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나치 전단 뿌리다 처형당한 조피 숄 추모 물결

정지섭 기자 2021. 5. 14.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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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00주년 맞아 행사 이어져
히틀러 비판.. 22세때 단두대에
獨, 얼굴 새겨진 기념주화 발행
뮌헨대서는 헌화·야외 공연도
숄 일대기, 80년대 한국서 큰 반향

1943년 2월 18일 독일 뮌헨 뮌헨대 건물에 두 젊은이가 커다란 옷가방을 가져와서 안에 있던 전단을 배포하기 시작했다. 전단에는 “젊은이들이 들고일어나 복수와 속죄를 함께 하며 가해자들을 응징해야 한다”며 히틀러와 나치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조피 숄의 생전 모습. /AP 연합뉴스

전단을 나눠주던 젊은이들은 반(反) 나치·히틀러 청년 조직인 ‘백장미단(White Rose)’ 소속 스물 두 살 여대생 조피 숄과 오빠 한스 남매였다. 6000장 중 1600장을 배포했을 때 조피가 건물 꼭대기로 올라가 나머지 전단을 바닥으로 흩뿌렸다. 이를 지켜본 대학 직원이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신고했고, 이후 백장미단 단원들은 체포돼 단두대에서 삶을 마감했다.

조피 숄 탄생 100주기를 맞아 다양한 행사가 독일 안팎에서 열리고 있다. 그의 100번째 생일인 9일 뮌헨대 내 추모관에는 헌화가 이어졌다. 이날 뮌헨 시내에서 숄의 삶을 주제로 한 야외 공연도 열렸다. 그의 얼굴을 새긴 20유로짜리 기념 주화도 발행됐다. 세계적인 강연 프로그램 테드(TED)의 교육 채널은 추모 동영상을 26개 언어로 제작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보도했다.

조피 숄의 100번째 생일이었던 지난 9일(현지 시각). 독일 뮌헨에서 학생들이 그의 삶을 기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숄은 1921년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자유주의 신념이 투철한 부모는 히틀러와 나치에 대한 반감이 컸다. 당시 나치는 10대 청소년들을 관변 단체에 가입시켜 의식화하는 데 주력했고, 숄도 열세 살 때 친나치 조직 소녀동맹에 가입했지만, 전체주의 강요, 유대인 탄압 등에 환멸을 느끼며 탈퇴했고 반나치주의자로 변모했다.

마르쿠스 쇠더 독일 바이에른주 총리가 조피 숄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뮌헨대 추모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뮌헨대 입학 뒤 백장미단에 가입한 그는 “눈앞에 히틀러가 있는데 나에게 총이 있다면 쏴버리겠다. 남자가 못 하면 여자라도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당찬 모습도 보였다. 백장미단의 핵심 활동은 히틀러와 나치의 실상을 폭로하는 전단 살포였다. 이 활동은 숄이 전단을 건물 꼭대기에서 흩뿌리던 1943년 2월까지 6차례 계속됐다.

체포된 숄은 재판 과정에서 시종일관 당당한 모습을 보였고, 백장미단원 중 가장 먼저 단두대에 섰다. 훗날 그의 형 집행관은 훗날 “그렇게 용기 있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고 도이체벨레는 전했다.

최근 사민당 총리후보로 확정된 올라프 숄츠 독일 연방 재무장관이 6일(현지 시각) 조피 숄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로 수도 베를린에서 개막한 국제아우슈비츠위원회 전시회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숄의 생애와 어록은 독일의 학교 수업 교재로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가 활동했던 곳에는 연중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독일의 차기 총리 유력 후보군인 아날레나 베어보크(41) 녹색당 대표는 “숄은 나의 영웅”이라고 말했다.

숄의 언니인 잉게 숄은 훗날 처형된 동생과 백장미단의 활동을 그린 실화 소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썼다. 이 책은 1980년대 한국에서도 출판돼 대학생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숄과 백장미단에 대한 추모 열기 때문에 최근 한국 상황이 두드러진다는 얘기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법으로 금지한 뒤 국제사회 비판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북한인권단체 ‘사람(SARAM)’의 니콜라이 스프레켈 공동대표는 VOA에 “나치처럼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르고 자국민을 탄압하는 북한 정권에 맞서 전단을 보내는 운동가들도 숄처럼 용감한 사람들인데, 이들의 활동을 금지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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