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하던 사람을 내 이웃으로..편견 허무는 방법은 '만남'뿐 [책과 삶]
[경향신문]
혐오 없는 삶
바스티안 베르브너 지음·이승희 옮김
판미동 | 312쪽 | 1만7000원
독일 함부르크에 사는 하랄트 헤르메스는 고향으로 밀려드는 난민들이 달갑지 않았다. 달갑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보기만 해도 신경질이 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쓰레기더미를 뒤적거리는 집시들을 보고 자랐다. 은퇴 후 집 위층에 집시들이 이사 왔을 땐, 자신의 평온한 노후가 엉망진창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베란다로 떨어지던 물이 그 전조 같았다.
하랄트의 아내는 항의하기 위해 윗집으로 올라간다. 젖은 기저귀가 널린 베란다, 세탁기도 건조기도 없는 욕실, 서툰 독일어로 사과하는 아이 엄마…. 단박에 모든 상황을 이해한다. 과거 자신이 그러했듯, 이 젊은 부부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려 분투하고 있었다. 그렇게 ‘집시들’은 ‘사람들’이 되고 로버트와 로시라는 ‘이름들’이 된다. 몇년 전이라면 난민 추방 정책을 지지했을 하랄트 부부는 추방 위기인 로버트 부부 신원보증서를 써줄 만큼 각별한 사이가 된다.
일단 만나기만 하면 혐오와 편견은 자연스레 사라질까. 이 책의 진가는 그렇게 단순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데 있다. 하랄트는 로버트 가족과 각별한 사이가 됐지만, 평생 가지고 있던 롬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저자는 ‘혐오와 편견을 허무는 방법은 만남뿐’이라는 믿음을 고수한다. 자신의 경험을 예외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구성원을 만나야 하고, 이런 만남 기회가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제도화된 접촉 수단으로써 언론의 역할을 강조한다.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 편집장인 그는 함부르크의 연립주택단지, 덴마크의 경찰서, 아일랜드 더블린 중심가에서 난민·나치주의자·호모포비아를 만나 책을 썼다. 언론의 책임을 다하려는 저자의 방대한 취재가 돋보인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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