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썰] "간호사가 위암 수술"..의사 대신 처방, 수술하는 간호사들

성화선 기자 입력 2021. 5. 14. 14:28 수정 2021. 5. 14. 14:3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위험 약물 대리처방해 환자 사망하기도"

흰색 의사 가운을 입고 동물 가면을 쓴 네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의사가 해야 할 처방부터 시술, 수술까지 하는 간호사들입니다. 물론, 모두 불법입니다.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12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2021 한국간호사의 현실, 환자 속이는 불법의료행위 이제는 멈춰야'를 주제로 연 현장 좌담회에서 간호사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위암 수술을 많이 했어요. 집도의가 늦게 오면 인턴이나 의대생을 데리고 직접 개복하고 집도의가 올 때까지 수술한 적도 있어요. 집도의가 수술실에서 이미 가운을 벗었는데 깜빡했던 게 생각나면, 제가 대신 하기도 했고요. (12년 차 간호사)”

“다른 신체 부위 혈관을 떼서 심장에 붙여야 하는 경우 다른 부위 혈관을 제가 떼기도 했고요. 수술 중 환자가 심정지가 일어났을 때 직접 환자의 심장을 손에 쥐고 마사지도 했어요. (10년 차 간호사)”

수술뿐만이 아닙니다. 일부 병원에서는 처방도 간호사의 몫입니다.

신규 간호사가 오면 의사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부터 알려주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간호사가 의사 아이디로 처방을 내도록 하는 겁니다. 한 간호사는 “바쁜 의사들은 '늘 주던 대로 줘'라고 구두 처방을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간호사들이 의사인력 부족으로 인한 불법 의료 현장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환자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겁니다.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고위험 약물을 바로 주입하면 심장이 멎어요. 혼합해서 1시간 이상 천천히 줘야 하는데 '늘 주던 대로 줘' 이렇게 처방하니까 용법, 용량을 잘 모르는 간호사가 환자에게 바로 주입해 사망하는 경우 있었어요.”

가족을 잃기도 했습니다. 본인이 의사 일을 대신하는 간호사인데, 다른 간호사가 수술하다 가족이 숨졌다고 합니다. 그는 “뒤늦게 듣고 너무 속상했다”라며 “운전할 수 없는 아이에게 트럭을 운전하라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불법에 내몰린 간호사들은 불안감을 호소합니다. 의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은 간호사의 몫입니다. 한 간호사는 “사고로 동료가 자격정지 3주를 받았다. 월급도 못 받고 병원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간호사가 의사 일을 하는 건 명백히 불법입니다. 의료법을 보면 간호사 업무를 '의사나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불법 의료가 계속되는 건 병원에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22개 의료기관 간호사 12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의사 업무를 간호사에게 전가하는 이유로 '의사 수가 부족하다'라는 응답이 38.7%로 가장 높았습니다. 이어 '비용 절감(17%)'을 꼽았습니다. 병원에서 전문의 등 의사를 더 고용하면 비용이 많이 들어가니 간호사에게 시킨다는 겁니다.

보건의료노조의 설문조사 결과 〈출처=JTBC '뉴스룸'〉

병원도 방관하고 있습니다. 불법에 내몰린 간호사들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대리 처방이나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을 때 돌아온 병원 측 답변은 “너 말고도 일할 간호사 많다”라는 겁니다. 초과근무를 해야 할 정도로 갑자기 많은 일을 시키면서 불이익을 주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보건복지부도 손을 놓고 있습니다. 지난해 협의체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구성하지 않았습니다. 실태조사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간호사들은 떳떳하게 일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더는 불법으로 '유령'처럼 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의사를 더 늘리거나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법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반드시 의사가 해야 할 업무와 간호사가 해야 할 업무를 명확하게 구분해 달라는 겁니다.

의사를 돕는 간호사, 이른바 'PA(진료보조인력)'를 합법화하자는 의견도 일부 있습니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교육과 검증을 거쳐 자격을 주는 PA 직업군이 따로 있습니다.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이 관계 기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보건의료노조는 일단 관계 기관과 단체가 모여 대안을 논의해 보자고 합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보건복지부부터 병원협회ㆍ의사협회ㆍ전공의협의회ㆍ간호협회에 공개 토론을 제안했습니다. 논의가 지지부진하다면 오는 9월 총파업에 나설 계획입니다. 환자의 안전과 직결된 불법 의료,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Copyright © JTBC.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