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의 '오늘의 미래는'>연약한 남성들 지키기 위해 '못된' 여성들 가두는 수용소?

기자 2021. 5. 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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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의사가 가운을 벗고 흡연구역으로 들어가 담배를 피웠다.

지극히 의사가 할 만한 말이지만 남자 환자들은 의사보다 여자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걸 믿을 수 없어 한다.

그런 환자들을 향해 여자 의사는 다시 한 번 더 "제가 정자 얘기해서 놀라셨어요? 정자?"라고 강조했는데, 그러자 남자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고 응급실로 옮겨지기도 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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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작가 SF 단편모음집

여자 의사가 가운을 벗고 흡연구역으로 들어가 담배를 피웠다. 그러자 남자 환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리더니, 한 중년 남자가 다가와 묻는다. “의사 선생님 아냐?”라고 운을 떼더니 “의사 선생 결혼은 했어?”하고 오지랖을 떨고 “담배가 자궁에 해롭다던데. 나중에 애한테 큰일 나면 어떡하려고”라고 충고까지 한다. 환자가 의사에게, 마치 자궁에 대해서는 직원을 막론하고 자신이 더 잘 안다는 듯이. 여자 의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맞받아친다. “남자들도 담배 피우면 정자 약해지고 고환암 걸려요.”

지극히 의사가 할 만한 말이지만 남자 환자들은 의사보다 여자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걸 믿을 수 없어 한다. 그런 환자들을 향해 여자 의사는 다시 한 번 더 “제가 정자 얘기해서 놀라셨어요? 정자?”라고 강조했는데, 그러자 남자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고 응급실로 옮겨지기도 전에 사망했다.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여자 의사가 흡연구역으로 들어오기 직전에도 여섯 명의 남자가 돌연사한 사건을 맞닥뜨렸기 때문이며, 이 남성들의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는 대한민국에 이례 없이 퍼진 ‘기사증후군’ 때문이다.

‘여성작가 SF 단편모음집’(온우주)에 실린 박소현 작가의 ‘기사증후군’은 여자의 언성이 조금만 높아져도 심장마비에 걸려 남자들이 죽는다는 설정이다. 정부는 여자들의 냉랭한 태도에 죽는 남성이 많아지자, 대책을 강구했고 이런 대안을 만들었다. 바로 원인 제공자들을 수용소에 모아 훈련시키는 것이다. 연약한 남자를 지키기 위해 못된 여성을 가두는, 이른바 ‘사회화 교육’을 하는 수용소다.

수용소에서 배우는 과목은 ‘좋은 어머니가 되는 법’ ‘타인을 배려하는 법’ ‘감사하며 살아가는 법’ 따위다. 이 방법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문제는 수용소에 가둔 여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투입된 군인들조차도 자신의 지시를 여자들이 무시해서 죽고, 옷 갈아입는 걸 훔쳐보다가 몸에 타투가 있는 걸 보고 죽고, 웃음소리가 조금만 커도 죽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자들은 외쳐야 했다. 자랑을 함부로 하지 않고, 언제나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고.

8쪽밖에 되지 않는 이 짧은 소설은 말도 안 되는 과장된 설정을 유쾌하게 풀어가며 독자의 웃음을 유발한다. 소설 속 대한민국의 시국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그런 가벼움과 유쾌함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고, 그 유쾌함에 함의된 이 시대의 부끄러움은 독자의 몫이다. 소설의 화자는 ‘기사증후군’을 없앨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을 이 소설 말미에 떠올린다. 그것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시라.

평소 과장법 사용하기를 즐겨 이 소설을 떠올렸다는 작가의 말을 보며, 박 작가가 만들 또 다른 과장된 세계가 얼른 보고 싶어진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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