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별을 딴 동료의 첫 굿바이, 인삼신기가 김태술에게

김용호 2021. 5. 1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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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김용호 기자] 원조 인삼신기 멤버에서 전해진 첫 은퇴 소식. 이토록 더 아쉬울 수 있을까.

김태술이 지난 13일 원주 DB의 보도자료를 통해 현역 은퇴를 공식화했다. 지난 3월 28일, 김태술은 안양 KGC인삼공사와의 경기를 치른 이후 일찍이 은퇴를 시사했던 바 있다. 2020-2021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이 된 그는 결국 주변의 짙은 아쉬움에도 번복 없이 유니폼을 내려놓기로 했다.

2007-2008시즌 프로에 데뷔해 12시즌을 뛴 김태술. NBA 레전드 제이슨 키드의 이름을 따 ‘매직키드’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로 센세이션한 플레이를 펼쳤던 그는 농구 인생에 수많은 하이라이트를 남겼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KGC인삼공사 소속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경험했던 2011-2012시즌일 것이다. 당시 김태술을 포함해 우승의 주역이었던 양희종, 이정현, 오세근, 박찬희는 팬들에게 ‘인삼신기’로 불렸다. 2000년대 국내 아이돌 인기의 중심이었던 동방신기와 구단의 이름을 합쳐 만들어진 의미 있는 별명이었다. 그만큼 다섯 명의 선수는 각자의 컬러를 뽐내며 코트를 휘저었고, 훤칠한 외모로 팬들의 마음까지 훔쳤다. 이들이 일궈낸 우승은 리그 출범 이후 KGC인삼공사의 첫 우승이었으며, 5명에게도 첫 우승이었다.

영광의 순간을 지나 5명은 각기 다른 팀으로 흩어졌지만, 이들 모두 농구 인생에 있어서 인삼신기로 불렸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 멤버 중 김태술이 가장 먼저 은퇴를 선언하면서 인삼신기는 더욱 추억이 됐다. 김태술이 은퇴를 공식화한 그 날, 코트에 남은 인삼신기 멤버들은 진심 어린 편지를 전해왔다.

From. 양희종
나에게는 KBL 최고의 포인트가드였다. 친구이지만, 존경할 만큼 좋은 플레이를 많이 보여줘서 태술이에게 농구를 배우기도 했다. 김태술이라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친구로서의 김태술은 정말 유쾌하고, 때로는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리고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벗이었다.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전부 다 말할 순 없겠지만, 그냥 Good Man이다(웃음). 친구를 먼저 보내는 입장에서 여러 감정도 교차한다. 서운하다고 해야 할까. 오묘한 기분인데, 가슴 속에 뭔가 모를 답답함도 느껴지고, 남 일 같지 않다. 기회가 된다면 KGC인삼공사에 돌아와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었는데, 워낙 태술이의 의지가 강하더라.

태술이가 KGC인삼공사 전을 마지막으로 뛸 때도 플레이가 좋았다. 그때 내가 부상이라 원주에 가지 못해서 따로 연락했는데, 정이 있는 팀과 마지막으로 뛰고 싶다고 하더라. 너무 마음 아픈 말이었다. 내가 경기를 뛰지 못하더라도 태술이의 마지막 경기에 갔어야 했는데….

비록 코트는 떠나지만, 워낙 영리하고 다재다능한 친구라 제2의 인생도 훌륭하게 살아갈 거라 믿는다. 친구로서 죽을 때까지 함께 웃으면서 재미있게 만나자고 말하고 싶다. 좋은 벗으로 영원히 남았으면 좋겠다.

From. 박찬희
함께 우승할 당시의 태술이 형은 자기 목표가 굉장히 뚜렷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때 태술이 형도 우여곡절 끝에 KGC인삼공사로 이적하면서 정말 독하게 농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코트에서 굉장히 냉정했고, 경기장에서 팀을 이끌 수 있는 모든 걸 가진 선수였다.

은퇴 소식을 들었을 땐 기분이 이상했다. 형에게 연락해서 고생하셨다고 말하는데 기분이 정말 이상하더라. 모르겠다 정말…,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싶다.

태술이 형과 동시대에 뛰었던 선수로서 옆에서 정말 많이 보고 배웠다. 좋았던 기억, 힘들었던 기억 모두 많을 텐데 멋진 농구 인생을 보여주셔서 고맙다. 태술이 형이기에 제2의 인생도 더 기대된다. 많이 응원하겠다.

From. 이정현
태술이 형은 내 롤 모델이었다. 감독님과 코치님들에게도 농구를 배우지만, 내 농구 스타일을 정립함에 있어서 태술이 형이 스승 같은 존재였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걸 가진 선수였다. 솔직히 내가 신인 때는 그저 공격수일 뿐이었는데, 태술이 형과 함께 뛰면서 가드다운 모습이 생긴 것 같다. 항상 배울 게 많은 형이었다.

사석에서도 형을 자주 만나는데, 올 시즌이 마지막일 거란 얘기를 미리 들었다. 그때는 형한테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코트에서 더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근데, 태술이 형이 생각해 놓은 게 있더라. 지금은 다른 팀이지만, 약 10년 전에 우승했을 때부터 슬럼프가 올 때마다 가장 많이 의지하고, 대화도 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그런 형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아쉽고, 허탈하다.

항상 태술이 형은 재능보다 더 큰 노력을 했던 선수였다. 어쨌든 이렇게 은퇴하게 됐으니 제2의 인생을 응원하겠다. 농구계는 떠나지 말고 어떤 자리에서든 꼭 다시 봤으면 좋겠다. 정말 고생 많으셨고,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줘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From. 오세근
태술이 형과 3살 차이인데, 내가 프로에 왔을 때 가장 연차가 가까운 선배가 태술이 형과 희종이 형이었다. (김)성철이 형, (은)희석이 형에게도 의지를 많이 했지만, 내 속을 더 꺼내놨던 형이 태술이 형이었다. 또 가드와 센터의 관계이다 보니 손발을 맞추고 얘기할 상황도 많았다. 내가 함께 뛰어본 가드 중에서는 단연 최고였다.

원주에서 형이 마지막 경기를 뛰던 날 은퇴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정말로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그땐 ‘에이, 설마’하며 넘겼는데, 진짜 마지막이었다. 태술이 형이 그날 경기에서도 좋은 활약을 한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형이 더 후회 없이 떠나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동안 지켜본 태술이 형은 열려있는 사람이다. 농구에 국한되지 않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하고, 또 뭘 하더라도 잘 할 수 있는 형이다. 혹여 농구장이 아니더라도 형과 계속 자주 연락하고 많이 응원할 거다.

From. 김태술 To. 인삼신기
농구도 잘하고, 정말 멋졌던 내 동료들이다. 내 농구 인생에 멋진 한 페이지를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웠고, 영광이었다. 아직도 희종이가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 결승골을 넣고 우승을 했을 때가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친구들 덕분에 내 농구도 많이 발전했다. 덕분에 선수로서 좋은 커리어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인삼신기 멤버 중에 가장 먼저 은퇴하게 됐는데, 남은 선수들은 은퇴할 때까지 부상 없이 더 멋진 커리어를 쌓길 바란다. 은퇴 선배로서 더 많이 응원하겠다.

# 사진_ 점프볼 DB, KBL 제공

점프볼 / 김용호 기자 kk2539@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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