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투자, 백신 끌어오기, 방미 동행.. 감옥의 이재용 구할까

배성규 논설위원 2021. 5. 14.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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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위기론까지 겹쳐, 여권서 사면 검토 가능성

삼성전자는 13일 시스템 반도체에서만 171조원을 투자하는 대규모 반도체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에도 20조원대 파운드리 반도체 라인 증설을 계획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내주 미국 방문 때 삼성 그룹 최고경영진도 동행할 것이라고 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의 모더나 백신을 위탁 생산할 예정이다. 삼성은 작년 말에도 화이자 백신 도입 계약 과정에서 막후 역할을 했었다. 우리 정부가 가장 시급하게 여기는 현안인 반도체와 백신, 방미 외교 등에서 삼성이 핵심적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이 같은 삼성의 움직임은 수감돼 있는 이재용 부회장을 구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로 해석된다. 재계가 ‘이재용 사면’을 공식 요청한 데 이어 사면에 찬성한다는 여론이 64%에 이른다는 조사도 나왔다. 다만 여권 일부와 시민단체 등에선 사면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삼성의 적극적인 행보에 청와대와 여권 핵심부의 기류는 ‘사면 검토’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오후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이 열린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부품연구동(DSR)에서 악수하며 인사하고 있다.

삼성은 13일 열린 ‘K반도체 전략 보고대회’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투자 규모를 최대한 키우고 정부 및 다른 기업들과의 협력 체제 마련에도 신경을 썼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행사의 중심에 서도록 몸을 낮추고 전면에 나서지 않으려 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이번 보고대회나 대규모 반도체 투자가 이재용 부회장 사면과 직접 연관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을 극도로 부담스러워 했다”며 “삼성은 최대한 드러나지 않고 정부의 지원 대책을 부각시키려 했다”고 전했다. 정부와 여권은 국가적 현안인 반도체 산업 육성에 삼성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것에 대해 만족감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그동안 국내 백신 도입 과정에서도 보이지 않게 핵심적 역할을 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작년 말 백신 도입 차질로 인해 난리가 났을 때 삼성이 화이자 측을 설득해 백신을 들여올 수 있게 한 것이 맞는다”고 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작년 말 중동과 유럽으로 출장 갔을 때 유럽에서 화이자 고위층을 만나 백신을 국내에 조기 도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을 했고, 이것이 주효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청와대와 여권 핵심부에선 삼성과 이 부회장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이번에도 모더나 백신의 국내 위탁생산이란 성과를 이끌어냈다. 모더나는 당초 국내에 자체 생산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했었다. 하지만 삼성이 적극적으로 나서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천 송도 공장에서 백신을 조기 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기서 생산하는 모더나 백신 일부는 국내에서 사용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르면 4분기부터 국내 모더나 백신 생산이 시작되고 국내 접종도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다. 백신 수급 차질 때문에 코너에 몰린 문재인 정부로선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미국은 현재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인도·호주와 다자안보협의체인 쿼드를 결성하고 핵심기술 동맹과 공급 네트워크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그 네트워크의 핵심 파트너 기업이 바로 삼성이다. 삼성은 반도체와 5G, 배터리 등 차세대 산업 분야에서 핵심 기술과 생산 라인을 갖추고 있다. 우리 정부도 미국의 쿼드에 일정 부분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삼성이 전면에서 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방미 때 삼성전자 김기남 부회장 등 삼성그룹 최고 경영진이 함께 동행해 미국과 반도체·백신·배터리 동맹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미 외교에서도 삼성이 일정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삼성은 직접 이 부회장 사면론을 꺼내지 않고 있지만, 재계에선 이 부회장의 부재가 ‘삼성 위기론’의 핵심 이유라고 말한다. 삼성은 최근 반도체 분야에서 인텔, TSMC에 밀리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휴대폰에서도 애플과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샌드위치 신세다. 전장 사업이나 배터리도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대규모 투자나 기업 인수합병을 신속하게 결정해야 하는데 총수가 없다 보니 이게 계속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지난번에 구속됐을 때 삼성의 실적이 나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건 전문경영인이 단기 수익성 중심으로 경영을 했기 때문”이라며 “위험을 감수하면서 미래를 위한 장기적 투자를 하려면 오너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삼성은 작년 말부터 반도체와 전장, 배터리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을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눈독 들인다는 글로벌 기업 리스트가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초 이재용 부회장이 재수감되자 이런 계획들이 줄줄이 연기됐다. 최근 코로나 확산 상황 때문에 이 부회장 면회도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부회장이 충수염으로 수술받으면서 건강도 많이 악화됐다고 한다.

여기에 삼성의 미래전략실이 폐지되면서 단일하고 일관된 전략 하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는 능력, 경영관리 시스템도 전반적으로 떨어졌다는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TSMC 등 경쟁업체가 삼성이 구사해 온 ‘초격차 전략’을 역으로 쓰자 삼성이 기술과 수익성에서 모두 밀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기술·경영관리 측면에서 워낙 저력이 있고 과거 위기를 넘어선 경험도 풍부하기 때문에 결국 위기에서 벗어날 것”이라면서도 “이 부회장이 언제쯤 복귀하느냐, 그리고 그만의 경영 리더십을 발휘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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