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백신 포비아'는 왜 만들어지나

오남석 기자 2021. 5. 1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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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백신 거부자들│조나단 M 버만 지음│전방욱 옮김│이상북스

부작용 공포·제약사 음모론…

권력의 부당개입 대항 의미도

간디도 천연두 백신 접종 거부

20세기 후반엔 일부 과학자들

조작된 데이터로 돈벌이 나서

언론 통해 가짜뉴스 퍼지기도

최근 SNS 발달로 초연결시대

엉터리 정보 더 빠르게 확산돼

전염병 퇴치 막는 중대한 위협

“백신 접종은 미개한 행위이고, 우리 시대의 모든 망상 중 가장 치명적인 것 중 하나이다 … 백신 접종은 무고한 살아 있는 동물의 독극물 피를 빨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런 신성모독 행위를 범하느니 차라리 수천 번 천연두의 희생자가 되거나 심지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는 편이 낫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잡기 위해 분투 중인 의료진과 보건당국 관계자들이 통탄해 할 만하다. 하지만 이 황당하고 위험한 주장을 편 사람은 놀랍게도 인도주의와 평화의 표상으로 전 세계의 존경을 받은 인물, 바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1869~1948년)다. 간디는 1921년 쓴 ‘건강 가이드(A guide to health)’라는 책에서 영국 정부가 식민지 인도 주민에게 천연두 백신 접종을 강제한 것을 이같이 비판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백신 공포증과 백신 거부 운동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새 책 ‘백신 거부자들(원제 Anti-vaxxers)’은 백신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백신 거부 운동의 역사를 추적한다. 저자는 누가 왜 백신 거부 운동을 벌여 왔는지, 그들이 백신을 거부한 이유가 뭔지, 왜 이들의 위험한 논리가 과학적 주장보다 쉽게 사람들을 사로잡는지 등을 다양한 역사적 자료를 통해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200년 넘게 이어진 백신 거부는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 정부의 신체 침입에 대한 반대, ‘빅 파마(Big Pharma·제약회사와 연구소 등)’에 대한 음모론, 대안치료를 권하는 사람들, 제약회사를 고소하려는 변호사들의 재정적 동기, 지역사회에 대한 막무가내의 식민적 침입, 친부모를 제외한 누군가가 자녀들에 대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배척, 육아 방식에 따라 형성되는 공동체 의식과 정체성 등 몇 가지 동기”에 의해 일어났다. 백신 거부자가 단지 미신과 같은 비과학적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근대적 주체’, 자녀의 건강을 직접 챙기는 ‘깐깐한 부모’, 정치권력의 부당한 개입과 자본의 횡포에 맞선 ‘저항하는 시민’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백신 거부자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적대감을 보이지는 않는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의도적인 우두 백신 접종 사례를 보면 이런 태도가 이해된다. 영국 농부 벤저민 제스티는 ‘백신의 아버지’ 격인 에드워드 제너의 천연두 백신 접종보다 20년 앞선 1774년, 천연두가 자신의 농장 인근에서 발생하자 우두에 감염된 소의 고름을 감침바늘에 묻혀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이들 모두는 천연두의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비위생적으로, 심지어 비전문가가 사람의 몸 안에 독소를 주입하는 방식은 거부감과 저항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1853년 영국 의회가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백신접종법을 만들자, 대지주 존 깁스 주도로 역사상 최초의 조직적인 백신 거부 운동이 불붙은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후의 백신 거부 운동, 특히 백신 공포를 유발하고 거부 운동을 조장한 과학자들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는 전혀 다르다. 1998년 홍역·볼거리·풍진을 막는 혼합백신인 MMR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란셋’에 게재, 전 세계적인 백신 거부 운동을 촉발한 앤드루 웨이크필드에 대해서는 그의 주장을 논박하는 것을 넘어 부도덕성까지 낱낱이 까발린다. 저자에 따르면, 웨이크필드의 논문은 데이터 조작에 의해 작성된 엉터리일 뿐 아니라 백신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을 건 변호사 측으로부터 돈을 받고 쓴 것으로 드러났다. 2010년 ‘란셋’이 문제의 논문을 철회하고, 영국 종합의료위원회가 웨이크필드의 의료 먼허를 박탈했다. 그런데도 웨이크필드는 잘못을 시인하기는커녕 미국으로 옮겨 여전히 각종 연구소와 미디어 채널 등을 통해 잘못된 주장을 되풀이하며 돈벌이를 이어가고 있다. 저자는 정확한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과학 보도에서도 여러 이견을 동등하게 소개하는 ‘잘못된 균형’을 고집하는 언론의 태도가 웨이크필드류의 사이비 과학자와 음모론자들에게 악용돼 왔다고 지적한다.

중앙집중식 ‘게이트 키퍼’ 없이 SNS를 통해 개인 간 직접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초연결 시대의 도래는 백신을 통한 전염병 퇴치 시도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의사소통 속도와 용이성은 혁명적으로 향상된 반면 ‘가짜뉴스’ 등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기 위한 안전 조치는 크게 미흡하기 때문이다. 백신 거부자의 신념을 흐트러뜨리기 위한 전략이 더욱 중요해졌다. 백신 거부자를 조롱하거나 그들과 논쟁하는 전략, 과학적 근거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전략, 백신 거부자가 속한 공동체와 지역사회를 통해 변화를 유도하는 전략 등이 대표적이다. 저자가 가장 유효하다고 강조하는 전략은 세 번째다. 백신의 안전성을 우려하는 주변 사람을 윽박지르지 말고 공동체와 연대의 관점에서 설득해 나가자는 취지다.

간디는 1930년에 이르러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어린이들이 천연두에 걸려 죽어가는 모습을 목도하고 “나의 무지와 고집의 결과일 수 있다. 나는 지금 매우 불행하다”고 고백했다. 저자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말을 빌려 뒤늦은 대응의 허무함을 경고한다. “거짓은 날아가고 진실은 그다음에 절뚝거리며 온다. 그래서 사람들이 속지 않을 때가 되면, 너무 늦다 … 환자가 죽은 후 약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의사처럼.” 336쪽, 1만80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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