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사랑도 두려움도 '냄새'로 온다

기자 2021. 5. 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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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냄새의 심리학 | 베티나 파우제 지음, 이은미 옮김 | 북라이프

동물들 교미 전 냄새 풍기듯

男女간 호감도 향기가 좌우

극한 스트레스 받은 사람들

땀 성분 달라지며 체취 변해

후각 탐구 해온 獨 심리학자

냄새 통해 인간의 본성 분석

인간이 향수를 가지고 있는 것들은 대개 냄새로 각인된다. ‘고향의 내음’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생겼을 것이고, 어린아이들은 하루 3시간 ‘엄마 냄새’를 맡는 게 좋다는 말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인간의 후각적 의사소통에 관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연구자”인 독일 심리학자 베티나 파우제의 ‘냄새의 심리학’은 후각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감각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책 첫머리에서 “일상은 냄새로 좌우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인지하는 건 극히 일부분에 불과해 삶이 코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인간은 달콤한 냄새와 불쾌한 악취만 맡는 게 아니라 후각으로 “사랑, 공포 같은 감정도 감지”한다.

저자는 책 첫머리에서 냄새와 외로움을 연결시킨다. 현대인들이 점점 더 길을 잃고 헤매는 이유는 “돈 냄새를 맡지 못해서”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슬픈 현실이자 고질병인 외로움 때문”이다. 독일인 중 10~15%가 외로움으로 힘들어한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는 개인주의의 대가로 “외로운 세대”가 됐다. 독일은 집권 정당 간 합의서에 따라 “모든 세대의 외로움을 방지하고 고독과 싸워 이겨 낼 것”이라고 선언했다. 영국은 2018년 “외로움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외로움을 이겨 낼 방법은 결국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함께 있으면 편안함을 주는데, 그것은 “대부분 의식하지 못하는 화학적 신호들을 통해” 생겨난다. “그가 가진 냄새의 화학적 칵테일이 ‘맛있으면’ 그를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며 그의 행동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외모도 중요하지만 내게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지금 당장 확인해 볼 일이다.

이토록 중요한 후각은 왜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철학 등이 감각이 아닌 “사고와 이성”을 인간의 전형적인 특성으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감각이 종종 중요하게 다뤄지기는 했지만, 후각은 항상 뒷전이었다. 냄새를 정확하게 잡아내는 일은 이미지나 소리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화학에 의한 의사소통은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탓에, 항상 논외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니 고대의 신들로부터 냄새에 대한 직관은 넘쳐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종종 땅에 내려와 하늘로 돌아가면서 “향기로운 냄새”를 남겼고, ‘성서’는 “그리스도의 향기”, 즉 “하느님의 존재 덕분에 피어나는 향내”에 관해 언급했다. 중세 사람들은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는 현상이 자연적인 게 아닌 신적인 존재와 성령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자에 따르면 후각은 “늘 간발의 차로” 여타 감각을 앞서간다. 후각은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은 듣기 싫으면 귀를 막거나 음향기기를 꺼버리면 그만이다. 아무리 유혹적일지라도 “보고 듣고 만지는 행위”는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냄새는 우리 코를 무사통과한다. 그 냄새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감정을 유발”한다. 어떤 냄새는 맡자마자 곧장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데, 이를테면 “화재나 부패 냄새 혹은 상한 식자재” 등은 계속해서 코로 들어오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촉구한다. 냄새가 유발한 행동 중에서 ‘사랑’만 한 것이 없다. 대부분의 동물은 “성적 매력을 어필하거나 교미할 채비가 됐”을 때 냄새를 풍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물론 “매혹적인 사람의 냄새를 모두 의식적으로 지각”할 수는 없지만,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나 여성의 에스트로겐 수치에 따라 “체취가 갖는 쾌적함”이 달라진다.

사랑처럼 좋은 감정을 후각을 통해 인지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두려움도 냄새를 통해 인지할 수 있다. 저자는 “사람은 두려움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 시험을 앞둔 학생들, 수천m 상공에서 낙하산을 매고 뛰어내려야 하는 사람들의 땀은 스트레스 때문에, 시작 전부터 구성 성분이 달라진다. 나아가 “화학적 두려움 신호를 통해 한 사람의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되는, 즉 전염도 일어난다. 비슷한 원리로 곧 닥칠 위험을 인지할 수도 있다. 저자는 “우리는 우리가 풍기는 냄새, 그 자체”라고 말한다. 단순히 몸의 냄새가 아닌, 인간 정체성이 냄새를 통해 발현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냄새의 심리학’은 우리가 몰랐던, 혹은 간과했던 냄새를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발현되는지 흥미롭게 분석한다. 사족처럼 덧붙이면, ‘냄새의 심리학’을 다 읽고 나면 후유증이 하나 생길지도 모른다. 킁킁거리며 내 몸의 냄새를 맡는 일 말이다. 364쪽, 1만7500원.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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