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무너진 '사제관계' ..때리는 학생, 맞는 교사

정수지 2021. 5. 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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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법으로 인해 폭력을 견뎌야 하는 스웨덴 교사들

선생님을 향한 학생의 폭력과 폭언 대다수가 초등학교에서 일어나

‘교사 안전 보호망’ 대책 마련이 시급

최근 몇 년간 스웨덴에서 교사를 향한 위협과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

작년 9월 스웨덴 제2의 도시인 예테보리(Göteborg) 북동부 지역에 위치한 뉘톨프스콜란(Nytorpsskolan)에서 교사와 교직원들이 10명의 초·중학생들에게 심각한 폭력과 위협에 시달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학생들의 싸움을 말리려는 교사의 팔을 비틀고, 침을 뱉고 해고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도를 넘어선 행동이었다.

스웨덴 국가 교육청(skolverket)이 2019년 4월에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교사 4명 중 1명이 학교에서 위협과 폭력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2019년 스웨덴 전국 교사 연합(Lärarnas Riksförbund)이 소속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16%가 폭력과 모욕으로 인해 교육 환경에 문제를 느꼈다고 답했다.

폭력을 견뎌야 하는 교사들, 대다수는 초등학교에서 일어나

스웨덴은 1958년 1월 1일부터 학교법(skolag)을 시행하며 초등학교에서 체벌을 금지했다. 1979년에는 세계 최초로 가정 내에서 아동 체벌을 전면 금지했다. 이에 스웨덴에서는 장소 불문하고 아이에게 신체적, 심리적 폭력은 물론이고 그 어떤 비슷한 행위도 할 수 없다.

지난 70년간 지속해온 아동 체벌 금지법으로 인해 스웨덴 아이들은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받으며 양육되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누린다.

이와 같은 노력은 국제적인 아동보호 본보기로도 비쳐왔으며, 스웨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이를 때릴 수 없다’라는 사실을 알 정도로 체벌 금지는 강력한 사회적 약속이 돼 있다.

반면 강력한 아동 보호법으로 인해 아동 인권은 강화됐지만 정작 학교에서는 학생 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사를 향한 폭력, 폭언도 그냥 참고 견딜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스웨덴 노동 안정청(Arbetsmiljöverket)에 따르면 교사 위협 및 폭력 신고는 절대 다수가 초·중학교에서 일어난다.

작년 10월 웁살라(Uppsala) 지역의 초등학생 두 명이 교사를 때린 후 정학을 받는가 하면, 2016년에는 예테보리(Göteborg)에서 한 초등학생이 싸움을 말리던 선생님을 17번 때린 사건도 일어났다.

스웨덴 서부 지역 보로스(Borås)에서 14년 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한 칼 할레룹(Karl Hallerup)씨는 작년 10월 스웨덴 공영방송(SVT)과의 인터뷰를 통해 교사를 향한 폭력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칼 교사는 학교장, 학부모와 충돌을 원하지 않는 교사들이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는 폭력 피해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보로스 지역 교사 폭력 신고는 2017년에 16건, 2019년에 55건, 2020년에 57건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스웨덴 교사협회 정기간행물 레라렌(läraren)에 따르면 작년 11월 5일 스웨덴 노동 안전청(Arbetsmiljöverket)에 보고된 '2020년 교사에 대한 학교 폭력 및 위협'이 192건에 달했다. 이는 초∙중∙고등학생, 성인교육을 포함한 교내 환경 조사이다. 이 중 고등학교는 14건, 유치원·초·중등학교가 165건으로 나타났다.

아동 폭행죄로 기소되는 교사들

2012년 학생의 귀를 잡아당긴 학교장이 폭행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피해 학생은 "교장이 너무 귀를 세게 잡아당겨서 귀가 빨갛게 부어올랐다"라고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지방법원과 항소법원 모두 교장의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여겼지만, 폭행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판정해 무죄를 선고했다.

2017년에는 지시를 어기고 소파에 앉아 있던 학생을 강제로 들어 올려 폭행죄로 고소당한 선생님도 있었다. 3년간의 긴 공방 끝에 교사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교사가 학생에게 구타당했지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고 판결을 한 적도 있다. 2012년 5월 옐리바레(Gällivare) 지방 법원은 구타당한 교사를 경찰관과 비교하며, 때로는 교사도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고 간주했다. 이와 같은 판결은 전국 스웨덴 교사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교사를 걷어차고 때리며 위협을 가한 학생은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결국 교사에게는 어떠한 보상도 지급되지 않았다.

교사를 향한 학교폭력,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예테보리 자유당 시의원 악셀 달빅(Axel Darvik)은 지난 4월 일간지 요테보리스포스텐(Göteborg-Posten:이하 GP)과의 인터뷰를 통해 폭력과 위협에 시달리는 교사들을 위한 전문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 경찰, 학교가 함께 협조해야 하며 무엇보다 부모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뿐만 아니라 부모도 필요한 경우에 자녀 교육 관련 상담을 받아 안전한 학교 환경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돼야 한다고 전했다.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의원 빅토리아 트레그바도틸 롤카(Viktoria Tryggvadottir Rolka)는 지난 3월 GP와의 인터뷰를 통해 모든 학교가 학생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는 교사의 권한, 교장의 의무, 아동의 권리가 모두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폭력에 노출되더라도 교사들은 아무 조치를 할 수가 없으므로 교육청, 교육 안전관리부와 같은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며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 관리도 도움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한 보호가 필요한 스웨덴 교사들

현재 교사들을 향한 폭력과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학교 폭력으로 인한 병가, 이직률이 증가했으며, 일부 학교는 제대로 교육을 받은 교사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들의 부재로 인해 대체되는 보조 교사들 또한 위협과 폭력에 지속해서 노출되고 있다.

현재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교사를 향한 학교 폭력은 교권 실추는 물론 스웨덴 교육 현장의 도덕성까지 무너트리고 있다. 추락한 교권 회복과 더불어 교사들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서라도 스웨덴 교육 당국의 ‘교사 안전 보호망’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스웨덴 예테보리 = 정수지 글로벌 리포터 suji.jung@me.com

■ 필자 소개

작가/문화칼럼니스트

현 예테보리 세종학당 교원

저서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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