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으로 떨어진 물고기처럼

최재봉 2021. 5. 14.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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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장편 '광덕산 딱새 죽이기'
전통과 변화 갈림길 선 시골 마을 이야기

광덕산 딱새 죽이기
김주영 지음/문학동네·1만4500원

원로 작가 김주영의 신작 장편 <광덕산 딱새 죽이기>는 시골과 도시, 자연과 문명, 전통과 변화의 이분법 위에 서 있다. 소설은 사촌 사이인 두 주인공 관대규와 관복길의 상반된 면모를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대규가 시골과 자연과 전통을 대표한다면, 복길은 도시와 문명, 변화를 대리하는 인물이다.

호젓했던 시골 마을이 현대화 바람에 휩쓸려 망가지는 과정을 그린 신작 장편 <광덕산 딱새 죽이기>를 낸 원로 작가 김주영. “제가 고향 청송에 가서 사는데, 논둑길 밭둑길을 걸으면서 ‘어떻게 사는 게 똑바로 사는 거냐’ 하는 질문을 저 자신에게 수도 없이 던집니다. 이 소설은 그런 질문에서 나왔습니다”라고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에서 말했다. 사진은 2013년 10월 대하소설 <객주> 완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긴 작가의 모습.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소설은 대규씨가 혼자서 가출에 가까운 여행을 하고 돌아온 며칠 뒤 “흰 두루마기를 단정하게 입은 채로 숨을 거두”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대규씨는 평소에도 집 안에서 두루마기 차림을 즐겨 했거니와, 그렇게 된 배경에는 농사꾼이었던 그의 부친 관점석씨가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태조대왕 영정이 있다. 점석씨는 풍수쟁이의 훈수를 좇아 영정을 모신 영당을 짓고 그날부로 양반이 되기로 했고, 그 자식이자 문중 장손인 대규씨는 농사일은 작파하고 글월이나 읊고 자연을 벗하는 선비의 삶을 살기로 했던 것.

“그는 광덕산 주변을 에워싼 고풍스러운 풍광을 마을의 누구보다 사랑했다. 봄이 깊어지면, 오후의 날씨는 언제나 소름 끼치도록 화창했고, 하늘은 상상 속의 천국처럼 푸르렀다. 여름 햇볕 아래 호박이나 참깨나 옥수수 들이 자라는 밭두렁 길을 걸어 광덕산 둘레길로 들어섰다.”

대규씨의 이런 여유는 물론 부친이 물려준 전답과 재산 덕분에 가능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그의 믿음은 도교의 무위 철학을 닮았다.

이런 대규씨와는 상반되게, 같은 마을 출신인 사촌 복길씨는 7년 전 서울로 올라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끝에, 이권 냄새를 잘 맡는다고 해서 개코라는 별명을 훈장처럼 챙겨 돌아온 위인이다. 묵은빚 추심 명목으로 온갖 망나니짓에 몸을 담그고, 노숙에 장례식장 무전취식을 거쳐서는 시체 안치실 밤샘 경비를 하다가 귀향한 그는 “가는 말이 거칠어야 오는 말이 곱다”는 전투적 세계관으로 중무장하고 있다.

“넓은 세상에는 반드시 배신과 환멸이 존재한다”는 신조로 여행과는 담을 쌓고 살던 대규씨는 마을 번영회 총무를 맡은 사촌동생 복길씨의 강권에 못 이겨 문중 사람들과 함께 설악산 여행을 다녀오는데, 그 여행길에서 수치스러운 비밀을 떠안기에 이른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한 여인과 동침하게 되고, 그 일로 복길씨에게 책을 잡히는 바람에 영당에 딸린 위토답을 넘겨주고 사사건건 복길씨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소설은 대규씨의 죽음 장면이 소설 앞과 뒤에 배치되어 있는 수미쌍관 구조를 지니는데, 소설 말미에서 쉰아홉 이른 나이에 죽음을 앞둔 대규씨는 이 여행이 끼친 후과를 이렇게 돌이킨다.

“나 자신이 스스로 죄를 뒤집어씌우면서 살아왔다는 회한이 가슴에 뭉클하게 자리잡았다. 언젠가 문중 사람들과 같이 다녀온 우연한 여행이 오늘 같은 결과로 연결되리란 것을 깨닫지 못했다.”

무위의 철학을 실천하는 대규씨의 삶은 보기에 따라서는 무위도식으로 비판받을 여지도 없지 않다.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이에요?”라는 맹랑한 소녀 지순의 질문에 그 스스로 “놀고먹는 사람”이라고 이실직고한 바도 있지만, 죽음을 앞둔 어느 날 밤 잠자리로 그를 찾아온 ‘밤의 방문자’가 하는 이런 말은 대규씨 삶의 감추고픈 핵심을 버르집는다 하겠다.

“자네처럼 부질없는 인생이 또 있을까. 책은 읽는 척만 하고, 보여줄 것도 전혀 없으면서 선비를 자처하고, 오직 조상을 팔아 내 한 몸 사리기에 급급한 위선자가 뭐가 잘났다고 눈을 치뜨고 쳐다보나.”

아무려나, 종손인 대규씨가 산 주검처럼 무력해진 사이 복길씨가 주도하는 발전은, 주로 외지인 관광객 유치의 형태로 이 호젓했던 마을을 들쑤셔놓고, 풍경과 인심은 날이 갈수록 거칠고 삭막해진다.

“접시꽃과 맨드라미, 봉숭아, 채송화, 나팔꽃, 민들레가 저절로 피고 지던 돌담 아래에는 방문객들이 먹다 버린 햄버거 찌꺼기와 피자 조각과 담배 꽁초들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 이제 순박하고 선했던 이웃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조금은 부족하고 조금은 어리석어서 사기꾼들의 어설픈 유혹에 잘도 속아넘어갔던 지난날이 오히려 그리울 정도로 이웃들은 똑똑해졌고 영악해졌다.”

복길씨 주도로 날로 문명화·도시화·현대화해 가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대규씨와 교감했던 지순이와 그 할아버지가 대규씨가 죽기 직전 마을을 뜬다는 설정은 이 고풍스럽던 전통 마을의 변모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다.

“지금 농촌이나 도회지를 막론하고, 다들 너무나도 배금주의 풍조에 만연돼 있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서로 연대하고 소통하고 배려하는 쪽보다는 내 이익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전통적 미덕을 지키려는 사람은 소외되고 무기력해지고, 반면에 이익을 쫓아가는 사람은 뭔가 사회적으로 격려를 받는 쪽으로 생각이 쏠리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습니다.”

12일 전화로 만난 작가 김주영은 “이 소설은 시골에 있는 한 마을을 모델로 삼았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 전체에 퍼져 있는 풍조라 할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작가로서도 슬프다”고 말했다.

원로 작가의 소설에서, 이즈음 소설들에서 보기 힘든 감칠맛 나는 비유를 만나는 것은 가외의 즐거움이다. “된소금에 절인 파김치가 되어”, “술자리라면 저고리에 단추도 채우기 전에 두 발이 먼저 달려와 있는 노인네들”, “편지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집배원의 멱살을 잡고 흔들 수는 없었다”처럼 내공을 보여주는 표현들은 슬며시 웃음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같은 맥락에서, 죽음을 앞둔 관대규가 곱씹는 삶의 총괄은 이 비관적인 소설의 주제를 담고 있다 하겠다.

“사람은 뭍으로 떨어진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뛰다가 죽는다는 생각이 뒤통수를 치고 멀리멀리 허공 속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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