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이 백신도 안 나눠 주는데, 개도국이 기후협력 하겠어?

한삼희 선임 논설위원 입력 2021. 5. 14. 04:27 수정 2024. 1. 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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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의 뉴스 읽기] 지구촌 공동운명체? 개도국은 경제성장이 더 급하다
4월 22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세계 40국을 화상으로 초청해 개최한 기후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 모습이 화면에 나타나 있다. /연합뉴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올해 전 세계 에너지 분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작년보다 5%, 15억톤 증가해 330억톤이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기온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아래로 묶는 것이 국제적 목표다. 그러려면 2030년 온실가스 배출을 2010년 대비 45% 이상 줄여야 한다는 것이 기후변화정부간패널(IPCC)의 2018년 보고서 내용이다. 그런데 올해 배출량이 줄기는커녕 늘어난다는 것이다. 공장이 멈춰 서고, 도시가 봉쇄되고, 비행기가 날지 못했던 코로나 경제 공황에도 작년 배출량이 7%밖에 감소하지 않았다는 것도 놀랍다. ’2030년 45% 감축'까지 가려면 코로나 같은 충격의 여섯 배, 일곱 배 더 경제가 찌그러 들어야 한다는 것 아닌가.

온실가스 감축을 낙관할 수 없게 만드는 또 하나 문제는 선진국 그룹과 개도국 그룹 사이의 ‘남북 갈등’ 구조다. 코로나 사태가 완전히 둘로 쪼개져 있는 세계 상황을 부각해줬다. 인구 3000만명 네팔의 경우 지난 10일 확진자가 9127명에 달했다. 그날 네팔의 샤머 올리 총리는 서방 선진국들을 향해 백신, 진단 장비, 산소호흡기, 중증 치료 장비와 약품들을 보내달라는 호소문을 냈다. 올리 총리는 “우리 셰르파들은 (외국) 등반객들이 (히말라야 높은 고도에서) 고통을 겪을 때 자기들 산소를 내줬다. 우리는 지금 국제사회의 셰르파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올리 총리는 “기후변화와 마찬가지로 팬데믹의 도전을 극복하는 데도 (국제적) 단합이 필요하다”고 했다. 선진국들이 이런 개도국 호소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 것인가.

1990년대까지 기후 붕괴 해결의 주체는 거의 전적으로 선진국이었다. 1997년 체결된 교토의정서 역시 37개 선진국(Annex 1) 그룹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웠다. 한국도 의무 부과 대상에서 빠졌다. 의무감축국 37곳이 세계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61%(1995년 기준)였다. 선진국 그룹만 실천해도 온실가스를 상당 수준 억제할 수 있었다. 이 비율이 2017년엔 37%로 줄었다. 개도국(Non-Annex 1) 그룹이 빠른 경제 성장과 인구 증가로 온실가스 비율에서 선진국을 압도하게 된 것이다. 이 추세는 더 강화될 것이다.

개도국 그룹의 동참 없이는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2015년 파리협정이다. 이 협정엔 선진국, 개도국 할 것 없이 전 세계 196국이 참여했고, 참가국 모두의 실천을 규정하고 있다. 다만 교토의정서와 달리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강제적으로 부과하지는 않았다. 각국이 형편과 우선순위 등을 감안해 다양한 형태로 2030년까지 실천할 자발적인 목표(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를 내놓도록 하는 유연한 방식을 택했다. 개도국들 참여를 위해서였다. 대신 5년마다 약속 내용을 상향 조정하도록 했다. 각국은 올 11월 영국 글래스고 기후당사국 26차 총회(COP26)까지 강화된 NDC를 제시해야 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22일 개최한 40국 기후정상회의는 상향 조정된 2차 NDC 제출을 촉구하려는 목적이었다. 여기서 미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종전 계획의 절반으로 떨어뜨리겠다고 약속했다. EU, 영국은 미국보다 더 강한 약속을 내놨다. 일본도 성의를 보였다. 그러나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개도국 또는 중위권의 배출 대국들은 의미 있는 약속을 내놓지 않았다.

코로나 비극이 기후 붕괴의 예고편 성격이라는 시각이 있다. 어느 나라도 바이러스의 전면적, 동시다발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 충격이 개도국에 집중되듯, 코로나 지옥에서 빠져나가는 길 역시 공평하게 열려 있지 않다. 백신을 한 차례라도 맞은 인구 비율은 선진국의 경우 영국 52%, 미국 45%, 독일 33%, 프랑스 26% 등(10일 기준)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선 1%를 넘는 국가가 몇 안 된다. 백신 지식재산권을 푸는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논의되고는 있다. 성사되더라도 그 혜택이 빈곤국들에 닿게 될지 의문이다.

선진국 그룹의 백신 이기주의, 각자도생 행태를 목격한 개도국들이 ‘기후 위기 동반 타개’라는 선진국 호소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기후 붕괴는 수십 년 뒤 문제다. 못사는 나라들엔 당장 식량 생산을 늘리고, 전기 공급하고, 도로 깔고, 공장 짓는 것이 훨씬 절박하다. 기후 재앙 극복도 도로·댐·발전소 등 인프라를 늘리고, 재해 예보·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치밀한 행정망을 갖춰야 가능한 일이다. 결국 경제성장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선진국들은 개도국을 향해 ‘석탄 발전소 짓지 말라’고 하고 있다. 이번 기후정상회의에서 한국은 ‘해외 석탄 발전소 건설에 공적 금융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바이든의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했던 방글라데시, 부탄, 인도네시아, 베트남, 콩고, 가봉, 자메이카, 케냐, 나이지리아 등 개도국들 목소리는 분명했다. 2015년 파리협정 때 선진국들이 했던 ’2020년부터 개도국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매년 1000억달러 이상씩 지원'이란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빚 탕감 요구도 나왔다. 그러나 바이든 미 대통령만 “기후 지원 금융 규모를 지금의 두 배인 연 57억달러로 늘리겠다”고 약간의 성의를 보였을 뿐이다.

금년 11월 글래스고 기후당사국 총회에서 개도국 그룹은 만족할 만한 기후 금융 지원이 없으면 NDC 상향 조정에 협력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 상황에서 EU는 다음 달 그간 예고해온 ‘탄소 국경세(carbon border tax)’ 구체안을 제시하겠다고 하고 있다. 탄소 국경세란 이산화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방식으로 생산된 수입품에 추가로 부과하는 관세를 말한다. 개도국, 중진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 장벽을 높일 공산이 크다. 기후 위기를 유발한 선진국이 개도국 그룹에 기후 페널티를 매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1000억달러 지원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처지에서 윤리적으로 온당한 것인지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기후 담당 장관들은 바이든 기후정상회담에 앞서 4월 8일 “1000억달러 약속을 지키라” “탄소 국경세는 (개도국에 대한)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바이든 기후정상회의에서 개도국 입장을 대변해 기후 위기에 대한 ‘공동의, 그러나 차별적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 원칙을 다시 강조했다.

[’2050 탄소 중립'… 왜 벌써 난리]

당장 많이 줄여야 효과적… 나중으로 미루면 ‘폭탄 돌리기’

EU를 필두로 세계 주요 국가들이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작년 10월 했다. 그런데 ’2050년 탄소 중립'이면 되지 왜 구태여 ’2030년 NDC’라는 단기 목표까지 설정해야 하는가.

2050년 배출량 제로 정책

그건 이산화탄소의 ‘축적성’ 때문이다.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으로 배출된 다음 바다, 육상 생태계 등으로 흡수되기까지 길게는 수백~수천 년간 대기 중에 머무는 장(長)수명 물질이다. 100년, 200년 전 배출된 것 중 일부는 아직도 남아 있다. 이런 것들이 계속 쌓이면서 온실 효과를 가중한다. 따라서 2050년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것 못지않게 그때까지 어떤 경로로 줄여가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 A>와 <그림 B>는 ’2050년 배출량 제로’라는 도달 지점은 같다. 그러나 배출 누적량은 현격하게 차이난다. 같은 ’2050 탄소 중립’이라도 A의 경로로 가야 기후 붕괴의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이다. 2050년은 30년 뒤 일이어서 너무 멀다는 점도 문제다. 선거로 뽑히는 각국 정부의 임기가 4년, 5년 수준에 불과한 상황에서 30년 뒤의 목표로는 실행 의지의 진정성, 현실성을 담보하기 힘든 것이다. 말로만 거창하게 목표를 세워놓고 다음 정부들에 부담을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 행태가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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