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노래 골머리' 라디오 피디에게 추천 한 곡만 해줍쇼

한겨레 2021. 5. 1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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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5월 가정의달 노래
산울림. <한겨레> 자료사진

미국 태생 영국 시인 엘리엇은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문학작품을 통틀어도 이만큼 유명한 구절은 별로 없는데, 정작 이 구절이 포함된 시 ‘황무지’를 제대로 읽은 사람도 역시 별로 없다. 문학 강좌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길. 오늘 글에서는 4월이 아닌 5월이, 특히 라디오 피디들에게 잔인한 이유로 글을 시작해본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함께 있는 5월에는 유난히 가족과 관련한 노래를 많이 선곡해야 한다. 남녀 간의 사랑 타령이 태반인 가요 중에서 가족을 소재로 한 노래가 그리 많지 않다. 바로 앞뒤로 붙은 다른 프로그램과 겹치지 않게, 또 예전에 틀었던 노래까지 피하다 보면 선곡이 골치 아파진다. 시대별로 대표적인 가족 노래를 뽑아서 가사를 살펴보자. 우리 삶의 풍경이 노랫말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으니.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너무 멀어지니까, 먼저 산울림의 ‘어머니와 고등어’(1987)를 선곡해본다. 가사는 이렇다.

“어머니는 고등어를 절여놓고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구이를 먹을 수 있네/ 나는 참 바보다 엄마만 봐도 봐도 좋은걸”

가수이자 시인인 김창완의 노랫말은 늘 쉽고 담백하면서도 풍부한 감성을 담고 있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문을 열어본 냉장고 안에서 절인 고등어를 발견하고 다음날의 고등어구이를 떠올리는 장면, 아마도 10초쯤 되는 짧은 순간을 통해 어느 가정집의 흐뭇한 온기를 전해준다. 왠지 이 집에는 넓지 않은 마루에 작은 브라운관 티브이도 하나 놓여 있을 것 같다. 10년쯤 지나 1996년에는 이승환이 ‘가족’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발표했다.

“어떡해야 내가 부모님의 마음에 들 수가 있을지 모르고/ 사랑하는 나의 마음들을 그냥 말하고 싶지만 어색하기만 하죠/ 사랑해요 우리/ 고마워요 모두/ 지금껏 날 지켜준 사랑”

이 노래는 좀 더 전면적인 방식으로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늦은 밤에 학원이나 직장에서 돌아온 자식의 독백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여러 형제와 부모가 함께 사는 대가족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지오디의 노래 ‘어머님께’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희생적인 어머니와 사고뭉치 아들 둘이서 고된 세상살이를 견뎌내다가 겨우 모자 둘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딴 식당을 차리고 개업식을 한 다음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비극을 담고 있다. 가족 노래이기도 하지만 짜장면 하면 떠오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슬프게도, 어머니는 왜 그렇게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는지.

2000년대에는 아버지 노래의 대표 주자 두 곡이 연이어 나온다. 제목은 같지만 접근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먼저 이승기와 싸이가 함께한 ‘아버지’는 희생과 고단함으로 점철된 아버지의 삶을 돌아보며 손을 잡아주는 아들의 고백이다.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더 이상 쓸쓸해하지 마요/ 이제 나와 같이 가요”

인순이의 ‘아버지’는 좀 더 감정선이 세밀하다. 너무 일찍 떠나버린 아버지와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는 동시에, 그를 미워하는 딸의 마음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샴쌍둥이처럼 떨어지지 못하고 등을 맞댄 원망과 사랑의 양가적 감정이라고 하겠다.

자이언티 <양화대교> 표지.

가장 최근에 등장한 ‘국민 가족송’이라고 할 만한 노래는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다. 화자는 전화해서 어디냐고 물어볼 때면 늘 “응, 양화대교”라고 대답하던 택시 기사 아빠와 엄마, 그리고 두 누이와 함께 가난하지만 정겹게 살았던 시절을 회상한다.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되어 가장 역할을 하게 된 처지를 바로 그 양화대교 위에서 노래한다. 그저 아프지 말고 우리 가족 행복하자는 소망을 되뇐다.

가정의 달 5월을 앞두고 여성가족부가 ‘제4차 건강가정 기본계획’을 공개했다. 비혼 동거 커플이나 위탁 가족도 법률상 가족으로 인정하고, 자녀의 성을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의 성으로도 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아이를 혼자 키우는 미혼부도 단독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최근에 뜨거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비혼 단독 출산에 관해서도 곧 논의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정책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필자는 대환영하지만 아마도 적지 않은 논란이 뒤따를 것이다.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격한 반대의 목소리가 이미 여기저기서 나온다. 이런 문제는 사회 구성원의 합의가 필요하므로 당연히 이런저런 이견을 조율해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다만 이것만은 다들 상기했으면 좋겠다. 모든 남녀가 나이가 차면 독점적인 부부관계를 통해 출산해 아이를 기르는 식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가족의 모습은 놀라울 만큼 최근에야 갖춰졌다. 가족의 형태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늘 변해왔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위에서 소개한 노래처럼 엄마·아빠·누나·오빠가 같이 사는 가정보다 고양이와 나 둘이 사는 가정이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당위란 시대의 반영일 뿐, 개인의 행복을 침범하는 무례한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독자께 당부 한 말씀. 5월에 틀 만한 가족 노래 추천 부탁드립니다. 강산에의 ‘라구요’, 라디의 ‘엄마’, 김진호의 ‘가족사진’, 노라조의 ‘형’…. 또 뭐가 있을까요? 한 곡 줍쇼.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시사특공대>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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