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아파트 60년]② 디귿자 건물 중앙에는 여전히 땅속에 묻힌 항아리가.. 시범아파트 맏형 회현아파트

고성민 기자 2021. 5. 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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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파트 60년]

1958년. 한국산(産) 첫 아파트는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세워졌다. 이때부터 아파트는 전후(戰後) 주택난 해소를 위해 대규모로 지어진다. 고급 맨션이 유행하고 ‘건설 붐’으로 여의도·반포·잠실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지어지며 아파트는 우리나라 대표 주거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아파트에는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 기술까지 담긴 셈이다. [편집자주]

MBC 무한도전, tvN 대탈출, 넷플릭스 스위트홈, 영화 친절한 금자씨, 추격자, 주먹이 운다, 하녀, 사월의 끝, 아이돌그룹 빅뱅의 뮤직비디오 거짓말, 온라인 게임 서든어택….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것. 오래된 분위기와 특유의 설계로 영화·드라마의 단골로 등장하는 이 아파트는 서울 남산자락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서울시 중구 회현동1가에 위치한 회현2시민아파트(회현2시범아파트)다. 주거공간인 3~7층 아파트가 ‘싹둑’ 잘려 나간 삼일시민아파트를 제외하면 회현2시민아파트는 현존하는 유일한 시민아파트다. 아파트 커뮤니티의 효시인 중정(中庭·마당)을 조성했고, 당시 최첨단기술인 중앙난방 시스템을 도입해 ‘시민아파트의 개량형’으로 평가받는다.

◇와우 참사 지켜보며 완공돼… “시범 삼아 튼튼하게 지으라”

1968년 대규모 주택공급 정책으로 펼쳐진 ‘시민아파트’ 사업은 1970년 4월 서울 마포구 와우시민아파트가 준공 4개월 만에 붕괴하며 금세 실패로 드러난다. ‘빨리빨리’ 부실 공사가 낳은 참사였다. 이때부터 시민아파트 건설은 전면 중지되고 순차적으로 철거된다. 와우 참사 당시 준공 막바지였던 회현2시민아파트는 구조물 보강을 거쳐 1970년 5월 준공됐다. 애초 시민아파트로 계획됐으나 ‘와우아파트 비극’과 작별한다는 의미에서 시범아파트라는 이름으로 준공됐다. 서울시는 시범아파트의 유래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1970년 4월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직후,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이 ‘앞으로 아파트는 이곳(회현시민)을 시범(示範) 삼아 튼튼하게 지어라’고 한 말에서 유래해 그 이후 건립된 공용아파트는 시민아파트가 아닌 시범아파트란 명칭을 사용하게 됐다.
1983년 촬영된 남산 일대. 사진 오른쪽 위로 솟아오른 건물은 1970년 5월 준공된 지상 18층 규모 옛 남산 어린이회관과 천체투영관(현재는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건물). 이 건물 왼쪽 아래 ‘ㄷ’자 모양 아파트가 회현아파트다. 남산타워 아래쪽에 있는 아파트는 1975년 준공된 삼풍맨션아파트. /서울역사아카이브

회현아파트가 때론 ‘마지막 남은 시민아파트’, 때론 ‘시범아파트의 효시’로 두 가지 이름을 가진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과거 사료를 살펴봐도, 회현아파트는 때론 시민아파트(1997년 9월 5일 조선일보)로, 때론 시범아파트(1974년 8월 8일 조선일보)로 불렸다. 현재도 회현아파트 입구는 ‘회현 시범’, 입구 옆 창문은 ‘회현 시민’이라고 적고 있다.

시범아파트는 시민아파트에서 단순히 이름만 바뀐 아파트는 아니었다. 시민아파트가 철거민 대상의 시설이 열악한 아파트였다면, 시범아파트는 면적을 넓히고 보다 튼튼하게 짓는 등 중산층을 대상으로 했다는 큰 차이가 있다. 대표적 사례가 당대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여의시범아파트(1971년 준공)다. 다만 시범아파트의 프로토타입인 회현2시민아파트는 최고급까진 아니었다. 시민아파트의 개량형이었다. 회현아파트와 비슷한 성격으로 지어진 금화시범 입주 예정자들이 1970년 7월 29일 서울시에 낸 건의서에선 이런 분위기가 읽힌다.

중산층 시범아파트라면 이촌동 공무원아파트만은 하여야 된다고 봅니다. 또한 시민아파트는 철거민이요 시범아파트는 중산층으로서 엄연히 그 구분이 뚜렷함에도 아파트 자체 그 모양도 시민아파트보다 외관상 좋지 못하고 그나마 시민아파트 앞도 아니고 뒤에다 세워져 더욱 뒤진 감이 있어 정신적 건강은 사회활동에도 미치게 합니다.

1970년대 서울의 시범아파트에 관한 연구, 진유라, 2007

◇아파트 커뮤니티의 시초, 마당을 아파트로 끌어오다

회현2시민아파트는 1개동, 352가구다. 공급면적 15평·전용면적 11평으로 거실과 방 2개, 개별 화장실 구조다. 앞서 준공된 시민아파트가 통상 공급면적 11평·전용면적 8평, 거실 겸 복도와 방 1개, 공동 화장실 구조라는 점과 비교하면 평면을 꽤 개선했다. 건물의 높이도 10층으로 다른 시민아파트(4~7층)보다 높다. 경사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건물 지상 6층과 7층에 각각 건너편 언덕으로 오갈 수 있는 구름다리를 만든 점도 눈에 띈다. 엘리베이터 없는 고층 건물의 단점을 주변 지형을 이용해 보완한 것이다.

회현아파트는 좁은 면적에 많은 가구가 거주할 수 있도록 ‘ㄷ’자 모양으로 지어졌다. ㄷ자 모양의 아파트 한가운데에는 중정이 있다. 입주민들이 함께 김장하고 장독을 보관하는 공동 마당의 역할을 했다. 아직까지도 이곳엔 오래된 장독이 땅속 깊이 묻혀 뚜껑만 드러나 있다. 장독대 둘 공간이 없다는 게 당대 아파트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유용한 공간이었다. 대한주택공사가 1970년 6월 발간한 잡지 ‘주택’은 이렇게 썼다.

독립주택에서 생활하는 것에 비하여 아파트는 개인 소유의 정원이 없어 우리의 생활, 특히 식생활에 수반되는 장독대를 둘 곳이 마땅치 않은 점이 제일 문제시되고 있으며 가구 집기 등의 놓을 자리 문제로 아파트의 불편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건물의 공터 한쪽에 놀이터가 마련된 것도 눈에 띈다. 현재는 녹슨 그네 등 일부만 남아 방치돼 있는데, 당시에는 놀이터가 희소했다. 1970년은 아파트 건설 시 커뮤니티 시설이나 놀이터를 의무 마련하는 규정이 없을 때여서다. 시민아파트에 거주하는 아이들이 놀이터가 없어 옥상에서 놀다 낙사하는 사고가 자주 발생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1970년 3월 22일자 조선일보는 ‘시민아파트에 어린이 놀 곳을 만들어다오’ 기사에서 이같이 적었다.

죽은 아이가 다른 곳도 아닌 시민아파트에서 놀 곳이 없어 어정대다가 떨어진 것이라는 사건 개요를 접할 때, 불현듯 가슴이 아파진다. (중략) 일호당면이 협소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겠지만, 아파트다운 독립된 생활의 보장이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는 건축양식이다. 변소가 공동이요, 굴뚝이 공동이니, 연탄가스로 중독사고를 일으킨 곳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더욱 슬픈 것은 어린이들의 놀 곳이 어디냐 함이다.

회현아파트는 연탄가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신식 기술인 중앙난방도 이례적으로 도입했다. 시민아파트는 통상 연탄아궁이 방식(아궁이에 직접 연탄을 땜)이었으나, 회현아파트는 중앙난방(별도 난방시설에서 온수나 스팀을 생산해 각 가구로 공급) 방식이다. 중앙난방은 이전까지 외국인 전용 공동주택인 한남동 힐탑아파트(1968)가 유일했다.

난방방식의 변화는 아파트 평면의 변화와도 직접 관련이 있다. 연탄아궁이 방식은 부엌이 난방과 취사의 두 가지 역할을 맡아야 한다. 따라서 부엌은 거실·침실보다 한 단차 낮게 위치하며, 식사는 자연스레 부엌이 아닌 거실·침실에서 이뤄진다. 연탄 보관 공간도 필수다. 반면 중앙난방은 거실·침실의 단차를 없애고 부엌이 자유롭게 배치되도록 한다. 부엌이 지금처럼 취사와 식사공간이 된 데에는 난방 방식의 변화가 배경으로 있었다는 얘기다.

◇당시 최고 입지… 철거 않고 리모델링하기로

이처럼 ‘개량형 시민아파트’로 지어진 회현아파트는 시민들에게 환영받았을까. 꽤나 진화한 구조에다 당시 1급지에 속하는 입지로 수요가 많았다고 한다. 여의도와 강남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고, KBS가 남산에 있을 때여서다.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와 가수 윤수일씨, 은방울자매 등 유명인들이 회현아파트에 거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는 준공 50년이 지나 인기 단지와는 거리가 멀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엔 매매사례가 전혀 없는데, 2004년 11월 정밀안전진단 결과 안전등급 D급(재난위험시설물)으로 판정된 뒤 서울시가 철거를 추진하며 주민에게 보상금을 주고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실거래 공개는 2006년부터 이뤄진 까닭으로 거래 사례가 남지 않았다. 이 아파트는 시유지로 토지 지분은 서울시가, 건물 지분은 주민이 각각 갖고 있어 서울시는 협의 매수로 철거를 추진했다. 대부분이 이주했으나, 현재까지 353가구 중 53가구(15%)가 이주하지 않고 거주 중이다.

한편, 서울시는 2016년 이 아파트를 철거하지 않고 리모델링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맡아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회현아파트는 리모델링 이후 현재보다 100가구가량 줄인 253가구 규모 ‘아트 빌리지’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SH공사는 1~2인 가구로 구성된 청년예술인에게 200가구를 임대하고, 남아있는 53가구를 기존 입주민이 거주하도록 할 예정이다. 층수는 지하 1층~지상 10층 규모를 유지하고 주거 공간도 전용면적 11평, 거실, 방 2개, 주방, 화장실 구조를 유지할 계획이다.

지난 3일 찾은 회현아파트는 건물 외벽이 부서지고 일부 통행로엔 ‘낙석 주의’ 안내문과 함께 출입금지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오후 3시에도 복도는 밤처럼 어두웠고, 이격된 복도 창문 사이로 종종 바람이 스며들며 음산한 소리를 냈다.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습한 공기가 느껴지며 곰팡이 냄새가 올라와 섬뜩한 기운도 들었다. ‘촬영 명소’인 이유를 납득했다.

회현아파트에 30여년 거주했다는 세입자 조모(66)씨는 “복도는 시커멓고 교도소 같지만 집안은 내부 수리를 다 해놔서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조씨는 “친구가 1976년쯤 이 아파트를 150만원 주고 샀다가 나중에 280만원에 팔고 청담동으로 이사했다”면서 “입주 초기엔 연예인도 살 정도로 인기 좋은 아파트였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입주한 1990년쯤만 해도 고급 아파트는 전혀 아니었고 안 좋은 편이었다”면서 “인근 남대문시장 상인들이 세입자로 많이 살며 일 나가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증금 300만원, 월세 30만원에 거주하고 있다”면서 “서울시가 전용 12평 이하 공공임대아파트나 이사비를 보상으로 주는데, 보다 넓은 국민임대에 당첨되면 이사비를 받아 이주할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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