후 아이들은 직접 텃밭에 방울토마토, 고추, 청경채를 심어요. 지식이 체험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에요.” 이렇게 아이들이 직접 기른 농작물을 집으로 가져가 가정에서도 생태교육이 연계되도록 이끈다.

○자전거로 팥빙수를? 중고교도 생태교육 ‘O.K’

생태교육은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만 가능한 게 아니다. 11일 방문한 서울 전일중에서는 중등교과 수준에 맞춘 특색 있는 생태 환경 교육을 개발해 진행하고 있다.

“자전거 바퀴를 돌려서 빙수를 만들어 본 적 있으세요?(웃음)”

이 학교 심지영 교장은 “우리 학교는 모든 교과에서 생태교육과 연계된 요소를 뽑아내 수업 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예컨대 과학 교과에서 학생들이 자전거 바퀴를 직접 돌려 생산한 에너지로 빙수를 만들어 학생들의 흥미를 극대화하면서 에너지 자원의 소중함도 깨닫게 하는 식이다.

때론 ‘이게 대체 환경과 무슨 상관인가’ 싶은 과목에서도 생태교육이 이뤄진다. 한문이 대표적이다. 이 학교 임미옥 한문 교사는 “한자가 풀, 나무 등 자연의 모습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한자와 환경의 연관성을 발견했다”며 “한자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이용해 학생들과 함께 ‘환경보호 픽토그램’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입시가 임박한 고교에서도 생태 교육이 가능할까. 서울 오산고는 서울시교육청의 생태교육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유일한 고등학교다. 이 학교 이민규 연구부장은 “기후변화로 우리의 삶이 변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만큼 기후위기에 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아이들이 기후변화를 진로와 연계해서 배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오산고에서 진행 중인 ‘기후변화×실용경제반’은 그 결과물이다. 이 연구부장은 “이 반에서는 기후변화라는 하나의 주제를 여러 교과에서 같이 접근한다”며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맞게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해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환경반 학생들이 신재생 에너지와 친환경 교통수단을 환경적 관점에서 분석하면 실용경제 학생들은 이들의 경제적 효과를 조사하는 식이다. 학생들은 구글 프레젠테이션을 활용해 파악할 점을 분업하고 다시 협업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간다.

○학교를 넘어 지역사회로 가는 환경교육

서울 용산구 오산고 학생들이 산책을 하며 지역사회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활동을 하는 모습. 오산고는 학생들에게 친환경 생활 습관을 만들어 주기 위해 생태 전환 교육을 진행 중이다. 오산고 제공
“지난해까지만 해도 학교 앞에 출근길에 아이들을 바래다주는 학부모님들 차가 엄청 많았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등굣길 풍경 자체가 달라졌어요. 아이들과 함께 ‘걸어서 등교하기’ 캠페인을 하고 있거든요. 작년과 비교하면 자가용으로 등교하는 학생이 70% 이하예요. 학부모님들이 동참해주신 덕분이죠.”(염리초 김 교감)

학교에서 환경교육을 잘하면 가정을 넘어 지역사회로까지 그 효과를 이어갈 수 있다. 염리초는 가정통신문을 통해 걸어서 등교하기 캠페인을 설명했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교 밖에서도 생태교육의 참여자가 됐다.

고학년 학생들은 지역 생태계에도 관심을 갖는다. 전일중 학생인 유세인 양(13)은 “학교에서 하고 있는 생태관찰교실 덕분에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던 주변 풍경을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됐다”며 “최근엔 등굣길 나무들의 잎 크기나 모양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 생태 관찰 결과를 발표하거든요. 그래서 길고양이를 관찰했는데 고양이들이 피부병으로 죽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전일중 임규연 양)

오산고 학생들은 학교 바로 앞 한강을 산책하며 지역사회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plogging)’을 하고 있다. 박세민 교사는 “개학 이후 이달까지 약 140명의 학생이 플로깅 봉사활동에 참여했다”며 “코로나19 상황이다 보니 2, 3명씩 모여서 지역사회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데, 그렇게 찍은 인증샷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한다”고 전했다.

오산고는 향후 강바람이 많이 부는 지리적 특징을 활용해 풍력발전기도 설치할 계획이다. 박 교사는 “이렇게 생산한 전력을 아이들의 휴대전화 충전에 활용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선 학교 역량에 맡긴 환경교육… “당국, 전문교사 늘리고 콘텐츠 제공해야”

[위클리 리포트]지역사회와 협력도 쉽지않아… 민관학 공조 체계 만들어야

환경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그에 비해 학교 현장의 환경교육 여건은 여전히 낙후한 게 사실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교과와 연계된 환경교육 과정 자체가 각 학교의 개발 역량에 맡겨져 있다는 것. 이자혜 서울 염리초교 연구부장은 “아무리 역량 있는 교사더라도 환경 분야 전문가가 아닌 이상 콘텐츠 개발에 한계가 있다”며 “교육청 차원에서 지속 가능한 목표에 따른 활동 사례 같은 게 제공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교육 전문가의 수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올해 13년 만에 8명의 환경교사가 신규 임용됐다. 하지만 여전히 환경교사는 전국 33명에 불과하다. 교과 연계형 환경교육을 진행해도 전문적인 환경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교사의 수 자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교들은 “환경 관련 지식을 전달해 줄 수 있는 강사를 섭외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환경을 전공한 교수님들께 초등생 수업을 진행해 달라고 하는 게 무리가 있어요. 지식이 풍부해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수업을 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시민단체에 수업을 맡기는 것도 뭔가 부족해요. 예를 들어 쓰레기 분리배출을 얘기할 때 학교에서 필요한 교육은 ‘분리배출이 안 돼서 쓰레기양이 늘어났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처럼 생각의 발전을 자극하는 교육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시민단체에서는 무조건 ‘분리배출을 합시다’라고 운동적인 측면을 강조하니까요.”(대전 지역 한 초등학교 교사)

생태교육 진행 과정에서 지역사회와 협력하는 것도 간단치 않다. 민관학이 환경교육을 위해 협력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지역사회 연계 수업을 하려면 공문을 보내고 협조를 구하는 등 교사들의 업무 부담이 적지 않다. 박세민 서울 오산고 교사는 “이전보단 나아졌지만 아직도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민관학 협력 교육 체계가 마련되면 한결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교육 관계자들은 대만의 사례가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대만은 2018 개정 교육과정에서 환경교육을 ‘우선 주제’로 선정했다. 환경윤리, 지속가능발전, 기후변화 등 환경교육의 5가지 핵심 주제를 정하고 학교급별 교육과정도 개발했다. 다양한 교과와 환경교육이 연계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나선 것이다. 학교에 ‘환경 코디네이터’가 있어 교내 환경교육과 더불어 학교와 지역사회의 소통 역할도 담당한다. 임호영 전 환경교육학과대학생연합회장은 “코디네이터는 교과 지식 전달뿐 아니라 지역과의 소통도 담당해 환경교육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다”고 전했다.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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