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꿈에서 만나요

남상훈 2021. 5. 14.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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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 직후 꿈과 현실의 경계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아직도 꿈속에 있는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덩달아 잠에서 깬 아이가 옆에서 이유를 물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아니라 꿈과 꿈의 경계가 모호할 수도 있나.

만약 정말로 현실에서뿐 아니라 꿈에서도 나와 타인이 같은 시간대에 존재할 수 있다면, 그러면 같은 공간에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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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 직후 꿈과 현실의 경계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내가 아직도 꿈속에 있는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덩달아 잠에서 깬 아이가 옆에서 이유를 물었다. 나는 꿈을 꾸었노라 했다. 아이가 어떤 꿈이었느냐 다시 물었다.

나는 바다 한복판 외딴섬에 있었다. 혼자였고 한낮이었다. 섬 곳곳을 돌아다니다 웬 야구장을 발견했다. 동서남북 출입문이 모두 봉쇄된 상태였다. 구장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러다 나무 그늘에 가려진, 반쯤 열려 있는 쪽문을 찾았다. 그리로 슬쩍 들어갔다. 텅 빈 관중석과 잘 관리된 잔디밭이 펼쳐진 그라운드가 시야 가득 들어왔다. 멀리 전광판 뒤로 바다인지 하늘인지 모를 푸른 배경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바다 한복판 야구장이라. 이곳에서 홈런을 치면 공이 담장을 넘어 바다에 퐁 빠지겠구나 생각하며 그라운드로 들어섰다. 홈에서 1루까지 걸었다. 1루부터는 달렸다. 2루, 3루까지 달리고 3루부터는 날았다. 날아서 홈에 착지한 다음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잔디가 폭신폭신했다. 사방에서 향긋한 흙냄새가 올라왔다. 눈을 감았다. 온몸으로 햇빛을 받고 있으니 솔솔 잠이 왔다. 안 되는데. 낯선 곳에서 자면 안 되는데.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잠들었던가. 요란한 알람 소리에 깼고, 아이가 옆에서 잠 덜 깬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왜 이곳이 야구장이 아닌가 싶어 어리둥절해 있는 상태라고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실은 자신도 꿈을 꾸었노라 했다. 그래? 어떤 꿈인데? 아이는 진지했다. 내가 이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괴물이 나타났어. 머리에 커다란 뿔이 달려 있고 눈은 시뻘겋고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고 이빨과 손톱이 아주 뾰족했어. 나는 재빨리 문 뒤에 숨었어. 괴물이 이 방으로 들어오더니 나를 막 찾았어. 너무 무서웠어. 그 대목에서 나는 이야기를 끊었다. 근데 엄마는? 엄마는 집에 없었어? 그러자 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대꾸했다. 엄마는 야구장에 있었잖아.

아, 하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이의 꿈과 나의 꿈이 연결되어 있었나. 꿈과 현실의 경계가 아니라 꿈과 꿈의 경계가 모호할 수도 있나. 만약 정말로 현실에서뿐 아니라 꿈에서도 나와 타인이 같은 시간대에 존재할 수 있다면, 그러면 같은 공간에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머리가 아픈 게 아니라 어쩐지 머리가 점점 맑아지는 것 같았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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