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프리즘] 문제 소설 폐기, 성급하지 않나
사실관계 확인할 여유 없나
지난해 소설가 김봉곤의 추락에 필요한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그의 단편 ‘그런 생활’로 인해 민감한 사생활이 고스란히 노출됐다는 여성의 트위터 폭로가 올라온 게 7월 10일. 김봉곤이 “세심하지 못했다”며 사과했지만, 17일 또 다른 사생활 침해 주장이, 이번엔 한 남성에 의해 제기되자 작가와 출판사가 백기를 들었다. 문제의 소설집 『여름, 스피드』는 현재 서점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생활’이 수록됐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상 문학동네)은 이 작품을 빼고 재출간돼 다른 작가들의 여섯 작품만 실려 있다.
김세희 ‘사건’은 지난달 23일 불거졌다. (나쁜 일도 학습되는 걸까. 김봉곤 건에 비해 김세희 건은 왠지 파장이 작게 느껴진다) 이번에도 트위터가 문제 제기 창구였다. 작가의 18년 친구라고 밝힌 여성이 김세희의 장편소설 『항구의 사랑』(민음사) 때문에 원치 않는 커밍아웃을 했다는 주장의 글을 올리면서다. 소설에 나오는 레즈비언 인물들을 주변에서 자기로 알아본다는 것. 여성은 “차마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 “두려움과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출판사가 25일, 작가가 26일 잇따라 맞대응 방침을 밝히며 사건은 작가·출판사-피해 주장 여성 간의 미지근한 공방으로 흐르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13일 출판사가 소설의 일시 판매중단 방침을 밝혀 일단락된 느낌이다. 출판사는 작가가 먼저 판매중단을 요청했다고 했다. 판매 중단 기간과 관련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라는 모호한 단서를 붙였다. 일의 해결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당초 작가는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심경을 바꿨다. 그 이유에 대해 아직까지 말을 아끼고 있다. 결국 자신에게 쏟아지는 각종 압박, 출판사 전체에 미칠 악영향을 감안해 대치선 바깥으로 물러섰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문학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는 현실은 이제는 새로울 것도 없다. 창작이라는 일종의 정신노동을 신성시한 결과 작가들의 크고 작은 일탈에 질끈 눈 감던 관행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아무리 훌륭한 소설이라도 그 작품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문제 삼아야 한다는 게 새로운 시대의 창작 윤리다. 그렇더라도 지난해 김봉곤, 올해 김세희를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무엇보다 속도가 문제인 것 같다. 문제가 불거져 이 시대 공론장인 인터넷 민심을 거스르기만 하면 일주일 만에, 20일 만에 소설책이 사라진다. 작가에게는 일종의 죽음과 같은 상황이다. 미학적 죽음 말이다.
비슷하다고 했지만 김봉곤과 김세희는 약간 다르다. 김봉곤은 타인의 사생활을 본인 동의 없이 ‘복붙한’ 물증, 카톡이 존재한다. 하지만 김세희의 경우 피해 주장 여성과 작가의 입장이 엇갈린다. 소설 『항구의 사랑』에서 문제의 인물 ‘인희’와 ‘H’는 소설 전개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주인공보다는 주변 인물에 가깝다. “부분부분 토막 내어져 알뜰하게 사용됐다”는 게 여성의 피해 주장인데, 실제로 그런지 판단 내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문제다. 한 문학평론가의 의견도 비슷했다. “사실관계 확인이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독자들의 분노가 너무 빨리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든다.” 숨죽이는 혹은 침묵하는 다수의 생각이 궁금하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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