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다 보면 오스카 무대에 오를 일도 생긴다 [윤지혜의 대중탐구영역]

윤지혜 칼럼 2021. 5. 14.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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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우리에게 직업은, 생존과 직결된다. 직업의 사전적 의미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라고 하니까.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른 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야 최고의 시나리오지만 나날이 심각해지는 취업난 속에서 삶을 넉넉히 꾸릴 일을 찾는 것만도 요행이다.

직업을 찾고 얻는 행위에서, 적성과 능력에 따라야 하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게 쉽지 않다. 전자가 얼추 들어맞으면 자아실현은 가능할지 모르나 번듯한 행색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고 후자의 조건이 마음에 쏙 들면 후에 영혼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맞이해야 할 수도 있다. 와중에 이 두 조건에 맞는 직업을 찾고 얻었다 해도 각각을 충족하는 정도는 낮기 일쑤다.

결국 해당 직업이 평생 혹은 일정 기간 동안 지고 갈 우리의 삶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좀 더 감당할 수 있는지의 사안으로, 이쯤에서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결정되곤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절대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할, 상당히 중요한 삶의 순간들 중 하나로, 물론 이러한 고민조차 불가능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 놓일 경우가 다반사이긴 하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사 상황이 변하긴커녕 더욱 악화될지라도,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이유다.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은, 과거 출연한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인이 지닌 연기력의 비결로 연기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은 것을 꼽았다. 이혼을 하고 다시 돌아온 그녀에게 각박하게 굴었던 당시의 한국 연예계에서, 말 그대로 밥 벌어 먹고 살기 위해 어떤 배역이든 닥치는 대로 연기를 했을 뿐인데 어느새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자리에 올라 있더라는 거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 것은 윤여정은 이미 타고난 재능으로 한차례 인정받은 바 있는, 연기가 적성에 맞고 능력까지 따라주었던 배우란 점이다. 그저 ‘이혼’이란 꼬리표가 붙으면서 배우로 복귀하여 생계를 꾸리는 데 있어 절박한 상황에 놓였고 이 때부터 단순히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서가 아닌, 생업으로서의 연기를 본격적으로 펼쳐갔을 따름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돈을 벌기 위해 여기저기 부딪히고 긁히는 과정이 그녀 특유의 농도를 더욱 짙게 만들었으니, 60 이후에서야 즐기게 되었다는 윤여정의 연기가 과거 어떤 그녀의 것보다 한층 빛날 수밖에 없는 까닭이겠다. 윤여정으로 하여금 연기를 시작하게 한 원동력은 연기 그 자체에 대한 재능과 흥미였으나, 배우로서의 삶을 지속하게 하고 웅숭 깊은 연기를 펼치게 만든 힘은 아이러니하게도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었다.


좋아하고 혹은 잘하는 일을 생업,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더이상 그것이 주는 낭만적인 환상에 머무르지 못한다는 의미다. 삶과 현실을 책임져야 하는 실질적인 문제 앞에서 ‘좋아함’이나 ‘잘함’, ‘능숙함’ 등은 비로소 구체적인 지표로 드러나고 우리는 그것이 생각보다 효능감이 그리 좋지 않음을 생생하게 맞닥뜨린다. 속된 말로 ‘현타’가 오는 순간이다. 이쯤 되면 차라리 취미로 두고 생계를 담당할 일을 따로 찾는 게 훨씬 낫겠다 싶기도 하다.

“직업은 당신의 이름과 당신 자신을 대변한다”
이러나 저러나 분명한 사실은, 윤여정이 어느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처럼,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우리의 존재를 규명할, 그러니까 자아를 실현하고 생계를 유지해줄 하나 이상의 직업과 마주한다. 또한 어떤 동기로 마주했고 시작되었던, 하고 있는 업이 온전한 나의 것이 되어 빛을 발하기까지는 여무는 기간이 요구되며 여기서 이러나 저러나, 만족해 주지 않는 현실에 치이고 긁히는 고통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발생할 고통이라면, 좀 더 감당할 수 있을만한, 여무는 기간을 견딜 수 있을 만한 쪽에 비중을 두고 선택하는 게 좋지 않을까. 설사 선택이라는 것을 하지도 못할 상황이어도 상관없다. 이런 사고과정을 거친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현실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의 삶과 업을 소중히 대할 힘을 얻기 때문이다. 이후엔 어떤 직업을 부여 받던 반드시 온전한 ‘나의 업’을 맞닥뜨리는 순간에 이르고 말 테다. 열심히 살다 보면 오스카 무대에 오를 일도 생긴다 하지 않나.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더아카데미SNS, DB]

오스카 | 윤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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