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파탄 국가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 [책과 삶]

선명수 기자 2021. 5. 14.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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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지음·구유 옮김
은행나무 | 332쪽 | 1만5000원

“출구가 없던 도시에서, 우리는 죽을 자리를 두고 싸웠다.”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의 <스페인 여자의 딸>은 한때 ‘석유 부국’이었으나 국제유가 폭락과 하이퍼 인플레이션 등 경제 파탄으로 국민들의 ‘엑소더스’ 현상까지 벌어진 베네수엘라의 혼란상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사는 서른여덟살 여성 아델라이다가 엄마의 장례를 치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를 잃고, 이제 아델라이다는 폭력이 일상이 된 무정부 상태의 도시에서 홀로 살아가야 한다. “이제 엄마는 다른 시제로만 존재하리란 사실, 그게 현실이었다. (…) 죽어가던 그 도시에서, 우리는 전부 잃어버렸다. 현재시제의 단어들까지도.”

장례를 마친 뒤 돌아온 아파트는 이른바 ‘보안관’ 무리에게 점거당한 상태다. 이들은 공포정치를 자행하는 정부에 충성하는 대가로 막강한 권력과 이득을 취하는 집단이다. 이웃집 문을 두드려 보지만 아무런 답도 없다.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가 보니, ‘스페인 여자의 딸’이라 불리던 이웃 여자는 이미 사망한 상태다. 탁자 위엔 이웃 여자에게 스페인 여권 발급이 허가됐다는 내용의 우편물이 놓여 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절대적 빈곤, 국가적 폭력이 되풀이되는 도시를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제 단 하나뿐이다. 아델라이다는 살기 위해 ‘스페인 여자의 딸’이 되기로 한다.

“바다에 얽힌 이야기란 모름지기 정치적이며 우리는 다만 땅을 찾아 헤매는 파편들이므로.” 보르고는 책머리에 이렇게 썼다. 그는 소설 속 인물과 마찬가지로 베네수엘라를 떠났다고 한다. 출간 전 원고 상태인 첫 소설이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주목받아 22개국에 판권이 팔리는 등 화제가 됐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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