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르포] "1위 빼앗기면 죽는다" 백화점 건 '김승연 vs 정유경' 자존심 대결

대전 = 홍다영 기자 2021. 5. 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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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텃밭 대전에서 벌이는 진검승부
명품·휴식공간이 '1등 백화점' 승부 가를듯
호텔·영화·스포츠로 '랜드마크' 꿈꾸는 신세계
VIP 라운지 강화, 재단장에 대규모 투자..견제나선 갤러리아

지난 13일 오후 1시 30분 대전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과학공원. 대전신세계 엑스포점 개관을 앞두고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현장 인부들은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거나 크레인으로 건축 자재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내던 인부 김모씨는 ”이곳에 곧 신세계백화점이 들어설 예정”이라며 ”개장 시점에 맞춰 공사를 끝내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했다.

재계 7위 한화(000880) 김승연 회장과 재계 11위 신세계(004170) 정유경 총괄사장이 대전에서 백화점을 두고 자존심 대결에 나선다. 대전신세계 엑스포점이 오는 8월 문을 열면서다.

대전 갤러리아 타임월드와 대전신세계 엑스포점.

대전 서구 둔산동에 있는 갤러리아 타임월드점은 대전신세계 엑스포점과 택시로 10여분 거리(직선 거리 2.8km)에 있다. 신세계는 ‘지역 1번점’ 전략을 통해 그간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왔다. 지역 1번점 전략이란 주요 대도시마다 가장 큰 백화점을 지어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부산센텀시티점이 이런 전략의 대표적 사례다. 기존 1등이었던 롯데 명동본점과 부산점은 신세계에 왕좌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20여년간 대전 백화점 매출 1위를 지켜온 갤러리아가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화는 대표적인 충청도 연고 기업이다. 김종희 한화 창업주와 장남인 김승연 회장은 충남 천안 출신으로 1976년 천안에 북일고를 세웠다. 대전 야구단 한화이글스를 운영하며 한화솔루션 중앙연구소도 대전에 있다. 충북 진천엔 한화큐셀 공장이 있다. 충청도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도 한화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한화그룹 매출에서 갤러리아 등 도소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8%(작년말 기준)로 작지만, 신세계가 대전에 도전장을 내밀자 한화 내부에선 “1위 자리를 빼앗기면 죽는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대전신세계 엑스포점 공사 현장. /홍다영 기자

대전신세계 엑스포점은 지하 5층, 지상 43층 규모(건물 면적 약 28만㎡)로 2016년 대구점 이후 5년만에 개관하는 신세계의 13번째 점포다. 구찌, 로저비비에, 부쉐론, 델보, 신세계 명품관 분더샵 입점이 확정됐고 3대 명품인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은 입점을 협의 중이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대구점도 루이비통이 먼저 입점한 뒤 에르메스와 샤넬이 들어왔다”며 “개점 후 명품이 입점하는 경우가 많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찾은 대전 갤러리아는 평일 낮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루이비통, 프라다, 구찌 등 명품을 구매하는 고객이 많아 보였다. 한 명품 매장 직원은 “같은 브랜드가 엑스포점에 들어와도 신제품이나 인기 제품 입고 등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명품 매장 직원은 “서울 강남권 백화점이 아닌 이상 (대전) 신세계나 갤러리아나 비슷비슷하다”고 했다.

대전 갤러리아는 1997년 동양 타임월드로 문을 연 뒤 2000년 한화에 인수됐다. 대전에서 롤렉스 등 해외 유명 명품을 보유한 유일한 백화점으로 작년 64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대전 롯데백화점도 있지만 명품 수가 적어 갤러리아가 충청권 우수고객(VIP)을 독점하다시피 끌어모았다. 업계에서 “대전 롯데백화점 직원이 명품을 사러 타임월드에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대전 갤러리아백화점 타임월드점. /홍다영 기자

그러나 신세계 입점 소식에 대전이 들썩이며 경쟁이 치열해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대전의 한 택시기사는 “신세계가 백화점을 짓는다는 소식에 기대하는 지역 주민이 많다”며 “자본력 있는 신세계가 덤비면 갤러리아도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용현아(유성구 용산동 현대프리미엄 아웃렛)보다 30배 높은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며 “이번 기회에 재미 없는 도시에서 벗어나길 기대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갤러리아는 이에 맞서 작년 9월 명품 보석 티파니를 입점시켰고 발렌티노, 토즈, 알렉산더맥퀸을 들일 예정이다. 백화점에 미디어 파사드(외벽 영상)와 5700여개의 꽃 모양 모듈(부품 덩어리)을 설치하는 등 건물도 재단장했다. 갤러리아 측은 “재단장 금액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대전 갤러리아백화점 타임월드점 루이비통 매장. /홍다영 기자

이들 백화점의 진검승부는 명품을 넘어 휴식 공간에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대전신세계 엑스포점은 ‘쇼핑과 휴식, 배움, 예술을 만끽하며 감성과 오감을 채우는 충청 랜드마크'를 표방한다. 백화점 외에 193m 높이에서 대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와 호텔 오노마, 영화관, 아쿠아리움이 들어선다. 카이스트와 공동으로 만드는 체험 과학관과 암벽 등반, 스크린 야구 등 실내 스포츠 시설도 있다.

상대적으로 체험과 휴식 공간이 부족한 갤러리아는 비상이 걸렸다. 대전 갤러리아의 한 직원은 “몇몇 카페가 있지만 테이크아웃(포장) 위주”라며 “콘센트를 꼽고 노트북을 하거나 앉아서 휴식을 취할 만한 공간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갤러리아 관계자는 “지난 3월 타임월드점 12층에 VIP가 휴식할 수 있는 130평 규모·70여개 좌석의 전용 라운지를 열었다”며 “차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무료 음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핵심 자산인 VIP를 지속 창출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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