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성 우선주의 폐기'는 시작..가족 개념 서서히 넓힐 것"

이정연 2021. 5. 1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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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l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장관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너무 걱정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난달 27일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5년) 발표한 정영애(66) 여성가족부 장관의 소회다. 4차 기본계획은 다양해지는 가족 형태 포용, 평등한 돌봄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정책을 주요하게 담았다.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정상가족’, 인구 재생산 단위로서의 가족 개념을 중심에 둔 정부 가족정책이 한단계 진화한 것이다.

부계 중심 가부장적 질서가 여전히 단단한 한국 사회에서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단위를 ‘건강가정’으로 규정한 건강가정기본법을 손보고, 자녀에게 아빠 성을 따르도록 한 민법을 개정하겠다는 계획 등은 큰 반향을 얻었다. 지난 1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영애 장관을 만나 다양한 가족 형태를 법과 제도로 끌어안는 방안과 함께 성평등 백래시 등 현안에 대해 물었다.

― 여가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9.7%가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고 답했을 정도로 가족에 대한 인식은 달라지고 있다. 법률상 가족 개념의 확장은 어떤 모습인가.

“사회는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4차 기본계획은 5개년 계획인데, 논의에서 그치지 않고 5년 내에 법 제정·개정이 끝날 수도 있다. 혼인·결혼·출산 개념과 가치관이 정말 빨리 변한다. ‘한 학기만에 세대가 바뀐다’ 할 정도다. 어쩌면 우리가 5년 뒤 상황에 대해 너무 보수적으로 예측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가족’에서 ‘저 가족’으로 바꾼다기 보다는 전반에 걸쳐 가족 개념을 서서히 넓혀가고자 한다. 일단 건강가정기본법의 ‘건강가정’에 대한 논의가 국회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기존의 건강가정 정의를 확장하는 형태일수도 있고, 아예 건강가정 정의를 빼서 누구든 들어오게 하는 방식이 될수도 있다. 민법을 비롯해 의료·주거 정책 등에서 가족의 범위를 얼마나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는 긴 논의가 필요하다. 4차 기본계획은 출발이다. 문을 열었으니 정책의 지평도 넓힐 수 있으리라 본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장관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부성 우선주의 폐기 방침 공식화가 이목을 끌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게 부성 우선 방침을 개선하겠다는 거였다. 그걸 보면서 우리 사회가 부계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였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민법 개정 사항인데, 법무부에서 2019년 4월에 ‘원칙적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2년이 흘렀으니 훨씬 더 진전된 논의가 있으리라 본다.

― 전통을 중시하는 쪽에서 반대 목소리는 없었나?

“긍정적인 반응이 많은 편이었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지지 집단을 확인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한 어르신이 부성 우선주의 폐기에 대한 의견을 냈다고 하더라. 당연히 비판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 분이 ‘아들이 없어서 성을 못 물려줘 대가 끊어질 뻔 했는데, 드디어 막을 수 있게 됐다’며 감격스러워하셨다고 하더라.(웃음) 과거 여성부에서 여성가족부로 바뀔 때 여성계에서 많이 우려했는데, (이번에) 성평등 관점에서 가족 정책을 펼치면 정말 실질적인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여성계 목소리도 접했다.”

―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괄하겠다는 방침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생활동반자법 언급이 전혀 없다.

“가족 정의를 어디까지 확대할 지 논의하며 내부 논쟁도 많았다. 다만, 4차 기본계획은 정부정책 추진 방향이다. 사회운동을 하듯 강하게 주장을 펼쳐 인식을 변화시키기보다 법과 제도, 예산을 통해 책임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담아내야 한다. 4차 기본계획이 마지막이 아니다.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국민 수용도가 높아지면 그 다음 논의도 쉬워질거라 본다. 정책 추진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5차 기본계획은 훨씬 더 진일보한 계획이 나올거라 본다.”

―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구성권(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권리)을 법 체계 안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프랑스의 시민연대협약(PACS·동거가구 권리보장) 같은 제도에 사회적 수요가 생길 수 있다. 정부 예상보다 빠르게 제도가 만들어 질 수도 있다. 지금 당장은 그와 같은 제도를 시행하기엔 너무 많이 뛰어야 한다. 생활공동체 등이 새로운 정책 대상에 들어오려면 기본적으로 어떤 형태의 공동체를 (지원대상에) 포함해야 하는지, 어떤 정책적 지원을 하고, 재원은 얼마나 소요되는지 등의 논의가 더 필요하다.”

― 최근 성평등 변화에 반발하는 백래시가 논란이 됐다. 정부 차원 메시지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관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기사 등에 달린 댓글을 보는거다. 보면서 의문이 든다. 혐오 발언을 하거나, 성평등에 반대하는 게 정말 어떤 전체를 대변하는 목소리인가 하는 의문 말이다. 그런 의견을 가진 사람을 설득시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동시에 그걸 너무 이슈화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너무 공격적으로 나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보고 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 많이 논의하고 있다.

여가부에서는 양쪽의 목소리를 잘 듣고, 소통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하려고 한다. 서로 이야기하고, 존중하고, 존중받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거다. 넬슨 만델라가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는 말이 있다. ‘우분투’(UBUNTU)다. 서로 연결되어 존재하기 때문에 당신이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하다는 걸 가리킨다. 최근 갈등을 보면서 그 말을 떠올린다. 남을 공격해서 내가 기뻐지거나, 남을 슬프게 해서 내가 앞서 나가는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남녀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함께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장관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노동시장 성별 임금격차’를 조사해 발표하겠다고 했다.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마침 오늘(11일) 국무회의에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했다.(※개정안은 고용에서의 성차별 또는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한 경우 노동위원회가 차별적 처우 등 중지, 근로조건 개선 등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노동시장 성차별을 개선하려면 임금격차 뿐만 아니라 직업을 처음 갖게 되는 때부터 승진 (차별) 등도 다 다뤄야 한다. 그래야 성별 임금격차가 줄어 들거라 본다.”

― 지난해 20대 여성 자살시도율이 전년보다 34%나 늘었다. ‘조용한 학살’에 대해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지금 청년 여성은 교육 받을 때는 이 사회가 공정하고 희망적이라고 여기는데, 막상 사회에 나와 어려움에 부딪힌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건 기대와 현실 사이의 차이 때문이다. 여가부가 해야 할 것은 단기적으로는 고용 대책을 내놓아야겠고, 장기적으로는 성평등한 고용 환경,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정연 최윤아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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