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공론장 복원 묘책, 26명의 지혜

신준봉 2021. 5. 15.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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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오염
광장의 오염
제임스 호건 지음
김재경 옮김
두리반

책 제목의 ‘광장’은 공론장을 뜻한다. 시민들의 공적인 토론 공간 말이다. 이게 오염되거나 무너져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건데, 이런 현상은 저자가 활동하는 북미까지 갈 것도 없다. 매일매일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니 말이다.

저자는 프로파간다(선전선동)와 유사과학, 불순한 의도가 깔린 의혹과 논쟁이 어떻게 대중의 관심을 차단해 공공정책 수립을 방해하는지를 오래전부터 주의 깊게 지켜봤다고 밝힌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에 맞서 2009년 『Climate Cover-Up(기후 은폐 공작)』을 출간한 데 이어, 공적인 사안 전체로 전선을 확대한 게 캐나다에서 2016년에 출간한 이 책이다. (영어 원제: I’m Right and You’re an Idiot. 2nd Edition 2019년)

전선 확대라고 했지만, 책 내용이나 저자의 태도가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는 싸움도 불사하겠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저자는 이를테면 홍보의 달인이다. 수십 년간 PR 전문가로 노사갈등, 대형 은행사기, 폭발사고, 섹스 스캔들 등 소통 난제들을 다뤘다. 노련하고 명쾌하게, 민주사회의 공론장이 어떻게 무너져 공동체 자체가 갈가리 찢기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복원 방법은 뭔지를 따진다. 소통의 달인답게 정치학자·철학자·도덕심리학자·미디어연구자·종교인 등 26명을 만나 그들의 견해와 목소리를 정리한 인터뷰집이다. 26명 안에는 프레임 이론으로 유명한 인지과학자 조지 레이코프, 언어학자 놈 촘스키, 달라이 라마 같은 종교인도 있다.

회의론자들은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린란드의 빙산들. [AP=연합뉴스]
하버드대에서 공적 갈등 해결 방법 등을 연구한 대니얼 양켈로비치는 오늘날 광장의 붕괴가 대중의 공공 문제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사람들은 의사소통의 원리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미디어가 자의적으로 정한 규칙에 따라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에서 윤리적 리더십을 가르치는 조너선 하이트는 인간이 부족생활에서 진화해왔기 때문에 무리 지어 뭉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폭력적 갈등상태에 빠지기 쉽다고 진단한다. 그 바탕에 깔린 가치관은 도덕적 성격을 띤다. 공정/부정, 자유/억압, 이런 식의 도덕적 잣대를 가동해 피아를 구분한다는 얘기다. 여기서부터가 수상쩍은데, 하이트는 해법으로 그런 ‘도덕 매트릭스(moral matrix)’에서 빠져나올 것을 권한다. 선불교적인 접근법이다.

프랑스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주장이 상식적인 통찰에서 가장 멀리 나간 것 같다. 어떤 사안에 대한 투명하고 확고부동한 사실은 너무나 희귀해졌고, 대중에게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우니 이제는 ‘진실’을 버리고 서로의 ‘주장’을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앨 고어의 환경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에서처럼 기후 재앙이 불가피하거나 통제 불능이라고 겁주는 것은 정치적으로 현명한 전략이 아니라는 거다. ‘진실이라는 개념’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라투르의 주장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라투르가 기후변화 회의론자는 아닐 것이다. 기후변화는 그에게 진실이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기후변화 회의론자에게는 회의론이 진실일 텐데, 진실을 외면하는 양측의 정치적 타협은 미봉책인 건 아닌가. 우리도, 그러니까기후변화론자도,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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