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베스트 퍼포먼스

함신익 기자 2021. 5. 1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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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굳은 얼굴로 악보만 읽는 연주

나태한 오케스트라 ‘리딩’일 뿐

청중이 원하는 건 무대 위 열정

함께 호흡하고 공감해야 ‘퍼폼’

음악의 모든 요소 스스로 소화

완성도 높이는 게 프로 연주자

각종 출판물과 음반 등에 실려 있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독설을 쏟아낼 것 같다. 헝클어진 머리에 미친 듯이 지휘를 하거나 피아노를 치는 초상화가 주류를 이룬다. 그가 전원을 산책할 때도 옅은 미소를 띤 그림을 본 적이 없다. 1970, 1980년대의 웬만한 음반 판매점(레코드 가게), 카페(다방), 심지어 차이니스레스토랑(짜장면집) 벽면에는 지휘봉을 들고 고개를 약간 숙인 엄숙한 표정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베를린 필 지휘자) 사진 액자가 걸려 있었다. 클래식 음악을 이해하고 싶지만 그 깊이와 넓이가 방대해 진입을 주저하는 잠재적 고객들에게 이런 강한 캐릭터의 사진과 그림들은 클래식 음악을 오히려 멀리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일반인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호흡하는 외계인 같을 뿐 아니라, 무겁고 어두운 세계에만 있는 딱딱한 클래식 음악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주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음악을 공부하고 연주하다 보면 초상화에서 얻은 피상적인 인상들이 그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게 아님을 쉽게 알게 된다. 그의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원초적 단순 간결함, 하나의 간단한 주제가 계속 반복되는 유쾌한 지속성, 가벼운 유머와 재치, 통쾌한 웃음소리와 천진난만한 아이의 미소, 한없이 따뜻한 관용을 품은 진한 눈물의 노래, 외로움과 슬픔을 승화시켜 온순함과 용서를 가득 담은 부드러운 시적 표현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일상생활의 감성적 표현들로 풍성하다. 이를 발견해 적극적인 표현으로 청중에게 전달하는 게 연주자들의 본분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20∼21세기에 들어서며 클래식 음악이 오디오 시대에서 비디오 시대로 민감하고 급격하게 바뀌었다. 연주자들이 베토벤이나 카라얀의 초상화를 모방하는 고착된 심각성 일변도의 음악을 무대 위에서 표현하는 시대는 갔다.

30여 년의 전문음악인으로서 음대 학생들, 음악감독 또는 객원지휘로 인연을 맺은 세계 여러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연주자들에게 강조하는 게 있다. 악보를 틀리지 않게 읽어 내려가는 정도의 연주로 청중을 만족시키려는 습관적 나태함을 과감하게 버려라. 이런 행위는 연주라기보다 ‘리딩’(reading·악보를 읽다)이라고 하는 게 바른 표현이다. 리딩으로 청중을 감동시키려는 것은 연주자들을 위한 자기만족 행사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청중이 콘서트홀을 직접 찾는 것은, 음원이나 비디오 영상에서 찾을 수 없는 생동감과 라이브 연주의 매력을 공감하기 위해서다. 연주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고 땀 흘리며 연주하는 무대 위의 열정 가득한 모습이 폭포수같이 증폭돼 객석으로 전달되는 감동을 받고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콘서트홀의 음향 등을 통해 힐링을 얻고 콘서트홀을 떠나는 것이다. 이런 것을 퍼폼(perform·연주하다)이라고 한다. 이렇듯 리딩과 퍼폼의 차이는 분명하다.

여러 오케스트라와 다양한 포맷의 연주를 했지만, 청중이 감동할 수 있는 연주를 뿜어내는 무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구태의연하게 연주하는 것에 익숙해진 오케스트라는 악보에 눈을 떼지 못하고 악보에 나열된 다이내믹한 감정의 표현을 소홀히 한 완성도 낮은 연주로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악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하고 온화한 사랑이 흘러넘치게 쓰여 있는데, 연주하는 얼굴은 여전히 심각하다. 1악장부터 4악장 피날레까지 계속 무표정이다. 감동적인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옆 동료 단원과 눈빛을 은근하게 교환하며 음악을 느끼는 표정을 갖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60분 길이의 곡에서 6분도 채 안 되는 부분만 연주하는 타악기 주자 또는 튜바 주자가 연주하지 않는 54분을 긴장된 표정 없이 동료들의 음악을 무대에서 마음껏 즐기는 표정을 읽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나는 그런 오케스트라를 꿈꾼다. 연주하지 않는 순간마저도 즐기는 매력적인 연주자들을 찾고 있다.

다양한 감정의 표현을 만들기 위해서는 악보를 충실히 소화해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 배경 등을 깊이 연구해 농익은 연주를 만들어 가는 프로페셔널한 훈련이 필요하다. TV에서 방영하는 오케스트라들의 연주를 시청하며 음악을 들려주고 보여주는 성숙한 모습은 드물고, 시험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접하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내가 창단하고 운영 중인 심포니 송은 이런 근본적인 접근에 큰 비중을 두고 연습한다.

연주회에 고정적으로 참석하는 심포니 송의 시즌 티켓 회원들은 연주자들의 열정적인 연주 모습에 감동받아 연주회에 계속 온다고 전해온다. 경험에 비춰, 방어적인 연주를 하는 주자들의 사운드도 그다지 우수하지 못하다. 적극적인 연주는 그 소리 자체부터 분명하게 구별된다. 음악에 있는 모든 요소를 자발적으로 해결하는 프로 연주자의 자질을 갖춰야 선진 오케스트라가 요구하는 높은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다. 베스트 퍼포먼스(best performance)는 연주자 개개인이 각자의 스승이 돼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러면 청중과 연주자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환상의 콘서트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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