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청년에 대한 미안함을 상품화 말라

강수돌 전 고려대 교수·세종환경연합 난개발방지특위 위원장 2021. 5. 1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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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4월 재·보궐 선거에서 2030세대는 여야 모두에게 ‘태풍의 눈’이 되어 매섭게 다가섰다. 이제 정치 거물급들, 잠정적인 대선후보들도 청년들에게 ‘미안하다’며 정중히 경청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일견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런 노력들은 솔직히 말해 청년에 대한 미안함을 상품화하는 것이다. 돈으로 ‘표심’을 사려 하니까. 그러나 좀 깊이 보면, 2030세대는 앞으로 20~30년 뒤 이 사회를 이끌 주역들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이 실망과 좌절을 넘어 희망과 영감으로 가슴 설레게 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강수돌전 고려대 교수·세종환경연합 난개발방지특위 위원장

문제는 ‘어떻게?’다. 먼저 확인할 것은,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미끼나 허위 매물을 빼면 ‘좋고도 값싼’ 상품이 없듯, 일반 사회에서도 허위·미끼 공약을 빼면 ‘좋고도 쉬운’ 해법은 없다. 2030세대에게 솔직히 말하면, 현재의 상품·화폐·권력 물신주의(物神主義) 사회에서는 모두가 원하는 공정과 정의를 현실적으로 구현할 수가 없다. 만일 있다고 하면 오히려 거짓말이다!

왜 그런가. 원래 물신주의란 사람들이 친밀한 인간관계 대신 특정 사물을 중시하고 신처럼 숭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품·화폐·권력 물신주의 사회란 요컨대 더 많은 상품, 화폐, 권력을 갖고자 목매는 사회다. 그래야 형식적이나마 ‘사람’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이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즉 민본(民本)이 아니라 자본(資本)의 사회가 되다 보니, 이제는 존재 자체를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돈과 권력을 쥐어야 한다. 화폐 가치가 오늘날 모든 가치관의 왕이 된 배경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오늘날 모든 불행의 뿌리요, 뚜껑이 열려버린 ‘판도라 상자’다. 그러나 그 상자 밑바닥엔 간신히 ‘희망’만이 남아있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좋지만 힘든’ 해법이라도 있는가? 있다! 그걸 현실로 만들 방법은 없는가? 있다! 다만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은 현재의 상품·화폐 물신주의를 타파하고 모든 기득권을 혁파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제로 베이스(원점)’에서 새 출발하는 것이다. 그 원점이란, 개인적으로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 空手去)’, 사회적으로는 ‘만인만물(萬人萬物)’, 즉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란 철학이다.

현실을 보라. 천문학적 재산을 가진 재벌 회장조차 100년을 넘기지 못하고 빈손으로 간다. 태어날 때도 빈손이었다. 부모 잘 만나 평생 돈방석에 앉았을 따름이다. 그러나 99%의 보통사람들은 그럴 기회도 없다. 평생 허덕이다 겨우 자식들 공부 좀 시켜 놓고 떠난다. 역시 빈손이다. 삶의 과정은 불평등이되, 그 시작과 종점은 빈부를 막론하고 평등하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삶의 과정들 역시 평등하기를 바란다면, 불평등을 초래하는 온갖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내고 스스로도 특혜나 특권, 기득권에의 강박적 집착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나아가 세계, 아니 우주의 눈으로 보면, 이 지구 위에 사는 인류는 같은 배를 탄 승객에 불과하다. ‘지구호’ 배의 항해 목적은 행복이다. 전 인류가 함께 행복하려면 핵이나 전쟁 없이 평화와 우애를 나누면 된다. 국익 개념을 초월해야 하고, 경쟁을 지양해야 한다. 우애로 사는 인류에게는 만인만물, 즉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란 철학이 자연스럽다. 국경이나 소유권 개념은 허망한 것일 뿐! 이 철학 아래서는 공기나 땅, 바다처럼 만물은 모두의 것이며, 모든 이는 모든 것을 고맙게 누리다가 후손에게 물려주고 갈 뿐이다.

이제 공수래공수거, 그리고 만인만물 원리를 우리의 2030세대가 처한 현실에 적용해 시급한 미래지향적 과제를 설정하면 어떨까. 첫째, 취업전쟁을 그만하고 각자 하고 싶은 일 하면서도 생계 걱정하지 않는 사회를 만든다. 둘째, 집이나 땅을 재산증식 도구가 아니라 누구나 소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보금자리로 재설정하고 인간적 필요에 맞게 빌려 쓴다. 셋째, 육아와 교육을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온 사회가 같이 해결하는 것으로, 또 교육의 목적을 출세가 아닌 사회헌신으로 설정한다. 넷째, 중요한 사회적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만민공동회나 시민의회와 같은, 숙의 민주주의 방식을 활용한다.

물론 언론개혁이나 검찰개혁이 지지부진한 조건에서 이런 식의 변화를 곧장 이루긴 어렵다. 그래서 건전한 여론 형성과 올바른 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라도 언론개혁과 검찰개혁이 급선무다. 거듭 ‘현실’ 타령만 하면서 진정한 변화를 이루지 못하면, 결국은 상품·화폐·권력 물신의 영원한 노예가 된다. 청년들이 원하는 공정과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물신에서 해방돼야 한다.

강수돌 전 고려대 교수·세종환경연합 난개발방지특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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