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동남풍'없는 文정부 반도체 대책

기자 2021. 5. 1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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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종 산업부장

한국경제 버팀목 지위 반도체

공급망 패권 휘말려 풍전등화

뒷북대책 안주하면 금방 낙오

투자의욕 북돋고 M&A 지원해야

경영안정 보장이 경쟁력 요체

골든타임 놓치면 경제 치명상

‘삼성이 16M D램으로 쿠데타를 일으키다.’ 1990년 7월 30일 미국 실리콘밸리의 ‘일렉트로닉스 바이어스 뉴스’는 이런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무명의 신인이나 다름없던 삼성이 최첨단제품인 16M D램 샘플을 배포한 데 따른 충격을 표현한 것이다. 개발 주역인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이 장면을 자신의 저서인 ‘열정을 경영하라’에 담고는 “반도체 기술에서 일본을 완전히 따라잡았다는 의미로, 희열과 전율은 감히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돌이켰다.

수십 년에 걸친 간난신고의 노력과 투자에 힘입어 삼성과 SK를 앞세운 한국 반도체 산업은 지난해 기준 시장점유율 18.4%로 세계 2위, 메모리반도체는 56.9%로 1위로 올라섰다. 수출은 992억 달러로 전체 수출의 19.4%를 차지하고 있다. 설비투자액은 국내 제조업 설비투자의 40% 이상에 달한다. 한국경제의 지주(支柱), ‘글로벌 정보기술(IT) 산업의 핵심부품인 반도체 생산기지’의 어엿한 위상이다.

하지만 냉엄한 국제경제의 경쟁 양태는 이런 영화를 언제까지 보장해주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등은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에 구축하기 위한 일전에 나섰다. 안주했다가는 한순간에 이류, 뒷전에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증폭시킨다. 대만 TSMC는 파운드리(위탁생산)는 물론, 삼성전자가 취약한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분야에서 질주하고 있다. 향후 투자 규모만 3년간 1000억 달러다. 인텔도 파운드리 분야에 200억 달러 투자의 포문을 열었다.

정부는 지난 13일 종합반도체 강국 실현을 위한 K-반도체 전략을 발표했다. 하지만 왠지 ‘장밋빛 청사진’ 같다. 반도체 전쟁에서 미온적인 반응과 뒷북 대책으로 일관해 오다 떠밀리듯 대책을 내놓은 데 따른 결과이다. 민간에게 취합해 달라고 한 2030년까지의 투자액 510조 원을 내세워 경쟁국을 압도할 것처럼 애드벌룬을 띄웠다. 하지만 대규모 민간 투자와 인수·합병(M&A)을 결정할 총수가 부재 중인데 얼마나 추진력이 있을지 의아스럽다. 막대한 투자를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어떻게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어 쉽게 결정하겠는가. 적벽대전에서 ‘동남풍’이 없는 것과 같다.

삼척동자도 알 만한데, 정부는 애써 눈을 가리려 한다. 얼마 되지 않았으니 기억도 생생하다. 2019년 봄에도 시스템 반도체 분야 1위 등극과 종합반도체 강국이 되겠다고 발표했지만 어떤 게 달라졌는지 되묻고 싶다. 이 정부가 K-방역 성과에 안주해 백신 방역에 실패함으로써 줄줄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결과적으로는 포스트 코로나 대응에까지 뒤처지는 오류를 저지르더니 반도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두려운 위기감이 또 엄습한다.

문 정부 4년간 대통령도 자인한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청년 실업률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말 앞에 마차를 매단 소득주도성장, 혈세만 날려버린 고용정책은 경제의 근본 체질과 시계(視界)를 난자했다. 누란지위(累卵之危) 형국인 IT 반도체 산업을 비롯해 전통 제조업 등을 대상으로 경쟁력 회복의 요체가 무엇인지 정교한 접근과 시각, 배려, 지원이 절실한 때다. 올가을이면 이 정부의 동력은 더욱 쇠락할 것이다. 그래도 경제주체에 대한 마지막 양심과 도리가 있다면, 경영에 전념해 고용과 세수 증진 및 사회 환원에 기여하고 싶은 기업인들에게 앞길을 열어줘 국가경쟁력을 견인케 하고, 실타래 규제도 풀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제거해 줘야 한다.

지난달 초 반도체 업계는 이렇게 읍소했다. ‘글로벌 환경변화에 따른 탄력적 통상 정책 추진을 요청합니다. 미·중 정부와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우리 반도체 기업이 안정적 경영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통상 분야 협조를 요청하며, 주요국 통상·정책동향 관련 정보의 실시간 업계 공유를 요청합니다.’ 왜 기업들이 이런 말을 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부터 부끄러워해야 한다. 할 일을 하지 않으니 회생의 길도 요원한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6일 세미나에서 이런 경고를 날렸다. “급변하는 세계의 흐름에 바람과 물결의 향배를 읽지 못하면 역사의 변곡점에서 한국은 큰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가슴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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